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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생각 Apr 26. 2022

Welcome to Germany

3月 - 하리가 일수에게

안녕 일수?

열두 시간의 긴 비행을 거쳐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나라에 도착했어.

비행하는 동안 무진장 지루했냐? 그것도 아냐.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L항공사의 배려인지 뭔지, 첫 기내식을 먹자마자 속이 울렁거려서 다 토하고—객실에서 토했으면 더 다이나믹했겠지만 아쉽게도 화장실에 가서 토했어—, 속을 다스리느라 최대한 편안하게, 숨만 쉬려고 노력하면서 몇 시간을 보냈어. 그리고 어쩌다 보니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건' 독일인이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비행 내내 많은 얘기들을 하며 왔어. 아니 근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한국에서는 비건으로 살기가 너무 어려워서 베지테리언으로 생활했다지 뭐니. 너무 이해가 잘 가면서도 참 슬프더라.


내가 첫날 머문 곳은 프랑크프루트(Frankfurt am Main)야. 비행기가 도착한 곳도 그 도시고, 그곳에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있어서 투표를 할 수 있거든. 그래서 나는 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고 영사관 근처에 있는 숙소로 갈 계획이었어. '스무스'하게. 아니 지하철만 타고 가는 건데 뭐가 그렇게 어렵겠어? 그것도 똑 부러지고 질서정연하다고 소문난 독일인데. 근데 웬걸. 승강장이 너무 많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네? 그것보다 더 웃긴 건, 티켓을 사느라 쓴 시간이 비행기 도착 후에 입국 심사하고, 짐 검사하고, 수하물 찾아서 나온 시간보다 더 길었다는 거야.


티켓 종류가 너무 많았어. 그리고 '편도 티켓'을 고르면 또 버튼이 몇 개가 나와서 골라야 하는데 당최 뭘 눌러야 하는지 알아야 말이지. 그래서 전파가 잘 안 잡히는 티비에 나오는 사람처럼, 랜덤하게 자리에 있었다 없었다 하는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도움을 받았어.


내가 사야 하는 티켓의 가격은 5.20유로였어. 아냐, 편도고, 목적지도 멀지 않았어. 여튼 그 돈을 내면 드디어 호텔로 갈 수 있겠구나 싶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최소 단위인 10유로짜리 지폐를 내미니 기계가 입을 꾹 닫네. 5유로나 동전만 받는 것 같았어. 무려 국제공항에 있는 지하철역인데 말이지. 주위에 돈을 바꾸는 기계는 없었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바꿔 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5유로를 넣으니 이제 그 기계는 돈을 도로 '퉤'하고 뱉네. 밥 투정하는 아기 같았어. 다른 기계에서는 5유로짜리를 넣으니 이제 동전만 받는데. 난 다시 누군가에게 돈을 바꿔 달라고 하거나 20센트만 달라고 빌어야 하는 사정이 됐어.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근처에 있었어. 그 친구가 비행기에서보다 5년은 더 늙은 내 얼굴을 봤는지 옆으로 와서 사정을 보고 20센트를 줬어. 그때는 그 20센트가 한 2만원 같더라. 그러면서 그 친구가 한마디 했어. "Welcome to Germany."


장소

첫날 머문 프랑크프루트의 외곽과 지금 사는 보훔 둘 다에서 느끼는 건 건물이 다 낮다는 거야. 건물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없어서 좋아. 프랑크프루트에서는 '건물의 개성이 강하다'고 느꼈어. 건물 하나하나를 건축가들이 개성을 뚜렷이 집어넣어 만든 느낌이랄까? 통유리로 만든 육면체들을 붙이고 쌓은 듯한 건물이 있는가 하면, 관제탑 같이 생긴 건물도 있었고, 계단을 건물의 유리벽에 붙여 놓고 방에는 계단만 비추는 불을 켜 놓은 곳도 있었어. 그리고 보훔은 그리 큰 동네가 아니어서 그런지 옛날 건물들이 눈에 많이 띄어. 거친 질감의 시멘트 벽 외관이 크게 튀지 않는 색들로 칠해져 있어. 아주 단단한 느낌인데, 실제로 내 기숙사 방도 바로 옆 방이랑 두꺼운 시멘트 벽으로 나누어져 있어. 그래서 방음이 생각보다 잘 돼. 그리고 어떤 건물이든 큰 통창이 있고. 햇빛이 중요한 내게는 만족스러운 환경이야.


