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x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nalogi Aug 16. 2020

금자의 신세계 프로젝트

화에 대하여

그림출처

이 글은 영화 [친절한 금자 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이나 잘하라고. 금자는 당차게 말하며 순백이기를 거부했다. 
화는 종종 우리를 찾아오지만, 사실은 우리가 제 발로 그것을 찾아가는 때가 더 많다. -25p

고통을 고통으로 갚아주고자 하는 강한 열망-아리스토텔레스

 화는 마음의 동의 하에 일어난다-53p

그림출처

금자에겐 위대한 계획이 있었다. 

원모를 납치하고 죽인 진범을 처단하는 것. 자신이 낳은 딸을 뺏아간 사람을 찾아가는 것. 억울하게 금자를 교도소에 보낸 사람에게 복수하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13년간 교도소에서 응집되고 정제된 금자의 화를 받아내야 할 사람이 백 선생이라는 동일인물, 아니 단일 인물이라는 것. 정도였을 것이다. 


금자는 꿈속에서라도 백 선생을 처참하게 죽이고 싶었다. 몇 번이고 얼굴에 총질을 해대고 싶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죽어가는 백 선생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그 모습에 모든 것이 해소된 자신이 빙그레 웃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금자는 기도를 했다. 이태리타월처럼 자신을 빡빡 문질러 뽀얗게 만들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스스로를 단장하기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 백 선생을 죽이고 싶은 염원으로 가득한 기도를 드려야 지쳐 쓰러져 잠들 때나마 그런 모습을 꿈으로라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I'm a high functioning sociopath
상대를 파멸시키기 위해 자신이 파괴되는 것도 불사하는 것이 화다.

지금까지 그가 우리에게 베풀어준 은혜가 너무나 크다면 우리는 설사 그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용서할 의무가 있고, 혹은 그가 우리를 이롭게 하려다가 피해를 주었을 수도 있다. -136p

그림출처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은 쉬웠다. 이미 그들은 금자와 같은 죄인이었고, 무언가 결핍되어 있었다. 금자는 그들이 원하는 곳을 먼저 긁어주며 새삼 좋은 사람처럼 웃었다. 마치 그것이 진심인양. 금자는 13년간 알게 모르게 자신의 조력자, 혹은 공범이 될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냈다. 차곡차곡. 하나도 빠짐없이. 그리고 확실하게. 


 하지만 정작 자신의 진심은 단 한 조각도 그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가 교도소에서조차 마녀라 불리는 이유였을지도 몰랐다. 왜 이렇게 많이 변했니.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금자는 오로지 간절한 기도의 단꿈을 꾸고 싶은 욕망에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금자에겐 그저 거추장스럽고 아름답지 않은 것들에 불과했다. 금자의 계획에는 간결함 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간결함은 다른 말로 죽음. 이기도 했다.


금자의 복수는 가까워야만 했다. 유사 거리가 짧은 자신의 총처럼.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고 이마에서 땀방울이 흐르는 것이 보이면 좋았다. 조금씩 백 선생의 체취가 느껴지고 그림자가 밟히는 거리로. 금자는 그렇게 계속 다가갔다.


과연 그녀의 계획은 그녀를 낙원으로 데려갔는가.
내가 말하건대 자신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의 양심보다는, 그 행동에 대한 증인이 있는지 없는지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59p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은 그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처벌은 절대로 과거의 생각에 적용되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화가 아니라 경고의 의미를 갖는다. 만일 비뚤어지고 못된 성격을 가진 사람을 하나하나 모두 벌주어야 한다면 거기서 자유롭게 헤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141p 

그림출처

기대했던 것처럼. 금자의 복수는 빠르고 신속했다. 단지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목표를 이루었을 뿐이었다. 현실적이었고, 늦었지만. 서로 이익과 염원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빠뜨리지 않은 복수였다. 제삿밥 같은 케이크를 나눠 먹고 노래를 불렀어도, 모든 공범들은 알고 있었다. 이런다고 죽은 아이들이 살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잠들지 못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을 뿐. 


