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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Nov 26. 2020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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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안. 그 어떤 편안함도 없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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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역경과 질병 사이에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 걸까.-34P

가난한 공동체와 나쁜 건강 상태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잘 연구되고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다. 살아가는 방식뿐 아니라 장소 또한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36P   

너희들은 걔 안 불쌍하냐?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 주잖아. 상처 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 버려. 그래서 불쌍해. -나의 아저씨.

옛날에는 강아지 이름을 지을 때. 오래 살라고 일부러 못난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잖아.

가끔은 네게 그 이름을 준 부모라는 사람들이 참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지. 너의 그 예쁜 이름과는 너무도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던 것이 너였으니까. 이를지(至), 편안할 안(安)'이라니. 네가 죽도록 노력해도 절대 도달할 수 없던 이상향 같은 이름을 가진 게 바로 그때의 너였다.


아니나 다를까. 너는 매우 가시 돋친 아이 었다.

하지만 그 가시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 너의 상처를 가리기 위해 뻗은 가시들이라는 게 내 눈에는 너무도 뻔히 보였지. 가시의 험악함 만큼이나, 너의 상처도 깊고 가리고 싶은 것이겠구나. 하고 넘겨짚어도 틀리진 않았지.


너를 불쌍하게 생각한다고 느낄까 봐 제대로 말 하지는 못 했지만.

나는 그때 참 마음이 아팠다. 언제부터 이렇게 위태위태한 삶의 줄타기를 이렇게도 능숙하게 해온 것인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라는 어른은 가늠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지안. 너에게도 눈물이 있고. 아픔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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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문제는 그것이 깊이 새겨져 고착되는 것, 즉 과거에 붙잡힌 스트레스 반응이 반복 모드로 고정되는 것이다. -105P

올챙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반복적인 스트레스 반응에 특히 민감하다. 고강도의 역경은 뇌의 구조와 기능만이 아니라 아직 발달 중인 면역계와 호르몬계로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DNA를 읽고 전사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일단 스트레스 반응 체계가 조절장애 패턴으로 배선되고 나면 그 생물학적 영향은 점점 퍼져나가 신체 내부 기관들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신체는 커다랗고 섬세한 스위스 시계 같아서 면역계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깊이 연관된다. -120

통계가 숫자 대신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준다면, 그런 통계는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과 유독성 스트레스의 영향들로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자들과 여자들,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었다.-233

성인은 어린아이에 비해 변화가 그리 급격하거나 빠르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일찍 시작할수록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많다. 어린아이는 역경에 가장 취약하지만, 동시에 개입이 일찍 시작된 경우 치유 역량도 가장 크다. 그리고 치유를 위해 생물학을 유리하게 활용하는 일에 결코 늦은 때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277

언어 학대와 정서 학대는 아이들에게 신체 학대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 더 나쁘다-312

내 인생이 니 인생보다 낫지 않고. 너 불쌍해서 사주는 거 아니고. 고맙다고 사주는 거야-나의 아저씨

그래서 네가 걱정된 거다.

아무렇지도 않게 믹스커피를 훔치는 네 모습에서. 그걸로 고작해야 할 거라곤 끼니를 때우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그때부터 들었으니까. 상상하는 것보다 더 상태가 나쁜 환경이 너를 둘러싸고 있을 것이라고 직감할 수 있었으니까.


너의 과거가 아마도 너를 평온함을 뺀 나머지 모든 괴로움이 가득한 지옥으로 너를 밀어 넣었을 것이지만. 너에 대한 걱정을 거둘 수 없었던 이유는 너를 여기까지 끌고 온  과거가 아니었다. 과거에 발목 잡혀 너의 빛나는,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까지도 그 블랙홀로 기꺼이 빨려 들어갈까 봐. 그게 걱정되었다. 네게는 두 번 다시 평온함이란 없을까 봐. 원래 내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기로 되어 있다고 착각할까 봐. 그게 그렇게도 네가 내 눈에 밟히는 이유였을 거다.


그래. 누구나에게 과거는 있고, 아픈 순간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 미래까지 저당 잡힐 필요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너는 그런 대접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니까. 너의 과거 때문에 미래를 버릴 만큼. 너의 인생은 헐값으로 처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지안. 너의 이름만큼이나 너도 편안하고 아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테지. 그런 마음으로 너의 부모님이 너를 품 안 가득 안고 네 이름을 불렀을 것이라고. 나도 믿기로 했다.


