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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코다크롬 베이슨

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 4주 4천 마일

by lo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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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코다크롬 베이슨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을 빠져나와 마님이 운전석에 앉아 가속페달을 밟으신다. 수강료 떼어먹고 급히 달아나는 게 아니라... 해가 지기 전에 어서 코닥크롬 베이슨(Kodachrome Basin)을 보기 위해서다. 관광객이 별로 없는 곳이라 텅 빈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려가니, 곧 작은 마을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 과속 운전자

시속 25마일이란 경고판이 길에 세워져 있지만 집도 없고 차도 없는 넓은 교차로를 지나고 나니까, 길 옆에 있던 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우리 뒤를 쫓아온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마님한테 경찰이 쫓아오니까 차를 세워야 된다고 말하니까, 우리를 잡으러 온 거면 경찰이 우리를 앞질러 가서 경고할 거라며 마님은 순찰차가 가까이 올수록 가속페달을 더 열심히 밟는다. 꼭 언제 이런 미국 영화를 본 것처럼... 그래도 순찰차가 바짝 뒤 쫓아오는 것이 심상치 않아, 마님께 서 달라고 설득하다 못해 애원까지 하는데도 마님은 내 말에 콧방귀만 뀌신다. 어디에 이런 마님 길들이기 강의가 있으면, 조금 전에 받은 100$를 다 주고라도 꼭 강의를 듣고 싶은 심정이다.

경찰도 경적은 안 울리고 침착하게 사이렌만 울리며 끈질기게 쫓아온다. 아무래도 경찰이 총을 쏴서 타이어에 펑크를 낼 것 같아 내가 소리친다. "마님! 뒤 좀 보시옵소서!" 백미러에 눈을 돌려 딱 달라붙은 순찰차를 보신 마님이 마침내 브레이크를 밟는다.

내가 차에서 내려 뒤에 선 순찰차로 다가가려니까, 차에서 나온 경찰이 권총을 빼들고 차 안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친다. 겁이 나서 냉큼 들어가 앉았더니, 운전석으로 다가와 운전면허증을 보여 달란다. "유럽에서 오셨군요? 친구들한테 보여 줄 기념품입니다." 경찰은 100$짜리 벌금 딱지를 주면서, 자기랑 추격전 벌인 건 봐주지만, 시내에서 과속운전 한 건 어쩔 수가 없단다.

"집도 한 채 없는 텅 빈 사거리가 시내예요?" 어이가 없어서 대꾸를 했더니, 그게 50$ 깎아 준 거니까 미국 떠나기 전에 납부하란다. 세상에! 개가 다 웃을 일이다. 그런데, 어라? 구경꾼이 있어서 앞을 보니 진짜로 개가 와서 웃고 있네. 나중에 사진을 보니 그건 여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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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 정경

코다크롬 베이슨으로 들어가니 브라이스 캐니언과는 아주 다른 경치가 전개된다. 우선 우리 말고 관광객이 한 명도 없고 적갈색의 기암들만 몇 개 서 있고, 규화목도 홀로 서 있는 풍경은 브라이스 캐니언의 무수한 군상들에 비하면 너무 적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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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의 산책로를 따라 언덕길을 오르니, 공원 입구에서 보이지 않던 적갈색의 기암들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온다. 붉은 바위들이 뭉실뭉실 뭉쳐있기도 하고, 머리가 희끗한 바위들이 죽순처럼 솟아 있기도 하다. 키 작은 나무들 곁에는 가끔씩 풀도 있고 야생화도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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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을 산책하다 보니 산토끼가 근처 풀 밭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다. 발소리 죽이고 가까이 가서 보니 잭레빗(Jack Rabbit)이라는 산토끼인데 귀가 유난히 크다. 근처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그 귀 안쪽 표피에 혈관이 많은데, 거기에 흐르는 혈액이 자동차의 라디에이터처럼 열을 발산해서 체온을 조절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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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계획했던 서부의 국립공원들을 모두 다 봤으니, 이제는 마음 가볍게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벌금 딱지를 준 경찰이 미국을 떠나기 전에 법원에 가서 벌금을 내라고 권고했으니, 우리는 아침밥 먹고 바로 팽귀치에 있는 법원으로 간다.

- 고속 운전자 표창장

법원 문을 여니까, 나이 지긋하신 아줌마가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 사무실로 안내하신다. 책상 두 개가 있는 넓은 사무실에 판사님 자리는 비어 있는데, 아줌마 책상 위에는 커다란 유리병에 울긋불긋한 '알사탕'이 가득하다. 우리가 벌금 딱지 받은 상황을 잘 설명하면 벌금 안 내고 사탕만 받고 나올 것 같다.

"집도 없는 곳에 속도를 25마일로 제한해 놓고, 숨은 경찰관이 지나가는 차를 잡아서 벌금 딱지 주는 게 혹시 장난이 아닌가요?" 내가 이렇게 질문하니까, 아줌마는 벌금 내러 온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말한다며, 100$를 내놓으라고 엄숙하게 대답하신다.

지갑을 열고 보니 솔트래이크시티의 주차장에서 받은 봉투가 접혀 있어서, 뜯어봤더니... What else! 클루니가 어떻게 미리 알고 100$를 봉투에 넣었을까? 이 사람을 꼭 만나서 따져 봐야겠다.

벌금을 접수하신 아줌마는 마님의 이름과 생년월일, 과속 운전 장소 등을 컴퓨터에 입력해서 벌금 낸 영수증을 마치 고속 운전자 표창장처럼 두꺼운 종이에 크게 인쇄해 주신다. 그걸 받으신 마님은 집에 돌아가 액자에 넣어서 길이 보전하자고 하신다. 나도 유리병에서 알사탕을 한 알 꺼내어 입에 물고 즐겁게 법원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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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베이거스를 향하여

팽귀치의 아름다운 거리를 천천히 관통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리는 3주일 전에 지나 온 자이언 국립공원을 향해 달려간다. 고속 운전자 표창장은 이미 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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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귀치를 떠나 한가한 시골길을 따라 내려가니 붉은 바위들이 얼굴을 내밀고, 풀이 무성한 초원에서는 양 떼와 소들이 풀을 뜯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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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자이언 국립공원으로 들어오니, 마치 추억의 길로 돌아온 것처럼 반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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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일 전에 자이언 국립공원을 떠나던 날 아침, 호텔 앞 잔디밭에서 한 할머니에게서 피칸호두 1파운드를 샀는데, 이제 다시 지나가는 길에 그 할머니가 사신다는 집을 찾아가니, 할머니는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온 우리를 반가이 맞으며, 냉장고에 잘 보관해 둔 마지막 호두 1파운드를 꺼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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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고 나서, 고속도로로 들어와 줄곧 대형트럭들의 짜릿한 경적을 들으며 사막길을 달린다. 환상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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