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국립공원 여행 13
웨스트옐로우스톤에서 쏠트래이크시티(Salt Lake City)까지는 남쪽으로 300마일(약 500킬로미터), 바로 달려가면 다섯 시간쯤이면 도착할 거리다. 잘하면 해지기 전에 시내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차갑게 부는 아침 바람을 등지고 남서로 차를 몰았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30마일쯤이나 달렸을까? 계기판에 오일 경보가 깜박인다. 매뉴얼에는 2500마일마다 오일을 교환하라고 적혀있는데, 차를 렌트하고부터 500마일을 초과해 이제 막 3000마일을 달린 시점이다.
주위에는 산밖에 없고 가까운 도시에 차량정비소가 있다고 해도 적어도 30마일은 더 가야 한다. 혹시 경보를 무시하고 계속 달리다가 엔진과열로 차가 타버리지나 않을까? 가속페달을 세게 밟을수록 흡입-압축-폭발-배기의 사이클이 엔진을 팔팔 돌게 하고, 불안-초조-근심-걱정의 사이클도 심장을 펄펄 뛰게 한다. 부웅부웅 콩닥콩닥 부웅부웅 콩닥콩닥...
휴-우, 긴 한숨을 쉬고 긴장 완화! 차량정비소에서는 침착해야 하니까! 마침내 뱀강(Snake River)이 굽이치는 세인트안토니(St. Antony)에서 엔진오일을 교환하고 나서, 안심하고 록키산맥을 따라 유유히 남쪽으로 내려갔다.
쏠트래이크시티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그레이트쏠트래이크(Great Salt Lake)에 가서 보니, 호수의 이름과는 달리 소금(Salt)이 쌓여 있지 않고, 여느 호수들처럼 물이 차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호수에는 몇 개의 섬이 있는데, 제방길로 육지와 연결된 앤틸로프섬(Antilope Island)으로 건너가 안내소에 들어가니 호수의 생태 전시관인데, 작은 수족관에 물고기는 없고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 같은 것만 물속에서 꿈틀거린다. 호수에는 물이 너무 짜서 물고기가 살지 않지만, 물새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는 부지기수의 이 작은 브라이언 새우(Brian Shrimp)와 파리의 유충들이 호수에 서식하기 때문이란다.
섬을 둘러보며 앤틸로프섬이니까 앤틸로프가 여기저기 뛰어다닐 줄 알았는데, 고작 군데군데 한 마리씩 떨어져서 풀을 뜯고, 키다리 철새들도 풀밭에 내려앉아 먹이를 뒤지고 있으니 사방이 조용하다.
잔바람도 없이 고요한 섬을 빠져나가다가 제방길에 잠시 멈추어 거울 같은 수면에 초점을 맞추는데, 마침 흐릿한 수면으로 떨어지던 새가 호수에 비친 제 모습에 놀라 우물쭈물하다가 허공으로 되돌아 가는 영상이 잡힌다.
쏠트래이크시티에 들어오니 이미 해질 녘이라 조셉스미스기념관(Joseph Smith Memorial Building) 옥상으로 바로 올라갔다. 역시 모르몬교(한국어 공식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창시자의 이름이 붙은 건물인 만큼 옥상의 식당도 근사한데, 운 좋게도 문 앞에서 대기하고 계시던 천사님이 전망이 아주 좋은 테이블을 내주신다.
창 밖을 보니 노을 져 붉은 하늘에 얼굴마저 달아올라 갈증이 난다. 시원한 맥주 한 잔만 주세요! 이번에는 꽤 귀여운 천사님이 메뉴판을 보이시며 술이나 커피 같은 자극성 음료는 없다고 하신다. 할 수 없이 메뉴에서 대충 찍어서 물 안주 삼아 저녁 먹으며, 교회 첨탑에 서서 나팔부는 모로나이(Moroni - 몰몬교의 수호천사) 뒤로 해 지는 모습만 맥(주) 없이 바라보았다.
다음날 모르몬교회의 주요 건물들이 모여 있는 템플스퀘어(Temple Square)의 방문자센터(North Visitors Center)에 들어가 자원봉사자의 안내를 받았다.
우리가 만난 자원봉사자들은 필리핀에서 개인적으로 모은 자금으로 선교하러 온 아가씨들이었는데, 벽화로 둘러싸인 전시관을 돌면서, 모르몬교회에 대해 설명했다. 간간이 선지자(Prophet: 모르몬교회의 최고지도자)님께도 경의를 표하면서 전도에 힘을 쏟는 봉사자들이 시키는 대로 성구들을 복창하면서 착하게 견학을 마쳤다.
모르몬교에는 성경책과는 내용이 전혀 다른 600여 페이지로 된 모르몬경이라는 경전이 있는데, 세계 각국어로 번역된 경전을 무료로 배포한다. 진열대에서 한국어본을 하나 들고 조금 흩어보니, 등장인물들이 성경책에서 전혀 보지 못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전날 저녁에 식당에서 보았던 본당(Salt Lake Temple)은 신자들 중에서도 교구장(Bishop)의 허가서를 받은 순결한(순결 조건 - 커피를 마셔도 안된다) 교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의식 전용 건물이라서, 근처만 기웃거리는데, 거기에서 여름에 하루 평균 100쌍의 결혼식이 열려서 그런지, 주변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들이 사진 찍는데 여념이 없다.
