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망진, 조랑말

제주마이야기&생각하기

by 김일석

7. 남장하고 달리는 제주의 아가씨, 보셨나요?



7.1. 애마기생(愛馬妓生)


⚬진행자: 얼마 전 <애마부인>에 대해서도 얘길 나눴었는데 조선시대는 소위 “애마기생”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해설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아시는지? 대단하시네요. ‘기(妓)’란 여악(女樂)으로 곧 기생은 옛날의 ‘여성 음악인’을 뜻하는 말인데…


⚬진행자: 그런데 기생이 말을 탄다는 게 좀 의외인데요? 조선시대에 여성들이 말을 탔나요?

⚬해설가: 아, 이거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예요! 사실 조선 전기만 해도 양반가 여성들은 당연히 말을 탔어요. 그런데 문제는 치마를 입고 말을 타면… 뭐가 문제겠어요?


⚬진행자: 아, 치마가 휘날리면서…

⚬해설가: 맞아요! 그래서 개발한 게 바로 “말군(襪裙)”이라는 승마바지였어요. 버섯 말(襪)에, 치마 군(裙) 字지요. 아무튼 치마 위에 덧입는 넓은 바지인데, 통이 넓고 뒤가 트여 있어서 말 등에 걸터앉기 편하고 치마 속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움직임이 좋게 만든 옷이지요. 이게 또 신분의 상징이었어요. 궁녀나 상류층 기생만 입을 수 있었거든요.


⚬진행자: 그럼 일반 여성은 말을 못 탔다는 건가요?

⚬해설가: 맞아요. 말을 타려면 신분이 높아야 했습니다. 말군은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죠.


⚬진행자: 오, 그러면 말군을 입으면 “나 높은 집안 사람이요” 하는 표시였겠네요?

⚬해설가: 정확합니다. 태종 12년(1412년)에는 궁녀와 상기(上妓) 외에는 말군 착용을 금했고, 세종 11년(1429년)에는 여종도 금지했어요. 말군은 그야말로 상류층 여성만의 특권이었죠.


⚬진행자: 아하!

⚬해설가: 세조 3년(1457년)에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어요 당시 술에 잔뜩 취한 예조정랑 우계번이 말을 타고 오다가, 말군을 입지 않은 채 말을 타고 가던 영접도감사 조숙생의 부인을 보고 기생으로 착각해 희롱한 겁니다. 이 사건으로 벌까지 받았죠. 이 일화에서 당시 말군이 얼마나 중요한 ‘사회적 신분증’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답니다.


⚬진행자: 그럼 궁중에서는 계속 말군을 입었나요?

⚬해설가: 네, 19세기 전기까지는 말군 착용 풍속이 이어졌어요. 하지만 점차 여성들이 말을 타지 않고 가마를 타는 문화가 퍼지면서 상류층 부녀자의 말군은 사라졌죠. 이후에는 격이 낮아져 관기(官妓)들의 전용 기마복으로 쓰이게 됩니다. 그런데 제주도는 달랐어요!


⚬진행자: 제주도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해설가: 제주도는 몽골 간섭기부터 목마장으로 유명했거든요. 말이 지천에 널려 있으니 당연히 일반 여성들도 말을 탈 수밖에 없었죠.


⚬진행자: 그럼 제주 여성들만 특별히 말을 잘 탔다는 건가요?

⚬해설가: 환경이 그렇게 만든 거죠.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육지와 다른 독특한 문화가 발달했어요. 말이 많으니 당연히 말 타는 기술도 발달하고, 여성들도 자연스럽게 말을 타게 된 거예요. 이게 바로 ‘풍토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의 실제 사례죠. 심지어 관기(官妓)들은 매년 말 달리기 대회까지 가졌다고 하더군요!


⚬진행자: 정말요? 기생들이 경마를?

