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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 Dec 15. 2015

CEO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경영자)의 추락

2011년 7월 초순 부고(訃告)가 담긴 메일을 받고 곧장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향하여 차를 몰아 독일 북부의 브레멘(Bremen)을 거쳐 배를 타고 발트해(Baltic Sea)를 건너갔다.


남편 사후에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중에, 잘 지내던 이웃은 물론, 옛 친구들과도 사이가 나빠져서, 쓸쓸하게 살다가 생을 마친 니나의 장례식에는 고작 입양한 외아들 가족 세 명과 죽은 남편 올러의 조카딸 한 명이 참석했다. 초라한 장례미사가 끝나고, 하얀 꽃이 올려진 니나의 백색 관(棺)이 영구차(靈柩車)에 실려 화장터로 떠난 후에, 우리는 교회 옆에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가서 가족들과 인사했다. 몇 년 안 본 사이에 많이 변한 니나의 아들과 처음 만난 올러의 조카딸에게 근황을 물으며 가볍게 식사하는 중에, 니나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말들은 입 안에서만 맴 돌뿐, 죽은 니나의 이름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생생하게 체험한 슬픔을 되살려 내기가 겁이 나서, 오히려 오래전에 죽은 남편 올러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식사 후에는 올러의 조카딸에게 물어서 알게 된 올러의 사망 지점으로 향했다. 올러는 2003년 12월 23일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스웨덴의 말뫼(Malmö)를 이어 주는 20킬로미터 길이의 외레순드 다리(Öresund-Bridge) 가운데에 세워 둔 차 안에 가족에게 쓴 유서를 남기고 사라졌다. 경찰은 시신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다리에서 60미터 아래에 있는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진 것으로 추정했다. 바닷물에 표류하던 올러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이듬해 2월 말일, 그의 장례식은 1998년 창설 이후부터 CEO로 일했던 스칸드해운(Scandlines)의 회사장(會社葬)으로 치러졌고, 스칸드 해운의 선박들은 조기(弔旗)를 게양(揭揚)하고 항해했다. 


덴마크 국영철도회사의 최고경영자로 발탁되어 적자회사를 흑자로 일으켜 세우며 경력을 쌓아온 올러는 스칸드 해운을 맡기 직전에, 유럽에서 한국까지 연결되는 유라시아 철도 건설 계획을 내게 설명해 준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 처음으로 평범하게 보아왔던 그의 세계관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감동했다. 올러는 큰 물에서 사는 덩치 큰 물고기였지만, 작은 물고기와도 쉽게 어울렸다. 그는 상대하는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도록 쉬운 질문들을 꺼내고, 대답을 근거로 자기 의견을 말하고 나서, 또 새로운 질문을 계속하기 때문에, 그와의 대화는 오래 끌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 니나는 남편이 떠나기 6개월 전, 회사의 내부 알력(軋轢)으로 연말 퇴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나서부터는 샤워 중에 늘 불렀던 콧노래도 부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강했던 사람이 고작 회사일로 인한 정신적인 압박감 때문에, 자신의 삶을 버리고 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것, 특히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소유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나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직책을 떠나서라도 '올러는 고귀한 존재'라고 믿기에, 그의 죽음은 늘 의문 속에 맴돈다.


'친구'라는 김민기의 노래는 고등학교 때 보이스카우트였던 그가, 동해바다에서 익사한 친구의 소식을 가족에게 알리려고 탄 야간열차에서, 깊은 바닷물 속에 잠겨있는 시신을 생각하며 지은 노래다. 지난 4월에 내가 대서양을 건널 적에 보낸 편지(대서양)에서, 가사 중에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라는 대목에 대한 답을 물어보았던 것은, "올러가 왜 죽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명체가 없어 보이는 막막한 대양을 지나는 동안에, '삶과 죽음과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변했기에, 그것들을 생각해 보자는 제의(提議)였다.


죽은 것도 산 것도 모두 존재하긴 하지만 산 것은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의지에 따라 활동을 한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의지의 표상(表象)이다. 밖으로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으면 산 것이 아니란 말이다.


갑자기 어려서 하던 놀이가 생각나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죽었니? 살았니? 답장 안 써도 된다고 했더니, 정말 안 쓸 거냐? 먹통아!


- 2014년 12월 23일, 구세주 오신 날이 가까워지면 옛날에 먼 길 떠난 친구가 생각난다.


매거진: 다시 쓴 편지 / 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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