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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Dec 02. 2015

내친구

성경의 500 가지 문답 - "진정한 친구란 누구인가?"

옛날에 미국 출장 가면 동료들이 재미있는 책을 사 오라고 해서 시간 없어도 서점에 들렀는데, 지난 6월 미국 여행 때에는 비행기 갈아타는 시간이 남아 자발적으로 공항 서점에 들어가 삽화가 화려하면서도 저렴한 책을 한 권 샀다. '성경의 5백 가지 문답'이라는 그 책에는 성경 구절 외에도 일상 윤리에 대한 질의응답이 적혀있는데, "진정한 친구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이다.


언뜻 생각해 보니 어릴 적에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에 대해 읽은 생각이 난다. 어떤 사람이 돼지를 잡아 자루에 넣어 친구들을 찾아가서 자루를 보이며 자기가 살인을 했으니 좀 숨겨 달라고 부탁하자 모두 거절했는데, 오직 한 친구만이 그를 집안에 맞아들였단다. 비로소 그는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진짜 친구'를 찾았다고 기뻐하며 자루 속의 고기로 함께 잔치를 벌였더란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는 마치 보험에 든 것처럼 위기를 막아줄 사람이니 이해득실을 따지면 '이로운 친구'인데, 기독교도 유교도 모두 이런 '상업적인 우정'을 바탕으로 '진정한 친구'를 정의한다. 이런 친구는 동서양의 교리와 윤리가 받쳐줄 정도로 '모범적인 친구'의 전형이라 아주 희귀한 것 같지만 실은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친구들을 모아서 서로 안 도와주면 벌을 주는 친목계를 조직하면 되니까! 하지만 우정은 나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만을 따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값싸게 좋은 물건을 고르기 위한 선택 방법과 계약 조건일 뿐이다. 


1580년에 출판된 '수상록(Les Essais)의 1권 28장 - 우정론'에서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 -1592)는 라보에씨(Etienne de La Boétie, 1530 - 1563)와 나눈 우정에 대해 이렇게 썼다.


"흔한 말로 우정은 어떤 기회 또는 편의에 의하여 우리의 영혼이 맺어진 친교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우정은 '두 영혼이 뒤섞여 하나가 된 것'인데, 왜 그를 좋아했는지, 어떤 힘이 우리를 연결시켜 주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나중에 그는 책의 여백에 "그를 좋아한 것은 '그가 그였고, 내가 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나 보기도 전에 서로를 찾았던 것이다."라고 주석을 덧 붙였다.


요컨대 우정이란 꼭 집어서 설명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고 '도와주는 것'과 전혀 관계없는 개념이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성서적 의미의 '진정한 친구'될 실질적인 능력도 없고, 몽테뉴처럼 친구와 더불어 '영혼의 혼연일체'를 맺는 것을 오히려 매우 징그럽게 여기는 나 자신은 결국 '진정한 친구'를 한 명도 가지지 못한 셈이다. 만약 내가 아는 '흔한 친구' 중에도 서로 마음 터놓고 믿을 만한 사람만 가려내어 '진정한 친구'라고 여긴다 해도 기대치가 아주 낮으니 한 명이라도 두려면 내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야 한다.


- 나를 반성하게 하고 일깨워 주는 친구 -


반성하게 하고 일깨워 주는 친구는 나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좋은 길로 인도하는 친구다. 이런 '잘난 친구'를 옆에 두면 그를 본받아 나도 올라가지만 이런 친구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설령 만나서 서로 사귄다 해도 몇 번 만나 심금을 털어놓으면 오는 말이 잔소리 같고 열등감이 느껴져서 같이 있기가 싫어진다. 진짜로 잘난 친구는 이래서 친구가 별로 없다. - 나처럼.


