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 4주 4천 마일
록키산맥을 따라 남행하던 중에 해가 기울어 우리는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과 거기서 멀지 않은 코다크롬 베이슨을 관람하기에 편리한 팽귀치(Panguitch)에서 밤을 보냈다.
아침에 브라이스 캐니언으로 가는 길에 황갈색의 바위들이 기둥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는 것이 마치 사진에서 본 브라이스 캐니언과 흡사해서 다 온 줄 알고 차를 세우고 열심히 사진 찍다 보니, 레드캐니언(Red Canyon)이란 푯말이 박혀 있다. 드디어 알아냈다. 국립공원 패스가 왜 필요한 지! 왜냐하면?
패스 없이 들어가서 찍은 사진은 국립공원 방문 기념사진이 아니라는 걸 미리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지도를 보니,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Bryce Canyon National Park)은 15마일 밖에 있다.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의 안내소에 들어가 공원 관람에 필요한 정보를 열람하고, 공원 안에 서식하는 동물에 대해서도 읽어 보는데, 유리 상자 안에 방울뱀이 꼬리를 흔든다. 혹시 길을 걷다가 저런 놈을 만나면 어쩔 것인가? 신발 끈을 다시 매고 안내소를 나온다.
브라이스 캐니언의 계곡 안은 우뚝 선 바위들로 가득 차 있다. 결국은 같은 바위들이라도 보는 지점과 해의 높이에 따라 형색을 달리하는 까닭에 캐니언의 가장자리를 따라 여러 곳에 주차장과 전망대가 있고, 캐니언 아래로 내려가는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며 산책도 할 수 있는데, 길이 가파르고 미끄러워서 감히 내려가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혹시 방울뱀이 나올지도 모르고...
애리조나와 유타의 여러 공원들에서 유사한 바위들을 숱하게 보았지만, 이곳에 있는 바위들은 나란히 줄지어 삐죽삐죽 솟아 있어서 마치 무수한 군중이 모여서 소리치는 듯하다.
가끔씩은 기둥처럼 우뚝 솟은 바위에서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 땅으로 떨어진다. 굉음과 함께 땅에서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이 광경을 멀리서 보니 아래 내려가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 위에 돌이 떨어지는 사고가 나면 다시 일어나기 어려운데 다행히도 낮에는 이런 불상사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낙석이 떨어지는 것은 주로 밤이란다.
공원 관람은 캐니언 주변 도로를 달리다가, 가끔씩 내려서 캐니언 안의 경치만 보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 커피라도 한 잔 마시려고 우리는 공원 식당 옥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우리 옆 테이블에는 미국인 부부 여럿이 모여 있는데, 특히 아줌마들이 큰 소리로 연설하고 아저씨들은 조용히 경청만 하고 있다. 아줌마 다섯 명이 각자 착한 남편을 끌고 와서 단체교육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남편들을 동정 어린 눈으로 흘낏 바라보고 나서 빙그레 웃는다. 그때, 우리 마님이 커피를 쟁반에 받쳐 들고 와서 테이블 위에 놓고는, 초콜릿도 좀 사 올 테니까 기다리라며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마님이 다시 쟁반에 초콜릿을 받쳐 들고 와서 사람이 많아서 줄 서 있느라고 늦었다며 자리에 앉는다. 그 순간, 전부터 나를 째려보던 옆 테이블의 한 부인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언성을 높인다. "무슨 남자가 손가락 하나도 꼼짝 안 하고, 아내가 가져다 바치는 것만 먹고 앉아 있어요?"
겁도 없이 우리 마님의 귀한 남편께 꾸중을 하다니! 엄청 놀랐지만 좀 미안한 생각도 들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아내를 너무 잘 길들여 놔서 그래요. 전에는 아줌마랑 똑같았었는데... 낄낄!" 그러자, 이번엔 남편 한 분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탁 치고 벌떡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온다. 내가 자기 아내한테 공손하게 사과 안 했다고, 그 여자 남편이 화가 난 것 같다. 겁이 나서 내가 등을 뒤로 젖히니까, 자기도 내 앞에 멈춰 서서 고개를 떨군다. 늑대도 아니고 곰도 아닌 사람이 또 내 앞에서 묵념을 하니 간이 콩알만 하다.
주먹이 날아오는 줄 알고 눈을 감고 기절할 준비를 하는데, "선생님, 비결이 뭡니까? 제발 가르쳐 주세요!" 한다. "네? 무슨 비결을?" 놀라서 되물으니, '아내 길들이는 비결'이란다. 좌중을 둘러보니 남편들의 기대에 찬 미소! 이들을 한평생 편히 살게 해 주고 싶다.
"좋습니다, 형씨들 식당 안에 들어가서 가르쳐 줄게요. 수강료는 50$입니다." 아저씨들이 50$를 테이블 위에 놓고 모두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몇 분 후면 저분들이 모두 나처럼 될 겁니다. 낄낄!"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려는데...
내 말을 듣고 흥분한 한 아줌마가 우리 마님한테 내가 한 말이 정말이냐고 묻는다. "그럼요! 내 친구 남편들도 내 남편의 강의를 듣고 몇 분 후에 모두 새 사람 됐어요! 호호호!" 이 말이 끝나자, 갑자기 그 아줌마가 나를 따라와 50$를 주면서 강의하지 말고 그냥 가 달란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100$만 챙겨서 허겁지겁 자리를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