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망진, 조랑말

-제4부. 조랑말의 문화적 의미와 상징성

by 김일석

제4부. 조랑말의 문화적 의미와 상징성



1. 살아 숨 쉬는, 표상(表象)


제주를 찾으면 바람과 돌, 그리고 말을 마주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존재는 말이다. 제주의 제주마, 조랑말은 단순한 동물이라기보다는 이 땅의 숨결을 품은 특별한 존재다. 작고 단단한 체구, 또렷한 눈빛, 척박한 자연을 딛고 묵묵히 걸어온 그의 발굽에는 제주의 오랜 역사와 삶이 새겨져 있다. 조랑말은 탐라국 신화에 등장하는 주체로서 오랜 세월 동안 지역 공동체와 더불어 생존해 온 동반자로 평가된다. 제주의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형성된 공존의 역사는 조랑말을 ‘살아있는 영혼’으로 인식하게 한 배경이 된다. 이는 조랑말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섬의 정체성과 긴밀히 결부된 상징적 존재임을 보여준다.

인류는 오랜 세월 상징을 통해 경험과 지혜를 전승했다 상징은 단순히 가시적 형상을 넘어 보이지 않는 가치와 정신을 담아내는 힘을 지닌다. 이러한 상징 체계는 공동체의 응집력과 정체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주의 조랑말은 일개 동물이 아니라, 제주의 자연환경과 역사,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삶과 문화가 융합된 결과물로서 제주의 정신과 혼이 응집된 살아 있는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조랑말은 탐라국 신화에서부터 현대의 문화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하며, 제주의 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결된 다층적 의미를 형성해 왔다. 따라서 조랑말의 상징적 존재는 단일한 의미로 설명될 수 없고, 여러 층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크게 보면 제주 조랑말은 네 가지 모습으로 나눌 수 있겠다.

첫째, 철학적 존재로서 조랑말은 삶의 본질과 태도를 성찰하게 한다. 조랑말은 크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묵묵히 견디며 살아온 모습에서 절제와 꾸준함, 순응과 공존의 가치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제주인의 내면에 자리한 강인한 생명력과 끈기를 상징하며, 우리에게 ‘생존의 철학’을 가르친다. 조랑말의 삶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지금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조랑말은 인간의 삶과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존재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둘째, 신화적·역사적 존재로서 조랑말은 제주인의 삶과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살아 있는 증인이다. 탐라 건국 신화에서부터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격변까지 조랑말은 제주인의 일상과 농경, 나라의 군사적 필요를 충족하며 섬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그들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서, 제주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을 말없이 증언한다. 조랑말의 존재 자체가 곧 제주史의 축약이라 할 수 있으며, 제주인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한다.

셋째, 사회적 존재로서 조랑말은 공동체의 연대와 협력을 상징하는 동반자였다. 제주 마을에서는 말을 공동으로 돌보고 방목지를 나누는 협동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조랑말은 단순한 가축이 아닌 공동체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표선면 가시리마을은 600년의 목축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고장으로, 옛 산마장인 녹산장과 조선시대 최고의 말을 사육했던 갑마장이 자리했다. 이처럼 오랜 목축문화의 전통은 마을 공동체의 생활 양식과 협력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조랑말은 승마 체험과 치유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인간에게 정서적 안정과 위안을 제공하며, 점점 단절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돌봄과 관계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사회적 거울로 기능한다.

마지막으로, 생태적 존재로서 조랑말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삶의 모범을 제시한다. 제주마는 제한된 먹이 자원과 가혹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탁월한 지구력과 환경 적응력을 확보해 왔다. 이러한 적응은 단순한 ‘균형 유지’가 아니라, 외부 자원과 내적 생리적 요구 사이의 지속적인 조율을 통해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는 환경을 지배하거나 초과 소비하는 방식이 아닌, 제한적 조건을 전제로 한 절제와 공존의 실천으로 해석된다. 오늘날 기후 위기와 환경 변화가 전 지구적 과제로 대두된 상황에서 조랑말의 생태적 전략은 지속 가능한 삶의 가능성을 검증하는 경험적 사례이자, 자연과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상호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 기능한다. 따라서 제주마의 생태적 삶은 단순한 지역적 특수성을 넘어 미래 세대가 학습해야 할 보편적 생존 모델로서 의의를 지닌다.

조랑말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단순한 동물의 미화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어떤 존재를 어떻게 기억하고 존중할지,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화적 선택이다. 조랑말을 ‘살아 있는 표상’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제주라는 공간의 정체성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랑말은 철학적 성찰, 역사적 증인, 사회적 동반자, 생태적 모범이라는 네 가지 차원에서 다층적 의미를 지니며, 제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상징으로 자리한다. 따라서 조랑말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일은 단순히 한 종의 동물을 지키는 것을 넘어, 제주의 뿌리와 정신을 지키고, 우리 공동체가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를 이어가는 의미 있는 행위이다. 결국 조랑말은 제주의 역사와 문화, 자연과 사람을 하나로 잇는 존재이자, 우리가 나아갈 길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그 존재를 기억하고 존중하는 일 자체가 제주의 정체성과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길임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