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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Feb 03. 2021

강백호도 서태웅도 북산 아래 대동단결

책 규칙없음 리뷰 

2021년 2월 첫날부터 경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쓴 영화 블라인드 리뷰가 영화 부분 메인 페이지를 장식을 해버렸네요.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된 블로그에 쏟아지는 좋은 일 치고는 제가 감당이 안 될 만큼 좋은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 더 자주 찾아뵙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따뜻하게 찾아와주시고 잘 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신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이버 사랑해요. 주식 안 팔게요.



라떼 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IMF 이전 저희 집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부잣집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백화점을 갔었는데 아빠는 늘 말 잘 들으면 그때마다 만화책을 한 권씩 사 주겠다고 하셨었죠. 아 물론 말 안 들어도 떼쓰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만화책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달콤한 습관은 채 1년이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아빠가 책을 사 주시자마자 동생과 함께 비닐을 뜯어보면서 걷다가 백화점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렸거든요.


아빠는 두 번 다시는 만화책을 사주지 않겠다고 하셨고 (집안 자체가 극단적인 편) 저와 남동생은 여태 모은 만화책으로 만화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달래야 했습니다. 그렇게 사 모은 만화가 바로 슬램덩크였죠. 둘 다 거의 외울 정도로 만화를 보았던 탓이었을까요. 남동생은 덩크 하겠답시고 농구 골대에 매달리다가 팔이 빠져버렸습니다. 저는 누나인데도 그것도 모르고 동생에게서 공을 뺏어 골대가 아닌 옆집 유리창에 던졌죠. 덕분에 옆집 부부의 점심 식사 메뉴는 순식간에 유리 덮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비슷한 사고를 저와 남동생은 거의 매일 치고 다녔습니다.


사고를 쳐도 잘 수습했으면 좋으련만 늘 당당하게 다 들켰던 저희는 아빠가 퇴근하시기 전까지 무릎 꿇고 손드는 벌을 서야 했습니다. 그리고 곧 내전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항상 서태웅이 세다 강백호가 세 다라며 티격태격 거리다 걸려서 더 혼쭐이 나곤 했었습니다.(참고 1) 하지만 이런 남동생과 저마저도 늘 동의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북산이라는 팀은 잘 구성되어 있다.였습니다. 늘 싸움의 마지막은 서태웅과 강백호가 했던 것처럼 하이파이브를 하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네가 세게 때렸니 내가 참았니 하며 다시 싸우곤 했죠.


만화책 타령이나 하던 말썽쟁이가 슬램덩크 전집(?)을 한 방에 살 수 있는 재력가가 되었을 때. 이미 한 팀의 멤버가 되어 있었습니다. 매우 가족 같은 회사였습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탓에 회식에 가지 않으면 다음날 은따가 되어있었죠.분명 제가 낸 제안서였는데 막내라는 이유로 상사의 이름으로 올라가는 광경도 많이 봐야 했습니다. 그 회사를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이렇게 빌 테니 부디 작은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봐주렴.이라는 말에 마음이 약해져 몇 번이고 다시 회사를 다니기로 마음먹기도 했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막내의 야근은 늘 혼자의 일이었고, 이제는 제안서를 빼앗기는데도 당연한 일인 듯 그 누구도 어깨를 토닥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클은 제가 회사를 엎고 나올 때까지 무한 반복이 되었습니다.


슬램덩크에 나오던 그 완벽한 팀은. 만화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현실에 없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라고 생각했죠. 한 가지 목표를 위해 그렇게 모든 것을 불사지르는 팀이 어디에 있을까.라고 생각하던 팀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옮긴 회사에서마저 무기력한 팀원으로 살아가던 제가 나가던 독서 모임에서. 그 작은 시작이 싹트고 있었죠. 저도 모르게 말입니다.


