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 밭에서 명창의 꿈이 익어 가는 시절
미국에서 돌아와 이것저것 제 자리에 돌려놓을 겨를도 없이 다시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어, 네게 바로 소식을 전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칠월에 1주일간 적(赤) 포도주(Burgundy Wine)로 유명한 프랑스 남부의 부르고뉴 지방의 한 수도원(修道院)으로 성악(聲樂)을 배우러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소리공부에 밤낮이 없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음악공부 소홀히 하고, 평소에도 악보 없이 들은 대로 노래를 불러왔기 때문에, 이제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르려 하니, 장단이 제대로 맞지도 않고 목소리가 가끔씩 끊어져서, 그나마 옛날에 술자리에서 쉽게 부르던 노래들마저도 끝까지 다 부르기가 어렵다.
원래 소리꾼이 되려면, 영화 서편제(西便制)에 나오는 것처럼 펄펄 끓는 온돌방에 누워서 비지땀을 흘리며 고함을 치든가, 판소리의 명창 박동진(朴東鎭)이 그랬듯이 코 막고 뚱물을 들이켜야 목청이 터지는 것인데, 나는 체력도 약하고 비위(脾胃)가 상해서, 그런 득음(得音)의 비법을 실행하지 못하고, 저녁에 집 앞의 슈퍼마켓이 문 닫기를 기다려, 주차장이 비면 나가서 발성연습을 하는데, 행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고 웃을까 봐 겁이 나서 그나마 소리를 죽여가며 음정을 다듬고 있다.
옛날 대학교 삼 학년 때쯤인가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로 시작하는 노래를 별빛 총총한 밤에 고성방가(高聲放歌)하다가 동네 아주머니한테 붙잡혀서 혼난 적이 있기 때문에 밖이 아주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와, 이웃집 사람들 눈치채지 않게 작은 소리로 노래 연습을 계속한다. 내겐 이제 밤이 없다.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나는 한국을 떠난 후에도 하루에 한 번씩은 집에서 노래를 계속해서 불러왔으니까, 그간에 경력을 많이 쌓아 온 셈인데, 그 수련 기간 중에 옆에서 어쩔 수 없이 독창을 감상하며 지겨워하시던 마님이 이제까지 싫은 소리 안 하고 참아내다가, 드디어 나를 수도원으로 보내어 메조소프라노 가수 밑에서 소리꾼으로 키우려는 엄청난 음모(音?謀)를 꾸미기에 이르렀다.
마님은 나를 혼자 가게 하지 않고 온갖 천사들이 북적거리는 수도원까지 굳이 나의 수호천사(守護天使)로서 동행하여 1주일을 같이 보내려고 한다. 아무리 메조 사부님이 메주 같이 생긴 여자가 아니기로서니, 이 귀찮은 소리꾼을 떼어 놓고 한 주일이나마 조용한 삶을 누리는 것이 건강에도 더 좋을 텐데! 마누하님께서는 웬 고생을 그리 하시려는 지?
이 좁은 소견으로는 도저히 그분의 깊으신 마음속을 다 헤아릴 수 없사와, 그분이 다만 거룩하실 뿐이다. 그러니 내가 요새 기를 쓰고 소리 공부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다. – 미션(Mission):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그분만을 찬양(讚揚)하리라!
수도원에 들어가서 완성해야 할 노래는 사부님의 명에 따라 내가 선택을 했는데, 곡목들은 베이스(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적(魔笛)에 나오는 아리아: ‘In diesen heil'gen Hallen – 이 신성한 전당에서는’)에서부터 테너(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Con Te Partiro - 함께 떠나리’, 플라씨도 도밍고가 부른 ‘La Golondrina - 제비’)까지 넓은 음역을 포함하기 때문에 모두 소화하기가 어렵다. 나나 무스쿠리가 부른 ‘Plaisir d’amour - 사랑의 기쁨’과 동요(童謠)인 ‘등대지기’도 소화제(消化劑)로 끼워 넣었다.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칠월에 포도밭이 한없이 펼쳐진 프랑스 남부의 부르고뉴에서 마님을 위해 목 터지게 노래 부를 이 소리꾼을 생각하노라면, 나처럼 네 가슴속에서도 단심가(丹心歌)가 우러러 나올 것인데, 그 소리를 네 사모님께 발성공양(發聲供養)하면, 얼마나 큰 공덕(功德)을 내리시겠냐?
- 2012년 6월 28일 노상에서 방가 하다가 돌아와 님 전에 소야곡(小夜曲)을 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