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어머니 장례식 치루고 돌아온지 어언 3년, 그간 가족들 소식은 큰누나를 통해 간간히 들었으나 친척들과는 직접 통화를 하거나 메일을 주고 받지 못하여 올 봄에는 한국 가서 가족들 만나 인사하고 조현병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누나도 돌봐 주려고 두 달 전부터 서울 갈 준비를 했네.
이 번에는 병든 누나 사는 집 수리하고 살림도 정리해야 되기 때문에 마님 없이 나 혼자 가기로 했는데, 한국 가기 전에 우선 몇 해 전부터 우리 집 수리하느라고 쌓아둔 잡동사니부터 다 치우고 옛가구들도 고치고 자리 바꾸는 일이 중요하므로 만사 제치고 집안 대청소에 몰입했지. 날새기 무섭게 기상하여 출근하고 취침으로 퇴근하는 근무지에서는 날마다 바쁜 일손이 숨차게 움직였다네.
그런와중에 독일 사는 친구 생일에 초대 받아 2주 전 베를린에 갔었는데, 생일 잔치에 온 많은 하객들 중 쓸만한 카메라 들고 온 사람이 없어서, 전에도 그랬듯이 이틀에 걸쳐 4백여 장의 사진을 찍어 밤새 선별 정리하고 편집해서 생일 축하 앨범 만드는데 혼신의 노력을 쏟았네. 그렇게 밤잠 거르며 지낸 사흘 동안 마침 강추위가 몰아닥쳐 거리에 나다니는 중 얼굴이 빙판처럼 얼고 코 끝에 고드름이 달릴 지경이었네만, 햇빛이 쨍쨍하여 연일 가벼운 걸음으로 시내를 산책했지.
생일 사진첩: 저녁 식사와 박물관 단체 관람
사흘 후 기차 타고 베를린을 떠나 마그데부르그(Magdeburg)에 도착해서 2차 대전 때 도시 전체가 폭격을 당했는데도 온전히 남은 대성당과 자연사 박물관 등 고적을 둘러 보았네. 이 도시에 대해서는 17세기에 시장을 지낸 과학자 오토 폰 게릭(Otto von Guerick)이 '반구 두 개를 붙여 만든 구면체의 공기를 빼 내고 말들이 양쪽에서 끌어 당기게 하는 기압 실험'을 했다는 걸 물상(과학과목) 선생님께 배운 기억이 있어서, 25년전에 베를린 구경 갈 적부터 마님과 함께 가 보자고 했었는데 드디어 소원을 들어주셨네.
베를린과 마그데부르그의 사진첩
여행에서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베를린과 마그데부르그에서 찍은 사진들을 편집하느라 창 밖의 풍경도 주마간산 하듯 흘려 보내며 1주일 전에 집에 돌아 와서는 바로 거실 가구를 변형하고 소품 정리하는 작업에 전념했는데, 오늘 아침에야 겨우 남은 잡동사니 다 치우고 공항으로 갔네. 공교롭게도 택시 운전사들이 새벽부터 시내 외곽의 교통을 방해하면서 데모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시외 공항까지 기차 타고, 거기서 비행기로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해 이제 서울행으로 환승을 기다리고 있네.
그참에 테블릿 키 두드리며 자네에게 근황 소식 적다가, 난데없이 초콜릿 이야기를 끼워 넣고 있지.
암스테르담 공항의 쵸콜렛 면세점
아까 공항에 배웅왔던 마님이 집에 돌아가서 "내가 공항에서 사 준 초콜릿 잘 먹었다"는 메세지를 보냈기에, 나도 커피 한 잔 들면서 마님이 정성껏 마련해 준 배낭 속의 사탕이랑 과자, 초콜릿을 먹으려고 활주로가 보이는 창가에 와서 앉았지. 배낭에서 꺼낸 작은 상자 안에는 색종이 싸인 사탕, 귀여운 과자들이 들어 차 있어서 하나 둘 옷을 벗기고 속살 빼 먹다가 얼핏 포장에 찍힌 유통기한을 보니 모두 해 지난 것이고 오직 초콜릿만 두 달 전으로 마감이더구먼.
"마님! 골통품 잘 먹고 있어요. 초콜릿은 유통기한 지난 지 겨우 두 달밖에 ...", 마님 핸드폰으로 메세지 날렸더니 이내 내 핸드폰으로 마님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네. "남의 나라 공항까지 와서 흥겹게 잡동사니 치우고 있어요!" 이에 마님이 또 깔깔! 웃음박이 터졌네. 깔깔깔! 그침이 없이 ... 마님이 이제 깨끗한 집에서 사시게 됐으니 얼마나 좋으실까? 유통기한 지난 걸 보고도 과자랑 초콜릿 다 먹은 나도 즐겁네. 비행중에 배탈 안 나면 더욱 즐겁겠지?
언뜻 생전에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 "남이 해준 음식은 타박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음식은 아무거나 먹더라도 잠자리는 가려 자라"고 훈계하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