지안.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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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을 개선하는 임상의학과 공중보건의 힘을 믿도록 교육받아왔다. 하지만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많은 사람이 아동기에 부정적 경험을 했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평생 시달리고 있었지만, 자신을 힘들게 하는 그 문제의 정체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들의 스트레스 반응 체계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준 의사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문제의 해결법을 제안해준 이가 없었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191p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가 의사든 환자든 어머니든 비극적 사건이든, 중요한 것은 환자가 더 나은 보살핌을 받는 것이다-291p

그런데 캐럴라인이 보기에 칼에게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캐럴라인이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든 변화들이었다. -314p

내 아이들을 위해 내가 이 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것도, 내가 희상자가 아니라 생존자라는 것도 이제 알았어요-336p

내가, 내 가족이 수 세대에 걸쳐 이런 상태에 이르렀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니 내가 그 모든 일에 완전히 대처하는 데도 제법 시간이 걸리겠죠. 하지만 이젠 내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단지 나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에요-336p  

나랑 친한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 게 좋아서. -나의 아저씨

사실 네가 마음에 밟혔던 가장 큰 이유는. 네가 불쌍하거나 어쨌다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너를 제외한 사회의 모든 어른들이 가해자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세상에 먼저 태어났고 먼저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들 겪는 그런 사소한 일들 뿐일 거라고 수군거리며 네게 손가락질을 실컷 해댈 테니까. 그 누구도 네게 거기서 나올 수 있도록 손을 뻗어주지 않았겠지.


네가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나처럼 흔해빠진 그런. 혹은 네가 만나온 그 모든 어른. 네가 틀렸다. 잘못되었다.라고 말해온 어른들 말이다. 그래서 나란 존재가 너에게 도움이라는 게 될 수 있다면. 너의 인생을 어둠이 장악하는 그 시점을 넘지 않았을 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다행히도 너는 영민하고, 또 지혜로운 아이 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고마웠다. 스스로 그 고행길을 멈추기로 마음먹어주었으니까. 너의 트레이드 마크 같던 다크서클이 사라지고(미안하다) 조금씩 생기, 혹은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네 얼굴에 서리기 시작했을 때. 나의 마음을 표현할 단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그 말은 참으로 듣기 좋고 고마운 말이지만. 결국 해낸 건 너 자신이란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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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그대로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과 타인의 생물학적 부분까지 바꿀 능력이 있어요-320p

역경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들이 우리의 인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라는 사실이다-408p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는 이 세상의 모든 아이와 청소년을 위해, 아동기에 받은 유산 때문에 현재의 건강 상태가 결정된 모든 성인을 위해 이 책을 썼다.-413p

나는 믿는다. 각자 이 문제를 직시할 용기를 가질 때, 우리의 건강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생길 것이라고.-414p

가만히 보면 모든 인연이 다 신기하고 귀해. 갚아야 돼. 행복하게 살아. 그게 갚는 거야.-나의 아저씨

이제야 겨우 네 이름만큼이나 평온함에 이르러 보이는 너를 보니. 너의 부모님이 분명 그런 인생을 살라고 지은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네게 내가 감히 부탁이란 걸 할 수 있다면. 다시 어두웠던 모습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어리석은 부탁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너처럼 행여나. 혹시라도 영문도 모른 채 고통 속에서 절망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너의 따스해진 마음을 한 켠만 내어줄 수 있겠니? 그 아이들도 너처럼 평온해질 수 있도록. 그리고 너로 인해 밝아진 그 아이가 또 다른 아이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겠니?


그리고 꼭 말해주렴.

모든 것이 너의 잘못이 아니고. 행복할 기회는 너에게도 존재한다고. 생각보다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고 말이다.



[참고자료]

1. 책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2. 드라마 [나의 아저씨]


[이 글의 TMI]

1. 컨디션 역대급 최저.(피로골절+위궤양+일에 치임+하지만 나는 이 구역 미친년이지.)

2. 이 책은 사실 신체적 질병과 유아기의 트라우마의 상관관계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 더 중요하기에 마음에 초점을 더 맞췄고, 이런 환자들을 지켜보며 관심을 쏟았던 저자의 시선에 초점을 뒀다.

3. 마지막까지 생각했던 영화는 나는 전설이다. 근데 원작이 넘사벽이라 버림.(원작에 비하면 영화는ㅠ)

4. 커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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