바빠서 그래요 미친거 아닙니다.
재능이 뛰어난 베스트 플레이어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장의 조건은 호화스러운 사무실이나 멋진 체육관, 혹은 공짜 스시 같은 게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재능 있고 협동심이 강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다.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모든 직원이 뛰어나면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가 의욕을 불어넣어 성과는 수직으로 상승한다. -41

빠르고 혁신적인 직장은 소위 말하는 비범한 동료들로 구성된다. 다양한 배경과 견해를 가지고 있는 비범한 동료들은 재능이 뛰어나도 창의력이 남다르며 중요한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긴밀히 협력한다. 이 첫 번째 점이 확실하게 자리 잡지 않으면 다른 원칙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45

"리드, 요즘 우리 회사가 어떻게 돼가는 거예요? 다들 꼭 사랑에 빠진 사람들 같지 않나요? 이런 찌릿하고 묘한 기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오히려 불안해요-37

불과 일 년 전이었습니다.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정말 제대로 키워보자.라는 그 생각 하나만으로. 저희는 힘차게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셋이었다가 곧 넷이 되더니 힘겹게 다섯이 되고, 결국엔 지금의 완벽한 일곱이 되었죠.


다들 목말랐던 지점은 비슷했습니다

자신이 헌신한 결과를 오롯이 자신의 이름으로 내고 싶어 했고,

답답한 조직 문화에 진절머리가 나 있었으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향평준화되지 않고 일을 하고 싶다.라는 욕구가 있었죠.


신기하게도 일곱 명 모두 각기 다른 분야에 발 담그고 있는 사람들이라, 저희는 겹치는 부분 하나 없이 서로의 자리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팀이 되었습니다. 스타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욕심이 생길 법도 했고, 서로에게 시기나 질투를 느낄 법도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두 번 다시는 없을 기회라는 걸 저희는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대충 전부 다 도라이라는 말)


때론 힘들고 지치고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올 때도 많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작년의 일기장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내가 이 사람들을 만나 어떤 것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들여다보죠. 그들은 나를 그들과 동등한 프로로 대접해 주고 있고, 그 어떤 것도 제게서 뺏어가지 않습니다. 저는 드디어 저 멀리 있는 북극성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 것입니다. 그것도 비슷한 속도로 말입니다.


뒤에서 수군거릴 게 아니라, 당당히 마주 보면서 자신의 의견이나 상대방에 대한 피드백을 명확히 전달하면, 책략이나 은밀한 소통이 줄어들고 업무를 더욱 빨리 처리할 수 있다. -52

조직에서의 지위가 올라갈수록 들어오는 피드백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따라서 자칫하다가는 벌거벗은 채 일하거나 자신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는 실수를 저지르고도 태연할 수 있다-66

피드백을 받을 때의 태도도 중요하다. 어떤 비판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대응하고 소속 신호를 줌으로써 피드백을 마음 놓고 제시해도 좋다는 사실을 봐준다. 

만약 배를 만들고 싶다면 일꾼들에게 나무를 구해오라고 지시하지 마라. 업무와 일을 할당하지도 마라. 그보다는 갈망하고 동경하게 하라. 끝없이 망망한 바다를-372

자신들이 목말랐던 일을 자신이 원하던 사람들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만났을 때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 어떤 장벽도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회의 때 나오는 말들을 다 사업 아이템으로 가지고 갈 수는 없기에 일주일에 최소 한 번씩(요즘에는 하루에 한 번씩) 저희의 아이디어와 결과물들은 도마 위에 오르게 되죠.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저희는 서로에 대해, 그리고 서로의 결과에 대해 가차 없이 평가합니다. 회의와 피드백을 거칠 때는 나이도, 경력도 없습니다. 정말 결과물 하나만으로 냉정하게 판단합니다. 스타플레이어도 그 스타플레이어를 견제하는 선수도 필요 없이, 회사의 목적 아래 최고의 결과물을 내는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죠. 그러니 그 어떤 피드백이 와도 저희는 수용하고 다시 고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의견이 늘 채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레드팀이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죠. (참고 2)


그것뿐인가요.


자신의 사업안이 실패했다면, 어떠했기 때문에 실패했노라고 공공연히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실패한 프로젝트를 샅샅이 조사해 어떤 것들이 잘못된 부분이었는지도 고해성사 해야 하죠. 소위 자신의 "가오"를 생각하면 그런 행동은 안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팀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그게 일주일에 한 번씩 이뤄진다니깐


회사에서 누군가  나가도 우리는 여전히 친구다. 그래서 부끄럽지 않다-30

놀라운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타당한가? 310

지금 잘나가는 넷플릭스와 비슷한 점을 가졌다고 해서, 저희가 당장 업계 최고가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빛이 셀수록 그림자는 더욱 어둡고 길어지는 법이니까요.


사실 본업을 유지한 채로 스타트업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그렇게 로맨틱하거나 멋진 일이 아닙니다.

