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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품상회 Jun 25. 2019

쉬고 싶어서 떠나온 여행, 라오스 한 달 살기(1)

유랑일기


하던 일을 그만뒀다. 그만두면서 생활비는 끊겼고 100만 원만 남았다. 아껴서 이번 달과 다음 달에 생활해볼까 고민했지만 고민 끝에 여행을 선택했다. 어차피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법. 여기서 돈 쓰나 해외에서 돈 쓰나 똑같다면 차라리 여행하는 쪽이 좋을지도 모른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300만 원으로 세계 여행하는 사람도 있던데, 어쩌면 100만 원은 큰돈이 아닐까 싶다. 어디를 갈지 고민하며 여러 나라를 생각했고 그중 라오스가 떠올랐다. 이름부터가 매력적이다. 친구를 꼬셔서 라오스로 떠났다. 라오스에 뭐가 있는지 잘 몰랐지만 뭔가 있을 것만 같다. 그게 뭐든.


비엔티안


새벽에 라오스에 도착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한인숙소에 묵자는 친구의 말에 우린 한인숙소를 예약했다. 숙소 트럭에 타고 라오스 시내를 돌아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사장님은 우리를 의자에 앉혀 놓고 유심칩과 환전을 얘기했다. 피곤한 상태라 판단력이 흐려졌고 무언가에 홀린 듯 유심칩을 구매하고 환전했다. 유심을 갈아 끼운 다음 바로 침대에 누웠다. 왜 잘 준비가 끝나면 눈이 말똥말똥해지는 걸까. 잠이 달아났다. 친구가 옆에서 음악 들으며 자고 있을 때 난 눈 뜨며 멍하게 있었다. 밖에선 불교에서 들리는 기도 소리와 종소리,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내가 잠들려고 할 때 누군가의 아침이 시작됐다. 



결국 잠 못 든 채 잠에서 깼다. 어제 새벽부터 한 끼도 먹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배고프지 않았다.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숙소 앞에 있는 커피를 주문했다. 라오스 하면 다들 커피를 마셔보라고 한다. 달달하니 당 보충되고 피로가 풀리는 맛이라고. 한국 맥심처럼 달달한 커피였다. 설탕을 많이 넣었나? 피곤을 날릴 만큼 달달했다. 커피 맛에 감탄하며 여행 온 것에 실감했다. 우리 여행 왔어! 라오스로 여행 왔어! 그렇게 달달함에 취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여행을 즐기려 할 때 툭툭이가 지나갔다. 


툭툭은 라오스 택시이다. 비엔티안에서 바가지 씌우는 기사들이 많으니 꼭 흥정해서 타야 한다. 지나가던 툭툭 기사님에게 손을 흔들고 차를 세웠다. "두 명인데 얼마예요?" "40달러" 순간 잘못 들은 듯싶어서 계산기를 꺼내 40달러가 맞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4달러도 아니고 40달러? 무슨 요 앞에 가는데 40달러야. 기사님께 한국말로 비싸다고 말하며 최대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불쌍한 표정이었을지 모른다. 봐봐요. 딱 봐도 돈 없어 보이잖아요. 그 표정을 읽으셨는지 기사님은 반 값으로 낮춰줬다. 20달러도 여전히 비싸지만 툭툭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그냥 탔다. 외국인 승객에게 "우리 비싼 금액으로 차 탄 거 맞죠?"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라고 답해줬다. 그래 이미 탔으니까 어쩔 수 없지. 후회해봤자. 이미 지난 일인 걸.



라오스에 대해 많이 알아보진 않았다.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넘길 뿐. 알아도 까먹고, 언어가 너무 어렵다(핑계). 그래도 한 가지 아는 건 내 앞에 있는 부처님이 누워있는 부처님 중에서 가장 크다는 것. 카메라로 한눈에 담기기 어려울 정도로 크긴 했다. 누워 있는 부모님을 보자 마음이 편해지면서도 쫙 핀 손을 보니 불편하게 누워계신 것 같기도 하다. 사원을 걷다가 높은 곳에 있는 한 사원이 보였다. 이름은 잘 모르겠다. 많은 계단을 올라 사원에 다다를 때 내가 올라온 계단과 내 시야에 들어온 풍경을 봤다. 평화롭다. 마침 날씨도 좋았고, 사람도 많이 않아서 북적거림도 없었다. 사원 안으로 바람이 솔솔 불어와서 바닥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여행을 좋아한다. 가끔 내가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곤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 백수를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인 것 같다. 자다가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커피 마시며 책 보고, 다시 졸리면 낮잠을 청하고 배고프면 또 먹으러 나오고. 다들 여행까지 와서 너무 쉬기만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지만 이렇게 쉬는 여행이 좋다. 우리나라에서 라오스로 오기만 했을 뿐인데 걱정했던 생활비가 생각나지 않았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마음이 편안하니 그냥 정말로 잘 쉬고 있는 듯했다.  



