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마음으로 너를 기다려 본다
결혼 준비와 함께 줄곧 고수해왔던 긴 머리카락을 단발로 싹둑 잘랐다. 물리적으로 가벼워진 나의 머리, 이는 단순히 헤어 스타일을 바꿨다는 의미만을 지닌 게 아니다. 삶의 변화, 내 삶에 또 다른 책임감이 하나 더 부여되었음을 의미한다.
4년 정도 고수해왔던 긴 머리가 단숨에 짧게 잘려나가자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익숙함을 벗고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비장한 마음마저 들며 많은 생각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머리를 기르기로 다짐했던 순간도 불현듯 떠오르며 생각은 켜켜이 쌓여만 갔다. 아마 그때가 처음으로 내 인생에서 미가 아닌 어떤 목적에 기인해 헤어 스타일에 변화를 다짐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결혼. 인생에 단 한 번 뿐일지도 모를 그 이벤트를 위해 나는 단발이던 머리를 몇 개월 간 자르지 않고 길렀다. 결혼식을 한다고 해서 꼭 머리를 길러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게 편하다고들 해서 대세를 따랐다. 목적을 성공리에 달성한 나는 긴 머리카락과 함께 누군가의 아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난생처음 겪는 낯선 책임감에 허둥지둥했다.
나름 사연 깊은 이 머리카락을 자르는데 왈칵 눈물이 나거나 큰 각오가 필요 친 않았다. 다만, 이제 내가 나 자신, 누군가의 아내라는 타이틀에 하나를 더해 엄마라는 역할로 무엇인가를 포기한 순간이라는 게 쉽사리 와닿지 않았다. '나' 중심으로 살아오던 내가 아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특별한 존재를 위해 나를 내어준 첫 순간이라면 거창한 걸까.
출산과 육아. 이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미처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나는 아직도 '이 모든 것들이 내 인생에서 어떻게 기억될까'라는 나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애송이 중에 애송이일 뿐이다. 흔히 출산과 육아를 생각하면 엄마의 희생과 헌신을 떠올린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 연결고리가 나는 때론 매우 부당하게 여겨지곤 했다. 아직은 내 이름 석자만을 걸고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은 '나'였기 때문에.
출산과 육아에 짧은 머리가 훨씬 실용적이란 주위의 말에 반토막난 나의 머리를 마주하곤 ‘머리카락 하나 짧게 자르는데도 이렇게 생각이 많은 내가 과연 누군가의 엄마로 육아를 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섰다. 너무 앞서간 걱정 탓에 평소에도 그다지 고요하지 않았던 마음이 요동친다. 엄청난 심리적 부담감에 하루에도 몇 번씩 평소에 하지도 않았던 마인드 컨트롤을 해본다. '잘하자'는 마음은 애초에 사치다. 그저 멍청하리 만큼 책임감에 목매는 나의 기질에 한수를 걸어볼 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나와 내 남편의 선택으로 이 땅에 소환된 나의 아기는 선택 조차 할 수 없이 우리 곁에 왔기에.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 가정 안에서 아름다운 존재로 너를 양육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다짐해본다. 또 경험할 어떤 낯선 세계에 굴복하지 않고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고 곱씹고 또 곱씹는다. 물리적으로 가벼워진 머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