금자도 마찬가지였다. 이 일이 끝나면 원모를 볼 면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속이 시원해 두 발을 뻗고 잠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금자의 힘으로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었다.  


금자가 해야 했던 것은. 시간을 들여 공들인 복수도, 앙갚음도, 분노도 아니었다.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자백이었다. 그리고 철없던 시절에 원모의 죽음을 방조했던 것에 대한 사죄였다는 것을 원모가 금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순간. 금자는 깨닫게 되었다. 원모는 금자를 용서하지 않았고, 결국 금자도 백 선생과 다르지 않은 가해자일 뿐이었다. 금자가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백 선생의 핸드폰 고리는 원모의 구슬 하나에서 끝났을지도 모를 테니까.


Be white. 
네가 예전에 한 행동으로 인해 이번에 네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 -136p 

네가 부당하게 입은 피해를 치유하는 것이 그것에 대해 복수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좋은 일인가! 복수는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네가 한 가지의 부당한 피해에 대해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동안 너는 더 많은 잘못에 스스로를 내어준다-219p

만약 어느 시점에선가 멈춰야 한다면 화가 너를 버리는 것보다 네가 먼저 그것을 버리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220p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ed so far away
(에전에는 나의 모든 고통은 멀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Now it looks as though they're here to stay(이제 그 고통이 여기 머물러 있네요)
Oh, I believe in yesterday (예전이 그리워요)
SuddenlyI'm not half the man I used to be
(나는 예전 모습의 반도 못한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There's a shadow hangin' over me(어두운 그림자가 내게 드리워지고 있어요)

그림출처

금자를 신세계로 데려다줄 것만 같았던 그 위대한 계획은 백 선생의 죽음으로 표면적으로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금자는 그토록 원하던 영혼의 구원 따위는 얻지 못했다. 그렇게 터뜨리고 싶어 어쩔 줄 몰라했던 화와 복수라는 마음을 가득 채웠던 불덩어리가 사라지자. 여태 차단해왔던 다른 감정들이 휘몰아치며 그 자리를 메워왔다. 금자는 온몸 가득 밀려오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이제부터 자신이 평생을 걸쳐 갚아야 할 속죄이며 그것이 고통의 시작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제 금자는 진심과 간절함, 그리고 진실함을 담은 절실한 기도가 무엇인지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와 동시에 금자는 자신이 거부했던 하얀 두부가 떠올랐다. 이제 더 이상 죄짓지 말고 순수하게 살라는 뜻으로 목사가 내밀었던 그 두부가. 교도소에 있을 때 보다 어쩌면 더 더러워진, 그리고 구원을 받지 못한 절망에 휩싸였지만 이제는 그 속죄의 의미를 절실히 느낀 금자는, 순백의 케이크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마치 자신의 아둔함을 만회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리고 딸에게 앞으로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가득 담고서.


참고자료

책 [화에 대하여]<<앞부분만 견뎌내면 인생의 명저 중 하나를 건질 수도 있음. 

영화 [친절한 금자 씨]

노래 [Yesterday]


이 글의 TMI

1. 잘 안 써져서 친절한 금자씨 세 번 보고 눈 화장도 따라 하고 썼음.(섀도우 없어서 립스틱으로 대체)

2. [악마를 보았다], [복수는 나의 것]도 물망에 올랐음. [헐크]는 너무 뻔해서 안 썼음.

3. 원래 제목은 금자는 다 계획이 있구나? 였음. 근데 내가 계획이 없었지. 

4. 그래도 잘 안 써져서 맥주 두 캔 먹고 씀(주량=맥주 반 캔)

5. I'm a high functioning sociopath는 BBC 드라마 셜록에 나온 대사이다.

6. 어렸을 때 부모님의 모닝콜 알람이 Yesterday였어서 최근까지도 이 노래를 싫어했다. (사실 지금도 반복해서 들으면 약간 짜증남)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죄를 사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