저는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의 모든 시간을 햇수로 2년째 죄다 이 업무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피부에 와닿게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저번 달에

열 권의 책을 읽어야 했고

토요일마다 두 개의 클래스를 열어야 했으며

따로 글을 쓰기 위해 콘텐츠를 소비할 시간을 쥐어 짜내야 했고

현재 열리고 있는 클래스 다음 기수 및 다른 클래스를 위한 사업 안을 구상해야 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놀랍게도 본업이 따로 있는 사람입니다.


그뿐인가요.


아무리 저희가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아이디어 회의 때 자신의 기획안이 소위 "까이는" 경험을 하게 되면 좀비가 아닌 이상에야 움츠러들기 쉽습니다. 그것도 매번 그렇게 된다고 생각해 볼까요? 그럼 다음 기획안을 낼 때의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겠죠.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결국 도태되어 일곱은 여섯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저 일 수도 있고요.


그럼 저희가 넷플릭스처럼 돈을 많이 받느냐.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저희는 작년의 총매출을 이미 2021년 1월에 열 배 넘게 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사업의 특성상 매몰 비용이 커 현재 저희는 단돈 천 원짜리 한 장도 저희 지갑에 넣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무서운 항목은 아직 남아있죠.

앞서 말한 것처럼. 저희는 열심히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잘 하는 것이 중요한 회사죠. 쉽게 말해 유효타가 매우 커야 합니다. 그러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스트레스를 꽤 많이 받습니다. 다들 정말 가감 없는 피드백을 하기 때문에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때가 많습니다.


또한 일의 강도 또한 매우 센 편입니다.

저희 모두 일의 완성도에 대한 기준이 높고 쏟아내는 콘텐츠들 모두 (가령 예를 들면 제가 블로그에 적는 글들 모두) 피드백을 하기 때문에 글 하나에도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 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난생처음으로 담배를 피워보고 싶다.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을 제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일을 하면서 살아있다.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거든요.

너무 신나고 너무 재밌고.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이 제 지난 1년을 충분히, 그리고 너무도 아름답게 바꾸었기 때문에 다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최고가 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고가 된 사람들은 일단 모두들 열심히는 했겠죠.


이 책은 저희가 최소한 틀린 방향으로는 가지 않고 있다.라고 말해준 중간 점검표, 혹은 휴게소 같은 책이었습니다. 저희 에디터들 모두 이 책을 읽으며 우리도 반드시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의지를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하지만 여태까지 저희를 거쳐간 수많은 플랫폼들이 그랬듯, 이 업계는 겸손해야 하는 곳이죠. 생각보다 왕좌는 보장되어 있지 않고,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는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요. 저희 역시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고, 늘 우리의 북극성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가 보려고 합니다. 훗날 저희가 조금씩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글을 보셨던 모든 분들이 내 저기는 저렇게 잘 될 줄 알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좀 더 정성스럽게, 그리고 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53F Co founder, Munalogi 입니다. 





참고 1.  

서태웅 팬이었습니다. 남동생은 그래도 주인공이라며 강백호 편을 들었지만 서태웅은 농구도 잘 하는데 얼굴이 잘생겼잖아.라며 서태웅 편을 들었죠. 남동생은 제게 속물이라고 했는데 속물 하지 뭐. 


참고 2. 

레드팀은 쉽게 말하면 누가 뭐라고 하면 죽어라 반대하는 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저는 저번 회사에서도 레드팀이었기 때문에 별명이 마녀였.....하...인생.



[이 글의 TMI]

1.  넷플도 좋지만 왓챠도 좋아함. 킬링 이브 어쩔.ㅠ

2. 모인 과정에 대해 더 쓰고 싶었지만 영입 과정 자체가 너무 길고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과감히 생략함. 

3. 현재 글쓰기 강좌를 구성 중입니다. 초급반 중급반 이렇게. 근데 이걸 하려면 저를 두 명 더 복제 해야됨.

4. 힘든데 행복해요. 그리고 여러분이 계셔 주셔서 진짜 행복합니다. 감사해요. 

5. 그래도 힘들어서 오늘 5Km 뛰고 들어와서 쓰기 시작함. 살려줘

6. 마지막 문장 개오글거려서 발행 누르기 전까지 고민했음.



부록. 흔한 에디터들의 제정신일 때 카톡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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