⚬해설가: 그렇습니다. 15세기 말에 간행된 『악학궤범』에는 궁중 잔치에서 춤추는 기생들이 말군을 입고 있었다는 기록과 그림이 남아있어요. 이런 풍습은 제주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제주 역시 말을 많이 기르고 여성들의 승마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비슷한 복식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이능화가 쓴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에 보면 “제주 기생이 예로부터 말을 타고 달리는 재주가 있었다”고 언급되고 있거든요.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60여 전에 신광수(1712∼1775)라는 시인이 제주에 와서 직접 본 광경을 시로도 남겼는데…


⚬진행자: 급 궁금! 어떤 내용인가요?

⚬해설가: “남장하고 말 달리는 제주 아가씨”라고 시작하는 시예요. 기생이 남자 옷을 입고 말을 타고 석성 주변을 세 바퀴나 도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어요. 이 시는 이 시는 제주 기생들의 활발한 기풍과 승마 실력을 찬양하고 있지요. 쇠 채찍을 들고 바다를 향해 달리는 모습이 얼마나 역동적이었을지 상상 되시죠?



남장하고 말 달리는 제주의 아가씨/연조(燕趙)의 풍류가 교방(敎坊)에 가득하네/한번 쇠 채찍 들면 드넓은 바닷가로/삼월 돌아온 봄풀 우거진 석성(石城)가로/귤나무 숲 마을길에서 앞 다투어 보는데/혼자 걸어가는 화류(驊騮)들 곳곳에/눈썹을 드러내어 북쪽으로 가게 했다면/천금으로 일찍 우림랑(羽林郞)에게 시집갔을 것을… 신광수의 『탐라록』에 실린 시 ‘성산관기주마(城上觀妓走馬)’



⚬진행자: 와, 멋진데요!

⚬해설가: 네, 게다가 <편자박기>로 유명한 단원 김홍도가 그린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에서도 말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황해도 안릉에 새로 부임하는 현감을 환영하는 장면을 그린, 무려 길이 633cm에 달하는 대형 행렬도인데요. 그 속을 자세히 보면, 승마바지인 말군을 입은 여성이 등장해 눈길을 끕니다. 이 그림은 말군이 단순한 실용복을 넘어, 왕실과 양반가 여성들의 품위와 신분을 상징하는 중요한 복장이었음을 보여주죠.


⚬진행자: 와우~! 그런데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나요?

⚬해설가: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제주도의 승마 문화, 말과 함께하는 생활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독특한 문화유산이에요. 신광수가 본 그 “남장하고 달리는 제주 아가씨”들의 DNA가 지금도 제주 사람들 안에 살아 있는 거 아닐까요?


⚬진행자: 그 시대 제주 기생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우리 삼촌이 말했던 ‘애마부인’ 영화 속 장면보다 훨씬 더 우아하고 멋질 것 같아요. 말군 옷도 한번 입어 보고 싶고…

⚬해설가: 그러게요! 말군을 모티브로 제작한 드레스도 판매되고 있더군요. 하하, 얘기를 하다 보니 ‘애마부인’이라는 표현이 꼭 영화나 현대적 상징에만 머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조선시대 여성문화와도 은근히 닿아 있는 말일지도요. 말과 여성이 함께 만들어낸 역사 속 이야기, 정말 흥미롭지 않나요? 바닷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달리던 그들의 모습은 자유롭고 당당했을 겁니다. 어쩌면 현대 여성들이 꿈꾸는 삶을, 이미 수백 년 전 조선 여성들이 미리 살아내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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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생각하기


❶ 주어진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라.

척박한 제주라는 환경은 오히려 여성들의 승마 문화를 발달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불리해 보이는 조건도 역발상을 통해 자신만의 강점으로 만들어라.

❷자신만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라.

남장을 하고 말을 달렸던 제주 기생들처럼 사회적 시선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재능과 기질을 마음껏 발휘해라. 당당하고 자유로운 태도가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한다.

❸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라.

'애마부인'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현대적 의미에만 국한되지 않고...



✍ 사유의 여백: 당신의 생각을 적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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