우리도 템플스퀘어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교회역사박물관(Church History Museum)에 들어가, 모르몬교가 창시된 1830년 전후의 생활상에 대한 전시물을 관람한 후에 옆에 있는 가족역사도서관(Family History Library)에 가 보았다.
거기에는 세계 각처에 선교사로 나가 봉사하던 사람들이 마이크로필름에 담아온 각국의 가족관계 문서들이 영인본이나 전산자료로 보관되어 있는데, 무료 검색과 열람이 가능하기 때문에 색인을 열람해 보니, 한국의 옛날 양반가의 족보들도 필름에 보관되어 있다.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 건물들 중에는 공식적 기록에 27명의 아내를 두었던 제2대 선지자 브리감 영(Brigham Young)이 살았던 두 저택이 있다 - 1854년에 건축된 벌집(The Beehive House)과 통로로 연결된 사자집(The Lion House).
건물 내부에 들어가니 살롱에는 하프도 있고 아이들을 재웠던 요람들도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인상적인데,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얘기가 놀랍다. 본처 다음에 둘째 처와 9명의 아이들이 살았다는 벌집은 그렇다 치고, 16명의 아내와 53명의 아이들이 살았다는 사자집은 왕궁처럼 크지도 않은데 어떻게 같이 모여서 살았는지 모르겠다. 특히 그 많은 아내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살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공자님이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 했는데, 이 정도면 제가(가정을 관리함)의 천재는 단연 브리감 영이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라 쏠트래이크 타베르나클(Salt Lake Tabernacle)에 갔다. 1867년에 건축된 이 건물은 2년간의 공사를 거쳐 2007년에 완전히 개조하여 달걀 모양의 알루미늄 지붕이 씌워져 있는데, 매주 일요일마다 360명의 성가대원들이 파이프의 개수가 11600개인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오르간의 반주에 맞추어 합창을 한다. 3500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이 음악회는 일요일 아침 9시 30분부터 10시까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서도 30분간 방송되는데, 1929년에 라디오로 방송된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세계 최장기 방송 프로그램이라 한다.
음악회가 끝났으니 주차장 요금 내고 빨리 나가야겠지? 주차비를 내려는데, 주차장 관리인이 자리에 없네. 하나님네 주차장에 5달러라고 크게 적혀 있는 요금을 안 내고 나가면 벌 받지 않을까? 어떻게든 내고 가려고 입구에 서 있으니, 차를 타고 나가는 사람마다 내가 관리인인 줄 알고 요금을 물어본다.
하나님 맙소사! 캡을 쓰고 돈가방을 어깨에 두른 내 모습이 누가 봐도 관리인이다. 순간 눈이 번쩍! 만약에 5달러 대신에 2달러씩만 받아도 500대 다 나갈 때까지 내가 그냥 서 있기만 하면 1000달러가 들어오겠네. 하지만, 그건 상상일뿐, 요금을 내려는 분들께 나는 그냥 공짜라고 대답하고 즐거운 웃음만 받는다.
그런데... 잘생긴 신사가 스포츠카를 타고 나가며 나에게 헌금봉투를 건내주고 지나간다. 그가 누굴까? What else? 아니, Who else? 다름 아닌 조지 클루니! 분명 그 사람이다.
쏠트래이크시티 시내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빙감캐년마인(Bingham Canyon Mine)은 광석을 채굴하기 위해 땅에 터널을 만들지 않고, 지표면에서부터 직접 아래로 파내려 간 노천광산인데, 1906년에 구리광석을 파내기 시작하여 지금(2008년)까지 중심부의 깊이 970미터, 가장자리의 폭이 4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구덩이가 되었다.
이 광산은 미국의 노천광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돼서, 1966년부터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관람객들을 받는데, 구덩이 가장자리에 위치한 광산 안내소에는 광산의 역사와 채굴에 대한 기술적 설명이 전시되어 있다.
안내소 내부에는 넓은 창이 열려 있어, 음성안내와 함께 채굴 현장도 관람할 수 있는데, 멀리서 보니 지름이 3미터가 넘는 바퀴가 달린 30톤 트럭이 작은 성냥갑처럼 보였다.
광산을 관람하고 다시 내려갈 때는 광석을 선별하고 남은 부스러기들을 광산 주변으로 싣고 가서 아래로 쏟아부어, 만들어진 평평한 산들을 많이 보았는데, 색이 연한 흙으로 덮인 산비탈이 마치 경사면에 파스텔을 문질러 큰 그림을 그려 놓은 듯했다.
광산에서 내려와서는 길과 숙소는 사정을 봐가며 정하기로 하고, 능선에 하얗게 눈이 덮인 록키산맥의 고봉들을 옆에 끼고, 브라이스캐년 국립공원을 향해 네 시간 동안 350킬로미터를 달린 후에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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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랜드캐년 사우스림(+우팥키공원과 화산, 메테오르 크래이터, 윈슬로)
11. 엘로우스톤 국립공원을 향하여(+그랜드테튼 국립공원)
13. 쏠트레이크씨티(+그레이트쏠트레이크, 빙감캐년마인)
14. 브라이스캐년(+코다크롬배이슨, 라스베가스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