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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Jan 27. 2021

김영하 작가님 북클럽은 사람도 만들어준다 이기야

자기결정


새해가 되면.다들 앞다투어 작년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하죠.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사람, 재테크를 시작하겠다는 사람. 미뤄두었던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사람. 모두들 마음 한가득 찌질했던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내년에는 새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염원이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기에 미쳐있는 저와 제 친구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저는 친구들과 모여 새해의 목표를 공개하고 제일 많이 이룰 것 같은 사람을 한 사람 뽑습니다. 그리고 그리도 바라던 그 새해의 연말이 되면 실제로 그 해 연말에 가장 목표물에 많이 닿은 사람을 뽑는 행사 아닌 행사를 합니다. 네. 예상하시는 것처럼 돈이 걸려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에어팟도, 컴퓨터도, 아이패드도 친구들의 돈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평생 호구.. 아니 아니 친구들입니다.


그러나 올해, 아니 불과 한 달 전인 2020년 말미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2021년 대망의 목표를 발표했을 땐 친구들이 드디어 네가 미쳤구나.라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봤었습니다. 비록 줌(Zoom) 화면이었지만 친구들의 황당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유는 이미 어느 정도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람이 되자. 가 올해의 다른 목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논문 몇 편 보기. 회사에서 웅앵 하기, 어쩌고 1등 하기 이딴 식의 목표를 세웠던 제가 그런 목표를 가지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다름 아닌 책 때문입니다. 너무 일과 관련된 책만 읽으니 지치니까 쉬기라도 하자.라며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던 김영하 작가님의 북클럽 덕분이었죠. (저는 그 책에 대한 리뷰도 썼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


단 한 권의 책은 이렇듯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저 같은 사람에게도 새로운 사람이 되자는 목표를 세우게 합니다. 뭐 친구들의 시선도 함께 받게 되었지만. 어찌 되었건 그렇게 다짐한 후로 제 일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작은 행복에. 저 역시도, 주위 사람들도 조금씩은 웃는 일이 많아졌으니. 좋다고 봐야겠지요. 그런 제가 작가님의 2021년의 첫 북클럽을 놓칠 리가 없지요.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저는 다시 한번 김영하 작가님의 안목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돈 내산

우선 희소식부터 전하겠습니다. 


이 책은 매우 얇습니다.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감사의 말까지 더해도 100페이지 남짓한 두께입니다. 그러니 가볍게 독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십쇼!!라고 말했다간 사이 나빠지기 딱 좋은 책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얇다는 탈을 쓰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의 근간은 철학 책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다 보면 벅차오르는 생각들이 저를 잠식할 때도 많습니다. 덕분에 하루에 두 페이지 읽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었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아. 나는 이런 것에 대해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자아상, 그리고 마치 개복치처럼 약해 보이는 자신을 데리고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아상, 자기결정권. 그리고 홀로서 기. 정체성 등의 키워드가 이 책을 이해하는 가장 큰 골자죠. 우리 모두 소중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제대로 정의할 수 없었던 단어들이기도 하지요.


자아상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앞 문장을 들으면 우리 머릿속에는 완벽하고 잘난 스스로의 모습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이상향 같은 모습에 이름이 있는 경우도 있죠. 혹은 주변의 잘난 친구들을 자신의 미래 자아상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의 모습을 늘 동경해왔습니다. 그 친구는 예쁘고. 사랑스러웠죠.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잘 하는. 게다가 자신에 대한 확신까지 가득한. 소위 말하는 '엄친딸'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친구라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저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의존적인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늘 그들에게 종속된 삶. 혹은 그들의 그림자로 살며 오늘 하루도 그들 덕에 버틴 것을 집 한구석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혼자서도 세상에서 늘 존재감을 뿜뿜 하는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겠습니까.


친구는 자신이 태양이라면 저는 달이라고 말하며 저와 늘 함께 다녔지만. 제겐 혼자서도 빛을 내는. 어딜 가도 눈이 부신 그 친구가 너무도 부럽고 닮고 싶은 존재였죠. 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한 친구였으니까요.


저는 그 친구의 친구가 되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가진 빛은 제가 가진 못난 부분만 골라 비추며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니 그 친구가 부럽다가도 밉다가도. 이런 마음을 가진 제가 미웠다가 싫어졌다. 이래도 저래도 바뀌지 않는 나의 모습에 대한 혐오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반복은 갈수록 심해졌죠. 결국 못난 저는. 그 친구와 헤어지기로 결심합니다.


무슨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그날은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저와 친구만 아는 아지트에서. 빗소리에 한참이고 제 마음을 다듬고 친구에게 절교하자고 말을 했을 때. 그 친구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는 그마저도 친구에게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시 한번 절교의 뜻을 내비치었습니다. 이번엔 친구가 꽤 오랜 시간 동안 움직이지도 않은 채 제 옆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제 손을 잡고 어디론가로 이끌었죠. 그곳엔 비가 고인 웅덩이가 있었습니다. 친구는 먼저 그 웅덩이 앞에 앉더니 제게 이 웅덩이를 잘 들여다보라고 말했습니다. 안 그래도 기분 나빠 죽겠는데 이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저는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고, 친구는 제가 좋아했던 그 미소를 얼굴 가득 지으며 빨리 앉아보라고 재촉했습니다. 뭐 마지막이니까 이 정도는 해줘도 괜찮겠지.라며 웅덩이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는. 그 빗물엔 제 모습밖에 비치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내가 너무 달라 계속해서 마음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면 자아상뿐만 아니라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그 욕구들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나를 조종하는, 나의 느낌들과 내가 원하는 것들의 표면 밑에서 흐르고 있는 소용돌이를 감지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17p

