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마음 서재;심리 모임
올해 목표 질문!!
1. 올해 당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이고, 1년 후에 당신의 모습은 어떨까요?
2. 목표를 이루는데 도움을 줄 사람은 누구인가요?
3.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세부적인 계획은 무엇인가요?
남동생의 뒤통수에선 피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남동생을 떠미는 바람에 넘어지면서 화분에 머리를 부딪친 게 그 이유였다. 고작 열 살이었던 동생은 여태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끔찍한 소리를 입 밖으로 토해내며 울었다. 그걸 쳐다보던 내가 처음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동생이 얼마나 아플까]. 가 아닌 [안방에 있는 부모님께 이 울음소리가 들릴까]였다.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유년기 내내 나는 [어쩌면 내가 소시오패스, 혹은 사이코 패스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누가 뭘 하든 별로 관심이 없었고, 다른 사람의 감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와 친해지려고 다가올 때마다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것이 너무 귀찮고 싫었다.
[나]라는 사람은 감정이 있기는 할까. 기쁜 것은 있을까. 아픈 것을 느끼기는 할까. 늘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거울 앞에 서서 내 뺨을 철썩철썩 소리가 날까지 때려본 적도 있었다. 아프지만 슬프지는 않았고. 붉게 부어오르는 뺨.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는 거울 속의 무표정인 나를 보며. 나는 아마 평생 이렇게 살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닫았다.
편했다.
내가 하는 일은 혼자 빨리 성과를 내야 하는 성향의 일이다. 다른 사람과의 협업보다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나만의 속도로 타박타박 혼자 걷는 것이 더 빨랐다. 덕분에 빨리 인정을 받았고, 빨리 자리를 잡았다. 회사에선 신이 나서 언제나 나를 찾았고 나는 이 정도는 껌이라는 태도로 늘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능력은 좋았지만 그 주위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을 것 같다며. 다른 사람들은 나를 마녀라고 불렀다. 악마의 재능을 가졌지만 결국에는 악마이기에 자신들과는 어울릴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소리들을 능력 없는 자 들의 부러움이라 생각하며 계속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내게 어떤 말을 할 수 없었다. 상사들의 신임은 점점 크고 화려한 왕관이 되어 내 머리 위에 씌워졌고. 나는 그 왕관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최연소 왕좌의 자리 위에 앉아 늘 무표정인 상태로 일에 매달렸다.
아쉽게도 난 악마가 아니라 고성능 소시오패스(High functioning sociopath) 였기에 휴식이 필요했다. 일주일의 포상휴가를 얻었고, 나는 오랜만에 부산(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은 고향집의 초인종을 누르자. 익숙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타깝게도.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다.
분명 엄마의 목소리였고. 엄마의 옷을 입었는데. 엄마가 아니었다.
이젠 소시오패스를 넘어서서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것일까. 정신없이 나를 반기는 강아지와 낯선 사람의 손에 이끌려 집으러 들어간 후. 그제야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바로 너무 늙어버린 엄마였다. 내가 안 본 사이에. 내게 알리지도 않고.
오랜만에 온 딸을 품 안 가득 부둥켜안고 자고 있는 엄마의 숨결을 목덜미에 느끼면서. 나는 그 길고 달콤한 휴가를 밤새도록 괴로움에 떠는 것에 낭비해야 했다. 딸 덕분에 안방에서 보기 좋게 쫓겨난 아빠의 코 고는 소리는 거실에서 간간이 들려오고 있었고. 나가라는 엄마의 말에도 꿋꿋하게 눈치를 보며 버틴 강아지는 내 품에 안겨 또 다른 체온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무엇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살았던 것일까. 순식간에 나는 동생의 뒤통수를 터뜨렸던 무지막지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그때 내가 무슨 감정을 느꼈어야 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고. 그에 대한 답은 다행히 이번에는 동생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빚졌던 감정들이. 나의 mind palace로 사정없이 밀려들어 잠들지 못하는 휴가가 되어 버렸다.
충혈된 눈으로 회사로 돌아온 나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다들 회사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게 없었던 그 한 조각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그 어떤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상사인 나 때문에.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며칠을 미친 사람처럼 울고 웃었다. 몇십 년에 걸쳐 내 안에서 역동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부딪치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져 내렸다. 낯설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부서져 내리는 물방울은 햇빛에 반사되어 무지개로 내게 황홀경을 선사했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밀어내고 배제했던 감정들은 결국 내겐 필요한 것이었구나.라는 것을. 연이어 터지는 내 안의 무지개를 바라보며.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닌 나의 문제였기에. 나는 내 힘으로 이 성(mind palace)에서 스스로 걸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자칭 타칭 소시오패스 생활이 길어진 덕분에. 누군가의 감정을 알아채는 것 까지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신경을 쓰는 것 까지는 아직도 힘들었다. 하지만 결국은 사람과 사랑만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나는 조금 더 큰 용기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실은 인사를 건네는 것도. 하루에 한 번씩 그 사람에 대한 칭찬을 진심으로 하는 것도. 3일에 한 번씩 부모님께 전화를 해 그들의 꺼져가는 시간을 붙잡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나는 이제는 어렴풋이 안다.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되기까지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아닌.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온전히 완벽하다며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나를 기다려 주고 있기에. 그 사람들의 오래 쌓인 기대에 조금씩이라도 부응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이 글의 TMI]
1. I'm a high functioning sociopath 가 원제인데 functionin'으로 바꿔도 30자 제한 때문에 제목에 a를 넣을 수가 없어서 포기.
2. 질문을 받고 반사적으로 떠오른 것은 career적인 목표였지만 이미 흔해 빠졌고 스스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최대한 피해보려고 했음.
3. 마라탕 중독 어떻게 끊는지 아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