'잘난 친구'와는 좀 다르지만 '잘난 척하는 친구'도 있다. 이런 친구는 '자기를 치켜세우기' 때문에 당장 얄밉긴 하지만 나를 분발하도록 일깨워 주니, 결국은 '나를 올려 주는' 친구다. 내가 좀 모자라서 혹은 그를 믿을 수 없어서 같이 사업을 하지는 못 해도 이런 친구가 있어야 내 인생에 발전이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잘난 척하는 친구와 잘난 친구는 동격으로 봐줘도 좋을 것 같다. - 고로 나는 잘난 척하는 친구다.


지혜의 말을 들으려고 먼 길 찾아온 왕에게 현자가 이렇게 말했단다. "깨어 있으라!"


내게는 이런 말을 해 주는 게 잘난 척하는 친구다. 어려울 때 한 번 도와주는 친구는 '일으켜는 주지만, 깨워 주지'는 않는다.


- 관계가 끈끈하고 유연한 친구 -


진정한 친구라면 또 우정이 무르익은 '오래된' 친구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귀었다고 해서 우정이 저절로 돈독해지는 것도 아니다. 우정이란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땅에 떨어지면 한 순간에 금이 가고 깨지는 사기그릇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친구 관계에는 가끔씩 떨어지더라도 다시 붙을 수 있는 접착성과 휘어지더라도 부러지지 않고 다시 펼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폭발적 인성으로는 돈독한 우정을 맺기 어렵다. 하지만 몇 번 싸우고 나서도 다시 화해할 수 있으면 끈끈한 우정이 지속된다. - 난 이걸 알면서 왜 못 했을까?


올여름에 20년 넘게 사귄 독일 친구가 며칠간 우리 집에 머물렀는데, 각자가 경험한 미국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대화 중에 친구가 얼굴을 붉히며 말 그만하자고 해서, "친구 간에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대꾸했더니, 이후로 연락이 끊어졌다. 아직도 그 절교의 여파가 남아서 그런지, 지난 메일에 주제넘게 '선거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적어 보낸 것이 행여나 "친구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지나 않았을까?" 걱정된다. 돈도 없고 친구도 없으면 세상 살기 꽤나 힘드는데, 그 몇 없는 친구들마저 깡그리 잃을 엄청난 모험을 했나 보다. - 모험이 밥 주냐?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기원전 106 - 43, 로마시대의 정치인, 문학가)는 '우정론'에서 "일반적으로 사람의 성격과 연령이 무르익고 굳어지기 전에는 그 우정의 진위를 판별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이제 세치가 은빛을 반사하는 나이의 내 머릿속에는 '우정의 진위'를 가릴 생각보다는 "연락 불통의 늙은 친구들이 혹시 먼저 가며, 나한테 유산이라도 남기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더 많이 일고 있다.


일찍이 내 '진정한 친구'들이 깜깜무소식되기 전에 내 깡통 계좌번호라도 알려 줄 걸! 후회가 막심하다.


- 2012년 12월 10일, 내 계좌번호는 공상은행 082-04908949-89. 치매 걸리기 전에 세 번만 복창하면 영원히 기억에 남을 거야!


'진정한 친구들'에게 우정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고 은행계좌까지 알려줬는데, 아직까지 무엇 하나 굴러 들어온 것이 없으니, 앞으로 무얼 먹고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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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에 관해 깊이 성찰해 본 적이 없지만 친구가 별로 없는 내가 책 읽고 화가 나서 독후감 쓴 것이었네.


"사람은 그가 사귀는 친구를 보면 안다."고 하는데, 나는 어릴 적부터 내성적이고 혼자서도 잘 놀았기 때문에 친구 사귀는데 소홀하여 친구가 별로 없으니, 남이 누구를 내 친구로 보고 간접적으로 나를 평가할 수 있을까? 우정도 사랑처럼 주고받아야 제대로 유지되는 것인데, 내가 관심을 많이 안 주니까 가까이 오는 친구도 별로 없었던 것이네. 만약에 친구가 좀 더 있었더라면, 잘난 척한다고 구박 맞으면서라도 정을 느끼며 품행도 잘 다듬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네. 아직 젊지만 나이 좀 드니까 좋은 사람 만나도 친구로 사귀기가 어려워서 이젠 멀리서 존경만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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