현실적인 자아상에 도달하여 그 자아상과 합일을 이루려 하는 사람은 의식되지 않은 삶의 이력을 꿰뚫어 보는 작업을 시도해야 합니다-18p

네. 그 아름다운 아이는 단지 저의 이상향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말도 안 되는 자아상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아 상이 잘못되었음을 스스로가 알아채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음ㄴ디ㅏ. 그러니 저는 그동안 스스로에 대한 정의도 내리지 못했고. 남들의 시선 따위에 제 스스로를 재단하며 그들의 눈에 저를 맞추기 바빴겠지요. 하루같이 완벽해져가는 제 자아상과는 다르게 하루하루 미워지는 제 현실의 모습 사이의 간극이 메워질 리가 없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좋은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 한 채 그저 괴로워하며 살아야만 했죠.


스스로를 찾는 여행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친구와 절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친구를 말 그대로 리모델링 해야 했습니다. 완벽이란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죠. 제 실제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 저는 몇 번이고 그 모습을 마주하기 힘들어하며 뒤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정해야 했죠. 못난 모습마저 보듬어 줄 사람이 되느냐. 늘 누군가의 빛에 가려 내가 가진 빛조차 발산하지 못해야 하느냐. 사이에서요. 무려 3년에 걸쳐. 저는 겨우 그 자아를 찾아 내 안아줄 수 있었습니다. 늦었지만 혼자 내버려 둬서 미안하다.라는 말과 함께요.


그리고 그 자아상을 모델링함에 있어 그 어떤 시점이 기준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2021년 1월 27일부터 내 자아상은 이것이고 변하지 않는드아!! 땅땅땅! 이라고 강박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변합니다. 기억이 변하고 정황이 생기듯, 우리의 자아상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때마다 다시 보수공사를 하듯 손을 보면 됩니다. 반쯤 다시 무너뜨렸다 세워도 됩니다. 자아상을 세우겠다.라는 마음부터가 이미 건강한 마음인 것이니까요.


하지만 명확한 것은.


자아상을 세울 때는. 반드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들과. 자신의 진짜 모습들을 먼저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요. 그것만은 저 역시도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의식적인 것을 언어로 나타냄으로써 의식 위로 끌어올리는 것도 이 작업의 하나지요-22p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가 쓴 글이 어떤 울림을 가지는지 알아내는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이 울림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순수한지, 아니면 냉소적인지 얼마나 감상적인지, 실망스러운지 아니면 분노해 있는지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멀리 덜어져서 뭔가를 발견하는, 그냥 그뿐으로 그치는 행위가 아닙니다. 자신의 목소리와 자신의 울림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사건이지요. 즉 우리 안에서 잘못된 울림을 내는 것을 추방하고 새로운 말과 새로운 리듬을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의 소설을 끝내고 난 작가는 전과는 다른 사람입니다.-30p

그리고 그 자아를 바로잡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글쓰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이 책을 선택하셨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앞선 부분에서도 작가님의 목소리가 조금씩 바람결에 스치듯 느껴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작가님의 목소리가 저자의 목소리와 동일시됩니다. 마치 저와 제 잘난 예전의 못난 자아가 동일인이었던 것처럼요.


저 역시도 제 스스로를 똑바로 직시하기 위해. 일기 쓰기를 선택했었습니다. 몇 달에 걸쳐 다 쓴 일기장들을 모아 일 년을 다 채우고 나면. 대여섯 권쯤은 되는 다 쓴 일기장을 저는 제게 다시 보내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했었습니다. 그리곤 늘 새해에는 그 일기를 읽으며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었죠. 처음엔 세 줄 쓰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제게 할 말이 그만큼 없었던 것이죠. 자기 검열의 영향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죠. 낙서처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해보았죠. 조금씩 일기 쓰는 것이 루틴이 된 후에야 저는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써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한 줄. 다음날엔 두 줄. 또 그 다음날엔 세 줄. 쓰기 싫은 날엔 미안해. 오늘은 건너 뛸게.라는 말로 마무리하기도 했습니다. 그게 감히 쌓이더군요. 이제 매일 10시에서 11시 사이는 일기를 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결국은 블로그며 브런치까지 하고 있는 한 스타트업의 글 쓰는 에디터가 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치부를 맘껏 드러내기 위해서요.



분명히 어려운 책입니다.

이런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더더욱.

사실 머리가 너무 아파 읽고 싶지 않았던 페이지도 많았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어두웠던 과거도 많이 생각이 나서 힘들기도 했죠. 하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이 한 권의 책을 내밀고 저희를 오롯이 한 달간 기다려주신 김영하 작가님의 의도가 고스란히 보이는 책입니다.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네요.


우리는 보통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자신에게 선물을 주곤 하죠. 그리고 그날은 자신의 생일일 때가 많습니다. 올해는 이 책을 읽고 새로 태어난 자신에게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선물을 주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이번 신년 목표만큼은 제대로 세운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자기 결정저자파스칼 메르시어출판은행나무발매2015.09.21.



[이 글의 TMI]


1. 정말로 생각이 많아진다. 거의 책 한 권을 다 필사했다.

2. 분명 스케줄상 괜찮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이미 1월 중순엔 열 권이 넘는 책을 읽어야 했지.... 하....

3. 스타트업 에디터는 본업이 아닙니다. 본업이 있음에 저도 놀랍니다. 매일 놀란다니깐요.

4. 오늘은 한 끼도 먹지 못했습니다. 커피만 한 잔 먹음. 이기 머선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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