이곳은 걷기에도 참 좋은 곳이라고 느껴. 인도가 넓고 어디에나 다 있어서 구글맵이 조금 넓은 도로로 안내해 주더라도 '저기를 차들과 함께 걸으라는 거야 뭐야?' 하며 겁먹지 않고 갈 수 있어. 그리고 여기는 운전자들이 '정말 잘' 멈춰. 한국에서는 '보행자가 먼저야!' 속으로 외치며 횡단보도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차들과 신경전을 벌였단 말이지. 손을 앞으로 쭉쭉 뻗으면서 '나 횡단보도 좀 지나가겠다. 나 치지 말아라'고 사인을 보내면서. 근데 이제는 정반대의 상황이야. 내가 횡단보도 앞에만 서 있으면 저—멀리서부터 차가 멈춰. 한국식에 익숙해진 내게는 고맙다 못해 미안할 정도야. 내가 바로 지나갈 게 아니라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 좀 하고 건너려고, 건너겠다는 사인을 전혀 안 보내고 일부러 목을 쭉 빼고 다른 곳을 보고 있었는데도 차가 멈추더라고. 그래서 건널 수밖에 없었어.


독일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프랑크프루트를 산책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왜 이렇게 빈 땅이 많아?'였어. 물론 그건 프랑크프루트 외곽이어서 더 그랬던 것이긴 한데. 하고 싶은 말은, 여기엔 식물이 자라고 있는 빈터가 많아. 내가 사는 보훔도 그래. 기숙사 근처에는 길게 뻗은 숲이 두 개나 있고, 시내에 나가도 큰 공원까지 걸어서 15-20분밖에 안 걸려. 그래서 걷고 뛰는 것을 즐기고 있어. 내가 너한테 보낸 사진처럼, 사람들이 부러진 큰 나무를 의자 삼아 햇살을 쬐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어.


소리

이렇게 나무들이 많아서 그런지 새들도 정말 많아. 눈으로 본 건 아니고 소리로 들려. 정말 어디를 가나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 시내에 있는 에어비앤비에서 묵을 때도 그랬고, 약간 외곽에 있는 기숙사에서도 그래. 어떤 애들은 계속 같은 패턴으로 울고, 어떤 애들은 정말 '수다' 떠는 것처럼 지저귀는데, 그 두 종류의 소리가 잘 어울려. 같은 코드 안에서 연주하는 느낌이야. 그리고 클락션 소리가 거의 안 들려. 딱 한 번 들어봤어. 조금 작은 도시라서 그런가? 베를린도 가 보고 다시 알려줄게. 근데 면허 따는데 수 백만 원이 들고 수개월이 걸리는 나라에서는 충분히 그럴 법하다고 생각해.


냄새

여기서 처음 냄새에 집중했던 건 공기질을 체크하기 위해서였어. 당연히 나는 내 코로 공기질을 체크하지 못해. 그래도 이 나라는 황사랑 미세먼지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혹여나 다를까 해서 집중해서 마셔봤지. 깔끔한 공기 외에 이 나라에서 특징적으로 맡아지는 냄새는 없었어. 인도에 가면 나그참파 향이나 향신료 냄새들이 날 거라고 생각되듯이(인도 안 가봤어) 여기서도 특별한 냄새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없더라고. 그래도 한 가지 냄새는 내 머리에 각인 됐는데, 앞으로 '독일'하면 떠오를 것 같아. 바로 빵 냄새야.


여기는 빵이 주식이라 그런지 어느 마트에 가도 당일 제조한 것 같은 빵들을 포장도 안 해놓고 팔거든? 그래서 원하는 걸 그냥 종이봉지에 넣어서 계산하면 돼. 나도 초반에는 요리할 것들이 없으니까 빵을 샀지. 근데 웬걸. 한입 베어 물자마자 감탄이 나오더라. 삼박자가 다 맞았어 1)겉바 2)속촉 3)그 '향'. 빵에서 올라오는 풍미가 거의 후각적 msg야. 뭐 발라먹을 거, 그딴 거 필요 없어.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 현실적인 방법이 있다면, 이 향을 향수로 만들어서 파는 걸 거야. 사실 난 '토종 한국인 입맛'이거든. 빵을 먹으면 꼭 김치를 먹어야 해. 된장국이 있어야 그 '밀'로 만든 것이 넘어간단 말이지. 근데 나 이제 빵을 주식으로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아니, 먹고 이미 있어. 이거 쓰는 내내 침이 고였어.


