밤새 정성을 다해 간호했을지라도 환자가 죽음에 이르렀다면 나는 무엇을 했다고 볼 수 있는가? 결과가 좋지 않은데 선뜻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환자가 어떤 마음인지, 또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고려하지 않고 ‘할 일’만 해댄 나는 어쩌면 무정한 간호사였을지도 모른다.
- 언젠가 사라질 날들을 위하여 : 수만 가지 죽음에서 배운 삶의 가치, <오은경 저> 저
“너는 정이 많아서 걱정이 돼. “
고모가 언젠가 어렸을 때 한 말이다.
그때 고모는 35년 차 교직에 몸담고 계신 분이었다.
내가 그때까지만 해도 교직에 몸담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담임도 맡고 학교폭력 담당교사 업무도 맡으면서,
특히나 마음이 아픈 친구들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마음이 힘든 아이들에게 더욱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일개 교사로서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는 일들이 태반이지만, 그들에게 작게나마 지지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에너지도 참 많이 썼다.
하 지 만
요즘 무정한 교사가 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이 든다.
쌓여가는 업무, 수업은 수업대로 많고, 한정적인 시간에 감정을 소모하는 게 힘들어서 애써 외면할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혹은 부모님들이 어떤 마음인지, 또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고려하지 않고 ‘할 일’만 해댄 나는 어쩌면 무정한 교사가 되어가고 있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