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정말이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책도 읽지 않고 주말에야 겨우 쓰는 밀린 일기마저 쓰지 않았다. 요리도 하기 싫어 아주 오랜만에 치킨을 시켜 먹었고, 청소며 잡생각이며 뭐며 모든 것을 뒤로 미루었다. 그리고 내가 겨우 한 일은 티브이를 보고 잠을 자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 게으름의 원인은 너무 단조로워 숨 막힐 것 같던 나의 직장생활에 여러 파장이 일었기 때문인데, 한 마디로 그 파장에 기인한 스트레스에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회사에서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하는 피해자가 내가 된 것 같아 여러 번 생각해도 억울한 마음. '이게 사회생활인가?' '일 안 하는 팀장 만난 죄를 왜 나에게 묻는 거지?' 여러 가지 꼬인 마음들이 나를 지배했다. "팀장님이나 일 좀 합시다!" 항명하고 사무실의 잔다르크가 되고 싶었지만 그 정도의 용기는 내겐 없었다. 내 안에 자리 잡은 비굴함이 더 커 소심하게 브런치에 나의 직장생활을 비꼬는 글을 끄적였다. 마침 남편도 출근한 주말이니 글쓰기 안성맞춤이었다. 부정적인 마음을 한껏 담아 글을 써 내려가는데 그 감정이 해소되긴커녕 오히려 스트레스가 치솟았다.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 안의 커서만 응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 집의 평온한 무드가 나를 한없이 못난 사람으로 만들었다. 회사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아등바등하는 내 모습이 처량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너무 조용해서 적막하기까지 한 이 집의 고요함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잠시 쉬라고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앉은자리에서도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는,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벌이라 느끼는 내가 그날만큼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강아지들을 보고, 화병에 꽂힌 꽃, 아직 치우지 않은 크리스마스 데코를 바라보며 얼마나 더 못나져야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버티는 것이 진정한 승리인지 문제점을 나에 기인해서 생각하니 마음에 조금의 안정이 찾아왔다. (좁아터진 소갈딱지 덕분에 시간이 흘러도 아직 나는 나를 피해자라 여기지만...) 곧 집이 주는 안락함에 한껏 빠져 모든 것을 뒤로하고 긴 낮잠을 잤다. 남편이 퇴근을 하고 돌아올 무렵 느지막이 깬 나는 더 이상 회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끔 이 집에 내가 있는 게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순간도 그랬다. 그저 이 공간에 내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것 자체가 낭만처럼 여겨지며 내 마음에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긍정적인 기운이 스며드는 거다. 그날 분노와 허망함에 휩싸인 나를 도닥여준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도 낭만을 주는 우리 집이었다.
그리고 오빠, 고맙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응원해 주고 내게 이런 낭만을 선물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