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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Dec 14. 2015

자존심

중년에 꼭 필요한 약

"사업과 가족에 매여 정신없이 산다"는 한 친구가 "죽은 것과 산 것이 무슨 큰 차이가 있느냐?"는 말을 하기에 생각해보니, 정도야 어떻든 간에 욕심대로 되지 않는 일에 시간만 빼앗기고 있는 나 역시 삶에 대해 염세적(厭世的)인 면이 있다. 게다가 중년에 이르니 연륜(年輪)이 늘어나는 만큼 일의 능률(能率)도 떨어져, 가끔씩 의기소침(意氣銷沈)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적어도 낙관주의자이다. 비록 잘 굴러가지 않는 고물 자동차이긴 해도, 시동도 걸리고 기름통 비워질 때까지는 아직도 먼 길을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한창 젊을 때보다야 정력이 감퇴하긴 했지만 소진(消盡)한 것도 분명 아니고, 내세울 일은 딱히 없어도 지나 온 세월 동안에 쌓인 경륜이 있다. 인생의 경륜이란 몸을 지탱하는 뿌리인데, 세월 감에 따라 알게 모르게 깊어지니, 막히는 일에 부딪혀도 역부족이라고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천천히 뚫고 나가려는 '온건한 투지'만 있으면 해결된다고 믿는다.


강자(强者) 하나가 수많은 적들을 물리치고, 먹이를 다 쓸어 가는 이 치열한 싸움판에 무슨 '온건한 투지'냐고 하겠지만, 높은 데만 보지 말고, 기대수준(期待水準)을 좀 낮추고 욕심도 많이 줄여서, 주위를 둘러보면, 주워 먹을 건더기가 조금은 떨어져 있다. 이겨서 제일 좋은 것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자책(自責)하기보다는 적은 보상이나마 얻은 자신을 격려하는 것' 또한 성숙한 태도이며, 지혜(智慧)로운 사람이 갖추어야 할 자존심(自尊心)이다.


사전적(辭典的) 정의(定義)에 따르면,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이지만, 나는 현인이 밝힌 사전적 정의보다는 그냥 자구(字句)대로 풀이하여, '자기(自)를 존중(尊)하는 마음(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남'이라는 단어를 뺀 이 간단한 해석에도, '나 자신'이라는 존재는 '남'을 상대로 비교해야 가치를 가름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적 정의를 빌어 논리적으로 해석(解析)해야 뜻이 명확해질 것 같다.


우선 자기(自)의 실체(實體)를 정의하기 위해, "나는 누구일까?"라고 자문(自問)하면, 진정한 자아(自我)를 볼 수 있을 만큼 높은 경지(境地)에 이르지 않아서, 나의 주인공(主人公) 보이지 않는다. 대신 피상적(皮相的)으로 느껴지는 누군가를 ''라고 보니, 결국 '자기''가까이 있는 남'이다.


유교적이든 불교적이든 도덕과 종교의 윤리는 나 아닌 남에게 우선적으로 베푸는 이타주의(利他主義)를 미덕(美德)으로 보는데, 가까운 것을 시작으로 먼 것에 대한 사랑과 관용(寬容)을 행하는 논리에 따르면, '가까 있는 남'을 존중하는 것, 즉 자기존중(自己尊重)은 이타주의의 필요조건(必要條件)이다.


그럼 "자신이 잘난 것도 없이 무턱대고 존중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도 생기는데, 우리 내부에 성인(聖人)절대적(絶對的)인 이상형(理想型)의 자기를 만들어 놓고, 그에 비춰 보면 자신의 모습엔 뭔가 일그러져 있고, 잘하는 남들과 비교하면 상대적(相對的)으로 낮게 보인다. 이런 기준 속에서는 오직 1등만 영광스럽고, 2등은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그러나 좋고 나쁨을 따질 가치기준(價値基準)을 조금 낮게 잡으면, 스스로를 과소평가(過小評價)하여 책망(責望)하지 않고, 예우(禮遇)로 받아 줄 수가 있다.


이제는 우리가 힘들게 중년(中年)의 고개를 넘어왔으니, 더 조여서 떠밀어 올리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안 부리던 응석도 받아 주면서, 인생에 담긴 진미를 맛볼 시기이다. 체념(諦念)하거나 세상을 한탄(恨歎)하지 말자. 당장 안 되는 일이 있어도, 고요히 흐르는 큰 강물처럼 유유히 살자.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위풍당당(威風堂堂)한 헤겔보다는 오래 살았고, 절세(絶世)의 가인(佳人)이나 호탕한 영웅(英雄)들도 모두 일찍 죽었으니, 느긋하게 살면서 인생의 꽃밭에 물을 뿌리자. 낙천(樂天)에 무지개가 핀다.


