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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Jan 20. 2021

제목도 난감한 [파국],[그 환자] 리뷰

1월의 소설


이 글은 소설 [파국]과 [그 환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병맛입니다.


이제 [작년]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2020년에 저는 정말 오랜만에 소설책을 읽었습니다.


작년에도 책은 많이 읽었지만(114권) 중요도에서 밀린다는 이유만으로 소설을 등한시했었죠. 늘 일과 관련된 책이나 논문들만 읽다가 오래간만에 읽은 소설책(그중에서도 아몬드)은 너무도 재미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교과서 밑에 깔아놓고 읽던 소설책이 문득 생각날 정도였습니다. 좋은 단어, 문장, 표현들을 느끼고 기록해 놓으며 다시 한번 메마른 마음에 물을 충분히 적셔줄 수 있었죠. 오래간만에 마음이 너무 풍족해졌었습니다.


2021년에는 팽창되는 사업과 본업 덕분에 작년보다 더 많은 독서를 해야 하는 운명의 데스티니를 가지고 있는 저는, 힘들고 지칠 것이라 예상되는 와중에도 소설을 억지로라도 끼워 넣어 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잠시 건강하게 쉬어간다.라고 생각하자.라는 것이 근시안적인 저의 건설적이자 로맨틱한 목표였습니다.


권투선수 누군가가 그랬다지요?

누구든 쥐어 터지기 전에는 다 그들만의 원대한 계획이 있는 거라고. 


그리고 한참이고 위시 리스트에 묶어뒀다가 제일 먼저 고른 소설책 두 권은 저를 KO패에 가까울 정도로  코너까지 밀어붙이기 충분했습니다. 


파국:도노 하루카

첫 번째 소설은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으며 심사위원들 마저도 극과 극의 평가를 내놓았다고 알려진 파국입니다. 독자들의 평점도 갈려서 5점 만점 기준 만점 혹은 1점을 주었다고 알려지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후자. 즉 1점을 주는 쪽에 속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평범해 '보이는' 남자, 요스케입니다. 하지만 그의 속은 가끔 뉴스에 나오는 '정말 그런 사람으로 안 보였어요'라는 말을 듣는 사이코 패스들처럼 숨겨진 욕망으로 들끓고 있죠. 요스케는 여자 친구 마이코가 있지만 아카리와 바람을 피우고 소위 말하는 '환승 이별'을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사랑하는 게 죄가 아니라는 희대의 개소리를 늘어놓는 그 누군가와 다를 게 없지요. 영원할 것 만 같은 행복한 날들을 보내는 요스케 앞에 다시 마이코가 찾아와 거역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말을 꺼내게 됩니다. 들키지만 않으면 없던 일과 같다. 요스케도 아리카 씨와 그랬잖아.라는.


이 것이 이 책을 광고할 당시 제작했던 카드 뉴스의 내용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뒷 내용이 궁금하지 않나요?

제가 여기까지를 보고 뒤에 생각했던, 혹은 예상했던 내용은 이런 방황 아닌 성적 방황을 끊을 수 없는 요스케의 좌절 혹은 스스로 무너져 내려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들의 향연이었습니다. 마이클 패스밴더가 열연했던 영화 셰임(Shame) 같은 류의 이야기 말입니다.


그러네 이 책은 광고의 내용과는 약간은 동떨어져있습니다. 오히려 요스케의 숨겨진 폭력성. 럭비부에서 트레이닝을 하고 공무원 시험까지 준비하는, 젊음이 가진 건강함의 상징인 요스케가, 주위 사람들을 보는 시선에 숨겨진 그의 욕망과 무너져가는 인간성을 이야기하는 책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그런 요스케의 마음을 표현하는 문장들은 섬뜩하고 날카로워서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보고 있다면 나는 지릴 것이다.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잘 쓴 표현들이라는 소리입니다.


이 책 제목이 파국인 이유의 지분은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결말에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스케는 자신을 떠나는 여자 친구의 뒤를 쫓다 흥분한 자신을 말리는 무고한 사람을 폭행하게 됩니다. 덩치 좋고 힘 좋은 요스케였으니 그 사람을 정말 신나게 팼겠죠. 자신의 울분을 담아서요. 그런 요스케가 경찰에게 제압당하면서 소설은 끝이 나 버립니다. 말 그대로 파국입니다. 요스케는 제대로 자신의 욕망을 폭발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성적인 것이건 폭력적인 것이건 말입니다. 제가 실망한 것은 바로 이 지점에 있었습니다. 차라리 요스케가 들키지 않는다는, 혹은 자신이 절대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만만함 속에서 뒤에서 무언가 음험한 짓을 하고 다녔다면. 범죄 수준까진 아니지만 분명히 조금씩은 흔적을 남기는 악행을 저질러 오다 자신이 수습할 수 없는 그런 수준의 [파국]에 이르렀다면. 저는 앞서 잠시 언급했던 그 섬뜩하고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는 묘사가 아름다웠던 문장들에 다시 한번 감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토록 잘 끌어오던 모든 것들이 이 결말 한방에 모조리 사그라들어 버립니다. 요스케는 자신이 경찰에게 잡혔을 때 안심이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람 한 명을 때리고 그 정도로 홀가분, 혹은 안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요스케는 사이코나 분노 조절 장애가 아닐 겁니다. 약자를 상대로 그런 음험한 생각들을 해 왔다는 것이 책 곳곳에 장치처럼 숨어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애들이 또 아트박스 사장님 같은 분 앞에 가면 기똥차게 [분노 조절 잘해]가 되거든요.(아 물론 사람을 패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해 금지입니다.)


