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하리와 난 2018년 8월에 만났다. 당시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 카페를 냈는데, 하리를 파티쉐로 고용하며 우리 둘의 인연이 시작됐다. 매일 아침 7시, 칼라 브루니의 <Stand By Your Man>을 틀어놓고, 하리는 햄버거 번 반죽을, 난 매장 오픈 준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당시 카페 근처에 살던 하리와 달리 난 지하철로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에 살았기에, 매일 아침 꽤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하지만 비몽사몽으로 지하철에 오르면서도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다. 하리와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웠고, 일보다는 놀이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던 걸로 기억한다. 일 호흡도 나쁘지 않았고, 개그코드도 비슷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많은 관심사와 가치관을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대화 주제로 자주 오른 ‘비거니즘’이나 ‘대안교육’ 같은 몇몇 단어로 우리 사이의 가치관적 교집합을 표현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 차라리 삶을 대하는 결 자체가 비슷했다고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수도 있겠다.
몇 달 뒤 내가 먼저 회사를 나왔고, 머지않아 하리도 일을 그만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동료에서 친구가 되었다. 그 뒤로 하리와 난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심심하면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고, 차를 타고 멀리 여행도 갔다. 이후 하리는 서울을 떠나 제천에서 잠시 살기도 했고, 또 고향인 부산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왔는데,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전화로 서로의 안녕을 묻고 일상을 나눴다.
하리 없는 서울에 남은 내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사이 난 결혼을 했고, 아내가 임신을 했다. 우리 부부는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순천으로 이사 갈 계획을 세웠다. 하리 역시 군복무를 마치자 오랜 꿈이었던 독일 유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각자 일생일대의 변곡점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우린 만나서 할 얘기가 많았다. 난 내가 순천에서 어떤 삶을 꾸려나가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지를 말했고, 하리는 자신이 독일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싶고 또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를 말했다. 서로 의지하며 불확실한 미래 속으로 한발 한발 내딛던 나날이었다.
2022년 3월, 내 딸 베일리가 세상에 나왔고, 하리는 독일로 떠났다. 하리가 떠나기 전 우리는 서로 편지를 쓰기로 약속했다. 이 매거진은 하리와 내가 주고받는 편지들의 저장소이다. 대한민국 순천에 있는 내가 아빠로서 경험하고 느끼는 것, 독일에 있는 하리가 유학생으로서 경험하고 느끼는 것을 각자 편지에 담아볼 예정이다. 8783km라는 거리를 사이에 둔 우리 앞에 과연 어떤 삶이 펼쳐질지, 그 과정에서 하리와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는지를 지켜보고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