- 2014년 5월 13일, 염세주의자에게 필요한 약은 정력제가 아니라, 올바른 자존심이야.



- 자존심의 뜻에 대한 소견 -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린 후에 보니까 자존심(自尊心)과 자존감(自尊感)을 다른 것이라고 쓴 글들이 있어서, 혼동을 피하기 위해 ‘자존심’이란 단어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어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영구불변하게 정의할 수가 없지만, 이 글의 의도를 좀 더 정확히 밝히기 위해 조사한 것을 아래에 적었습니다. 물론 저의 주관적인 견해로 해석된 것이니까 이견이 있으시면 댓글에 적어 주시길 바랍니다.


한국어는 고유어와 외래어로 되어 있는데, 개념이나 현상 물체 등이 단어로서 구체화되면 신조어가 생겨나고 교양 있는 많은 사람이 쓰면 표준어로 진화합니다. ‘자존심’이란 단어는 우리의 고유어가 아니라 중국에서 온 한자어이지만, 현재 표준어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자존감’은 자아존중감(自我尊重感)의 준말로서 심리학적 용어로 쓰이고 있지만 아직 표준어로는 정의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존심과 유사한 용어로 자만심(自慢心), 자긍심(自矜心), 자신감(自信感) 등이 있는데, 국어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 자존심(自尊心) [명사]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 자만심(自慢心) [명사]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는 마음.

- 자긍심(自矜心) [명사]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지는 마음.

- 자신감(自信感) [명사] 자신이 있다는 느낌.


정평 있는 웹스터 영영 사전에서는 자만심 자긍심 자신감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만심(自慢心) self–conceit: an exaggerated opinion of one's own qualities or abilities(자신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과대평가), 첫 번째 용례는 1577년

-자긍심(自矜心) self-respect: a confidence and satisfaction in oneself(자신에 대한 신뢰와 만족감), 첫 번째 용례는 1765년

-자신감(自信感) self–esteem: a feeling of having respect for yourself and your abilities(자기의 인격과 능력을 존중하는 마음), 첫 번째 용례는 1657년


일본과 중국에서는 self-esteem, self-respect, pride를 모두 자존심으로 해석하고, 자존심이 ‘있다’, ‘없다’, ‘세다' 등으로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의미를 나타냅니다.


<일본어> - 自尊心(じそんしん, self-esteem)とは、心理学的には自己に対して一般化された肯定的な態度である. 해석: 자존심(self-esteem)이란 심리학적으로는 자기에 대해 일반화된 긍정적인 태도이다.


<중국어> - 自尊(self-esteem) 心理学术语,即自我尊重,亦称“自尊心”、“自尊感”。해석: 자존이란 심리학적 술어로 자기존중을 의미하는데, ‘자존심’ 또는 ‘자존감’이라고도 한다.

 예문 1. Her pride was hurt. 她的自尊心受到了伤害。그녀의 자존심이 상했다.

 예문 2. Panya found his self-respect. 潘雅的自尊心恢复了. 판야는 자존심을 회복했다.


<한국어/출처: 위키피디아 > - 자아존중감(自我尊重感, self-esteem)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존감이라는 개념은 자존심과 혼동되어 쓰이는 경우가 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자신에 대한 긍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긍정'을 뜻하고 자존심은 '경쟁 속에서의 긍정'을 뜻하는 등의 차이가 있다.


이 글은 자존심이든 자존감이든 상관없이 '자기를 존중'한다는 뜻인 '자존'의 필요성을 적은 것입니다.


제 소견을 덧 붙이자면, 자존심이란 단어를 글자 그대로의 뜻을 살려 '자기존중'의 좋은 의미로 해석하고, '자존심이 세다'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는 '자만심 허영심 교만함 자기도취' 등 적절한 말로 썼으면 좋겠습니다. '心(마음)'과 '感(느낌)'이 상반되는 의미가 아니니까, 긍정적인 의미의 자존심도 억지로 만든 '자존감'이란 말로 표현해서 혼동을 일으키지 말았으면 합니다. 안 그러면 나중에는 '애국심'과 구별해서 '애국감', '동정심'과 다른 '동정감' 등 모호한 단어들이 수 없이 나오게 됩니다. 말이란 간편한 게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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