주인공의 심리묘사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잔칫상을 차려놓고는 막판에 갑자기 다 마음에 안 드니까 라면이나 먹자. 라며 불쑥 육개장을 꺼내는 형태입니다. 책 자체도 얇아서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목이 타들어갈 정도로 독자가 안타까워하는 소설입니다. 그걸 노렸다면 아주 잘 쓰인 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기엔 제목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었나 봅니다. 하지만 심리 묘사만큼은 매우 잘 되어 있는 소설입니다. 읽는데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니 도전해보셔도 무방합니다. 친구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내일 저랑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그 환자:재스퍼 드윗

두 번째 책은 그 환자라는 책입니다.


사실 거울 보듯 뻔했습니다. 그러나 음식도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한 번 무모하게 도전을 해 보았고 결과는 내일 친구와 알라딘 중고서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한 정신병원에는 만나서는 안 되는. 금기시되는 환자가 있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으나. 그 환자를 접한 의료진들은 모두 미치거나 목숨을 끊었습니다. 젊고 유능한 의사인 주인공 파커는 그렇게 30년 동안이나 이 병원에 갇혀 있는 그 환자를 담당하게 됩니다. 과연 주인공 파커가 어떻게 되는 것일지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인공 버프가 있죠. 주인공이 다 해결합니다.


이 책은 추리, 혹은 스릴러 소설 답지 않게 문체가 매우 담담합니다. 전개가 그다지 빠르지도 않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무거워 생각을 많이 하고 책장을 넘겨야 하죠. 그래서 침착하게 [그 환자]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깁니다. [그 환자]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 누구나 아. 이 사람이 억울하게 여기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작가는 생각했나 봅니다. 아뇨. 오히려 반대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주인공 파커는 의사입니다. 정신과 의사죠. 정신과 의사가 한낱 환자의 말 몇 마디로 스톡홀름 신드롬처럼 환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 환자를 탈출시킬 계획을 세우 다뇨. 학위를 가위바위보로 땄나요?


혹자는 그 환자라는 존재가 악(Evil)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네. 책에서 '조'라는 이름을 가진 그 환자는 사람이 아닌 악으로 그려집니다.'조'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을 뿐이죠.(실제 '조'는 이미 여덟 살 때 죽어 자신의 집 벽장에 백골이 된 상태입니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조종해 자신이 가장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허상을 보여주는 악이기에. 파커가 그렇게 행동한 것이라고요. 애석하게도 그런 묘사는 많이 있지 않습니다. 누가 죽었다더라. 수간호사가 결국 죽었다.라는 말로 환자의 그 '능력'을 죽음으로 퉁칠 생각을 했나 봅니다. 그러기엔 저희 집 겨울 전기세가 더 무섭습니다.


제가 거울 보듯 뻔했다고 말 한 이유는 스토리만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몇 장 읽는 순간 아 이거 영화화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네요. 들리는 소문에는 라이언 레이놀즈가 캐스팅되었다고 하는데 아직 확정은 아니라고 합니다. 좀 더 기다려보도록 해야겠죠.


영화화된다 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화면 가득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 혹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이 지나가겠죠. 스산한 병원, 이미 죽어버린 실제 조. 그 환자와 탈출할 계획을 세우는 파커와 그 계획이 박살 난 뒤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쉽습니다. 네. 이 책은 읽자마자 머리에 바로 [장면]이 떠오르게 쓴 책입니다. 제가 상상력이 뛰어난 것이 아닙니다. 읽자마자 애나벨이나 그와 비슷한 류의 시대물이 바로 생각나실 겁니다. 메마르고 건조한. 스산한 겨울이 생각나는 책입니다. 이 책 역시 25분이면 끝입니다. 저처럼 영화화되기 전 원작을 먼저 읽어두는 것을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보세요. 그리고 영화에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확인해 보셔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선물은 물 건너갔네요.


마무리

아직 끝나지 않은 1월이지만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보면 좀 예민했습니다.


새해가 되어 새로 시작한 일도 많았고 이직도 했죠. 그래서 더 엄격하게 책을 평가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책이 제 취향이 아니었을 뿐. 누군가에겐 손에 꼽을 만한 책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의 이런 리뷰에 나는 정말 재밌었는데ㅠ라며 슬퍼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취향은 가치판단이나 옳고 그름이 없으니까요. 저는 단지 책 이야기를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듯 재미있게 풀어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독서랑 조금이라도 친해지는 분이 생기면 저는 그저 감사할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달에는 더 재밌는 소설 읽을 수 있게 추천도 부탁드려볼게요.




[이 글의 TMI]

1.덜 야해서 화난게 아닙니다. 아니라구요.아무튼 아닙니다.

2. 영화 셰임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야한게 다가 아닌 영화죠. 많이 울게 됩니다.ㅠ

3. 저는 책을 조금 빨리 읽는 편입니다. 그래서 저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천천히 읽는게 목표라 일부러 독서 노트 등에 등장인물의 이름등을 손글씨로 적어가며 읽고 있습니다.

4. 저는 한 달 기준 10~15권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리뷰 쓰는 속도가 책 읽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네요ㅠ

5.사실 소설을 더 읽었는데 단독으로 쓰려고 뺐습니다.

6. 저는 원작이 영화 개봉 후에 표지가 바뀌어 출판 되는 것을 극혐하는 사람입니다.

7. 아무튼 저는 내일 알라딘 중고서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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