독립문까지 걸어갔다. 예쁜 건물을 보거나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볼 때마다 예쁘다, 귀엽다를 말하곤 했다. 우리나라에도 교복 입은 학생들은 많은데, 늘 보던 풍경임에도 새롭게 다가왔다. 독립문 안에는 상점이 있다. 그 안에서 라오스 전통 치마를 샀다. 가게 사장님 딸이다. 아이는 내 카메라에 흥미를 보였다. 직접 놀 수 있게 카메라를 건네주자 다시 내게 돌려줬다. 사장님은 흐뭇한 듯 아이를 봤고, 아이랑 놀아줘서 고맙다며 치마 가격을 깎아주셨다. 



다시 걸었다. 걸으면서 서로가 본 풍경을 보라며 말하기도 했고, 가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했다. 서로의 시간을 배려하는 듯해서. 걷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됐다. 공원에 들어가자마자 근처에서 신나는 음악이 들렸다. 공연하는 것 같아 가까이 가니 에어로빅하고 있었다. 다들 격하게 운동하고 있었고 우리도 그 옆에서 따라 운동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더 크게 동작을 하라고 말하셨고, 어떤 사람은 웃기만 했다. 몇 개 동작만 따라 했을 뿐인데 벌써 힘들다. 역시 운동은 나랑 안 맞아. 이번엔 플리마켓이 보였다. 사방에 눈이 달린 듯 살만한 게 없는지 두리번거렸다. 생각보다 예쁜 건 없네. 쇼핑을 포기하고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숙소로 돌아갔다. 하루를 늦게 시작해서 인지 생각보다 빨리 저녁이 됐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보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각자 생각한 라오스 이미지를 말했다.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번 여행은 꽤 재미있을 것 같다. 


방비엥


미니밴 타고 방비엥에 갔다. 라오스에서 가장 한국인이 많은 곳 같다. 걸어갈 때마다 라오어보다 한국어가 더 많이 들렸다. 한국어로 되어 있는 간판도 많았고. 꽃보다 청춘 촬영지여서 많은가. 라오스에 왔으니 물놀이해야지. 유명한 블루라군에 왔다. 다이빙하면서 사람들은 여러 다짐을 말했다. "00아 군대 잘 갔다 와" 무서워서 다이빙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다이빙을 보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물속에서 다들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다. 우린 좀 더 있다가 시크릿 라군에 갔다. 말 그대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해서 시크릿이라는 별명이 만들어졌다. 


시크릿 라군으로 가는 길은 시골길 같았다. 가방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 곳곳에 있는 소와 우리를 보며 인사하는 사람들까지. 정겹다. 공기까지 맑으니 더없이 좋았다. 어느새 시크릿 라군에 도착. 시크릿 라군 뒤에는 엄청 큰 바위가 있었고, 그 바위로 인해 그늘졌다. 추웠다. 우린 물속에서 놀다가 추워서 밖으로 나왔다. 추울 땐 뭘 먹어야 한다며 꼬치와 맥주를 주문했다. 물에선 역시 맥주지. 우리 일정은 단순했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보는 것. 둘 다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책 보는 걸 좋아해서 문득 떠올랐던 순간을 이야기했다. 나와 다른 시각이 재미있었다. 다만 모든 게 편했던 것은 아니다.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었다. 말없이 사라지거나 먹고 싶은 게 다르거나 숙소 선택 기준이 다르거나. 트러블이 생겨도 우린 화내지 않았다. 각자 눈치만 볼뿐. 여행 와서 좋은 친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으니. 며칠은 웃었고, 며칠은 불편했다. 


날이 조금씩 저물어갔다. 주황빛으로 물들인 동네에 다들 분주해졌다. 퇴근하나? 바쁜 사람들 속에서 우리만 여유로운 것 같다며 그 시간을 즐겼다. 여행이라서 가능하다며. 볶음밥을 주문하고 맥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창문 밖으로 대화를 나누며 지나가는 커플, 오늘 다녀온 블루라군을 얘기하는 한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지나갔다. 모두 라오스를 잘 즐기고 있는 듯하다. 하루의 마무리는 맥주지. CHEERS


루앙프라방


며칠 머물다가 한국사람이 너무 많은 관계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기분에 맞게 행동하는 것만큼 자유로운 게 없다. 다들 방비엥이 재미있다며 일주일 이상을 머물렀지만 우린 조용한 동네를 원했다. 그래서 루앙프라방을 좋아했다. 먹을 게 많고, 맛있고 야시장이 잘 되어 있어서 매일 쇼핑해도 질리지 않았다. 이렇게 꿀 같은 곳이 또 있을까? 그렇게 일주일 동안 머물렀다. 



새벽에 일어나 탁발에 참여했다. 탁발은 나눔의 의식인데, 밥과 간식을 스님에게 주면 이를 가난한 이들과 다시 나눠 먹는다. 라오스는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나누려 했다. 라오스 문화를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탁발을 준비했다. 난 밥과 간식을 준비해서 돗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로등 불로 밝아진 거리가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그 거리로 스님들이 왔다. 맨 마지막엔 어린 동자가 있는데 너무 귀엽다. 빠른 어른들의 발걸음을 따라가고자 뛰어가는 모습이. 루앙프라방 탁발하면 유명한 사람이 있다. 사람이 아닌 강아지에게 밥을 나눠주는 라오인. 여러 마리의 강아지가 탁발에 참여했고, 돌아가면서 밥을 먹는다고 한다. 강아지들도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는 말에 귀엽기도 하고 기다림을 안다는 게 대단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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