비건

먹는 거 하면 또 비건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여기 와서 받은 문화충격 한 가지를 꼽으라면 비건 친화적인 환경이야. 프랑크프루트에서 Lidl이라는 슈퍼에 들렀어.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어. 어떻게 비건 파운드케익이 공산품이 되어 진열되어 있지? 살라미, 햄, 슈니첼(돈까스 같은 거야), 요거트, 아이스크림, 반찬, 여러 소스로 버무려진 샐러드 같은 게 죄다 비건이야. 비건 마크가 찍힌 제품들이 수두룩하고 제품에 'vegan'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들도 많아. 너무 편한 건 한국에서처럼 일일이 제품 뒷면의 재료명을 안 봐도 된다는 거야. 맥주병 뒤에도 비건 마크가 붙어 있더라니까.


한번은 배달앱을 켜서 'vegan'을 검색했는데 맥도날드가 떠서 깜짝 놀랐어. 비건 버거가 엄청 먹음직스럽게 하나의 옵션으로 자리하고 있더라고. 며칠 전에는 맥도날드에서 초콜렛 아이스크림에 킷캣 토핑과 딸기 소스를 얹어서 먹었는데 진짜 너무 좋더라. 그래서 밖에서 비건이 아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걱정이 안 돼. 한국에서는 내가 먹을 곳을 찾아야 하고 사람들에게 괜찮은지 물어봐야 하고, 처리해야 할 스텝들이 많았는데 여기는 모든 음식점에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비건 메뉴가 있으니까 사회생활에도 지장이 없달까. 사람 사는 것 같았어.


사람

일수 넌 '독일 사람'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뭐야? 나는 '진지함', '차가움', '극이성적', '개인주의', 등이 떠올랐는데, 넌 나랑 많이 다른가? 여튼 저런 얕은 선입견을 가지고 이 나라로 왔는데 도착하고 보름이 된 지금(정확히는 보름하고 4일이 지났어), 그 선입견들은 거의 다 없어졌어. 도착한 지 일주일도 안 됐을 때는 혼자서 긴장과 경계를 엄청 많이 했거든? '혹시나 누가 나쁜 말을 하면 어쩌지? 인종차별 당하면 어쩌지? 내가 어떻게 받아치지?' 이런 생각이 계속 드는 거야. 특히 이런 사람들 옆을 지나갈 때면 조금 더 경계하곤 했는데: 1) 조금 험상궂게 생긴 남자 성인들(그냥 시비 걸거 같고), 2) 노인들(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는 외국인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3) 말을 할 줄 아는 아기들(악의 없이 툭 던지는 말이 상처 될까 봐), 4) 청소년들(특유의 반항/모험심으로 시비 걸까 봐). 그래서 그들 옆을 지나갈 때마다 언제든지 받아칠 수 있게 'Jaja, halt die Fresse(응 아가리 다물어)'를 속으로 외고 다녔어. 그래서 집 밖으로 나가는 일 자체가 꽤나 큰 에너지 소모였어.


근데 독일 사람들을 겪을수록 마음이 더 안정되었어. 보훔에서 지하철 티켓을 살 때(여기서도 헤맸어) 옆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정말 친절하게 '당연하지!' 하며 날 도와줬어. 기차역에서 방향이 맞는지 물어봤을 때 '다운 받아 놓으면 좋은 앱'까지 설명해준 사람, 만날 때마다 웃으며 인사해주는 기숙사 관리하시는 분들, 친근하게 하나하나 일러주는 댄스 동호회 사람들, 빨래방에서 돈 내는 법부터 세탁기, 건조기 사용법까지 상세하게 알려준, 조금은 수다스러웠던 아저씨, 약국에서 제품들을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해주면서 필요 없어 보이는 제품은 굳이 사지 말라고 해주는 약사 등을 만나면서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들은 있겠지만, 대부분 친절하고 따뜻하구나', 를 느꼈어. 그래서 '차갑다'라는 독일인에 대한 인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해지더라.


아 근데, 마트 캐셔라든지, 기차 안내데스크 직원이라든지, 서비스직에 있는 사람들은 한국이랑 차이가 있더라. 그러니까, 한국의 '무조건적인 친절함'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고. 툭툭 건성으로 말할 때도 있고, 지친 모습을 숨기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게 보이기도 했어. 그래서 한국의 '예의'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당황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 그렇다고 화를 돋굴 만큼 불친절하다든가, 친절한 직원이 없다는 말은 아냐. 그저 한국에서는 '자신을 억누르는 친절'이 당연하게 여겨지는구나 싶었을 뿐.


내가 느낀 것

난 독일에서 과거를 양분 삼아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아. 그 과거란 8년 전 즈음 오스트리아에 음악 공부하러 유학을 떠났다가 3개월 만에 돌아온 경험인데, 그때는 그게 너무 큰 실패로 느껴졌고, 상처도 많이 받았고, 우울증도 심하게 겪었지만, 그 경험이 있었기에 이제는 어떻게 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지 생각해보고 준비할 수 있었으니까. 그 경험 때문에 독일로 가는 게 무섭기도 했는데, 이제는 정말 많은 게 달라졌어.


그래도 첫 1-2주는 기복이 심했어. 앞서 말했듯이 뭘 하나 하려면—지하철 표를 산다든지, 그냥 집 밖으로 나간다든지—에너지가 수 배는 더 드는 거야. 기름 냄새만 맡아도 간다는 혼다 슈퍼커브였다가 수 톤짜리 화물차가 된 느낌이었어. 연비가 너무 안 좋아진 거지. 그럴 때는 마음을 느긋이 먹고 천천히 움직이는 게 맞는 거 같으면서도, 동시에 얼른 안정을 찾고 싶은 마음도 컸어. 얼른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고 루틴을 만들고 싶었어. 근데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왜 이렇게 많냐? 리스트가 끝도 없이 이어졌어. 이거 사고 나면 저게 또 생각나고 하면서. 그래서 연비 안 좋은 몸을 끌고 많이도 움직였지. 어떤 날은 옥수수전분을 찾겠다고 마트를 한 시간 동안 뒤지고 다니기도 하면서... 왜 그땐 누구에게 물어보지 못했을까.


하루하루 지날수록 내 마음 상태가 나아지는 게 보여. 이곳 문화에도 적응하고 언어에도 적응하면서 말이야. 아직 한 달도 안 지났는데 이 정도면, 6개월 1년이 지나면 내가 이곳에 얼마나 잘 스며들어 있을지 기대가 돼.


앞으로를 생각하며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면 사실 꽤나 불안했어. 확실한 게 없으니까. 얼마 전까지도, 독일어 시험을 잘 통과할 수 있을까?, 내 조건으로 대학 예비자과정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 후에 심리학과에는 들어갈 수 있을까?, 같은 생각들이 계속 들더라. 근데 오직 독일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이 내 목표가 되면 그것에 너무 집착하고,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어. 그리고 결과에 과하게 반응하겠지. 그래서 '독일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매 순간에 집중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상위 목표로 하려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지만, 재미나게 사는 것에도 집중할 생각이야. 여행도 종종 다니고, 친구 만나러도 다니고, 춤도 추고, 게임도 하면서. 생산성 중독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야.


그렇게 살면 앞으로 다가올 날들도 부담이 되지 않아. 오늘처럼 살다 보면 오는 날들도 오늘 같겠지. 그리고 내가 정말 어떤 것을 이루고 싶으면 방법은 어떻게든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여기 와서도 한국에서는 알지 못했던 독일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몇 개 더 알게 되었으니 말이야.


여기 어학원 첫 수업 주제가 '독일에 대한 첫인상'이었는데 우리 편지 주제랑 맞아떨어져서 참 신기하고 반가웠어. 수업에서는 지하철 티켓 얘기랑 비건 얘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쓰고 보니 다양한 걸 느꼈었네. 참 좋다. 이렇게 주제 정해서 편지 보내는 것. 우리가 계속 영상통화도 하고 메세지도 주고받고 있지만 편지에는 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기대가 돼. 너에게서 오는 편지를 기대하면서 내 편지도 마무리하련다. 4월에도 우리 삶에 집중하면서 잘 기록해보자고.


흐릿한 독일 구름을 보며

하리가

202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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