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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Feb 05. 2021

세상의 모든 살리에르들를 위하여

책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리뷰


사람이 가진 이미지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미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가령 배우라는 직업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한 배우에 대해 떠올렸을 때,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배역의 이미지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겠지만. 어쩌면 배우에게는 한계가 되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죠. 마치 가장 흥행했던 작품 속의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 파격 변신을 시도하지만 결국은 비슷한 연기로 돌아오게 되는 배우들을 우리는 잘 알지 않나요?


진짜 못생겼는데 잘생겼어


그림출처

제게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그런 배우 중 한 명에 속합니다.

그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작품으로는 셜록, 혹은 마블 유니버스의 닥터 스트레인지 정도가 있겠지만, 조금 더 넓게 보면 그의 필모그래피의 대부분은 천재의 삶을 연기한 작품에 맞춰져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미테이션 게임이나 호킹이 그랬고, 제가 빠져 있는 셜록은 말할 것도 없죠. 커런트 워에서조차 세기의 천재 에디슨을 연기했으니 이쯤 되면 혼자서 세상의 모든 천재들을 다 연기할 셈인가 봅니다.(찬성일세)


그가 연기했던 천재들은 하나같이 매우 고독합니다. 친구도 없고요. 사회생활을 잘 하지 못하거나 어딘가 괴짜처럼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정형화된 천재 이야기를 매우 좋아하죠. 만약 셜록이 괴팍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셜록이 왓슨에게 자신을 best man(신랑 측 들러리?)으로 선정해 줘서 고맙다며 늘 왓슨을 포옹하면서 울어 젖힌다면. 저는 아마 꼴 보기 싫어서 집에 있는 셜록 DVD 블루레이 판을 당장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었을 것입니다.


99% 노력과 1%의 영감이라지만 결국은 1%가 중요하다는 말이겠지요?


이렇듯 우리는 천재라는 혹은 천재적인 능력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환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천재들은 날 때부터 자기주장 떵떵거리면서 태어난 것일까요?

모차르트나 피카소. 드라마 속 셜록이나 장금이가 그랬듯이 이들은 타고난 능력을 번뜩이며 자기 분야에서 그리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긴 것일까요?


사실 그렇게 먼 존재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하다못해 우리는 주변의 엄친아,엄친딸 에게서도 질투와 열등감을 느낄 때가 많으니까요. 누구나 자신의 신경을 야금야금 긁으며 건드리는 존재가 옆, 혹은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마련이고. 저 또한 그런 경험은 있었습니다.(너무 많아서 문제죠)


모차르트를 천박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천재는 작품을 너무 쉽게 쓰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작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만드는 수단이었다. -43


그 친구 A는 의대 진학이 꿈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전교 5등 안에서 맴돌았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집안까지 부자였죠. 어머님은 그 아이의 뒷바라지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전업주부셨고. 아버지는 고위 공무원이셨습니다. 개근이 목표였던 제겐 그저 꿈같은 집안이었죠.


부잣집 아이들은 구김살도 어쩜 그렇게 없는지 제 마음도 모르고 A는 제게 참 따스했습니다. 제가 우울해져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마다 늘 제 손을 먼저 잡아주며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있어 주었죠. 저의 쪼그라진 마음도 A와 있으면 구석구석 따스한 기운을 머금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열등감이라는 주름은 끝까지 그 태양을 거부했습니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꼬깃꼬깃 구겨져있기만 했죠.(참고 1)


쟤는 천재니까.

원래 잘 하니까.

나는 그런 능력이 없으니까 지는 게 당연하지.

그런데다 환경도 좋은데 내가 쟤를 어떻게 이겨.

라며 친구의 웃는 얼굴을 점점 쳐다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 못난 열등감은 A와 저를 고등학교 졸업 후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멀리 떨어뜨려 놓았죠.


그렇게 제 마음속의 모차르트를 까맣게 잊고 살아오던 어느 날.

친구 B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B는 늘 제게 글을 잘 쓰는 것이 부럽다며 너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죠. 제가 하는 건 똑같이 따라 했었습니다. 제가 읽는 책, 쓰는 방식, 하물며 글을 쓰는 시간까지 모두 다요. 물론 전혀 상관이 없었기에 그러더라도 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B는 장문의 카톡을 보내곤 제 곁을 떠났습니다.


열등감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제가 아무렇지 않게 써내리는 글이 자신을 얼마나 비참하게 하는지 모른다는 골자였습니다.


문득 저를 떠난 B의 모습에서 어린 날의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B의 마음이 마치 제 맘의 한구석처럼 이해가 되는 것과 동시에 A가 느낀 상실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다시 카톡을 해보고 전화를 걸어봐도. B는 받지 않았습니다. 마치 제가 A에게 매몰차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요.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까지 어째서 몇십 년이나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일까요.
실제 모차르트는 어땠을까. 그는 매우 반복적이고 고된 과정을 거쳐 오랜 시간을 작곡에 투자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현악사중주들을 가리켜 "오랜 시간 공들인 노력의 소산"이라고 설명했다. -45

성공한 아이디어에 신비로운 원천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우리가 천재의 섬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 누구나 배양할 수 있는 생물학적 과정이라는 것도 알아냈다. 다시 말해 나는 주류에서 성공을 가능하게 해주는 과학과 방법이 있다는 것과 누구나 노력하면 그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35

연구 결과가 어땠을까? 가설과는 전혀 달랐다. 루이스는 천재들이 뛰어난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알코올 중독, 자살, 이혼 비율은 보통 수준이었고, 성공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이 놀라울 정도로 평범했다-63

이것이 과학자들이 말하는 역치 이론(Threshold Theory)이다. IQ가 일정한 역치를 넘어가면 잠재된 창의성은 누구나 같다. -68

우연이라는 게 참 이상하죠.

저는 샘플을 가지러 간 협력 병원에서 그 친구를 다시 만났습니다. 제 인생의 첫 모차르트 A를 말입니다. 자신의 바람대로 의사가 되어 있었고, 저 역시 돌고 돌아 연구원이 되어 있었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저희는 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수십 년 가까이 멀어졌던 그 사이를 바짝 당길 수 있었죠. 마침 시간이 되어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며 여태 쌓였던 이야기도 풀어놓았습니다(참고 2)


여전히 햇살같이 따스하던 A는 가만히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다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저를 많이 부러워했었다고요.


자신이 공부를 했던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의대를 가라고 기를 쓰고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했었습니다.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어댔고, 그 결과가 그랬을 뿐이라고요. 그에 비해 A의 눈에 비친 저는 정말 과학을(과학만!) 정말 좋아해 설명을 해 주는 내내 늘 신나 있었다고 합니다.(그때 과학을 끊었어야 했다.) 그래서 제게 수학을 가르쳐 주고 저에게서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배우고 싶어 저랑 늘 같이 있기를 바랐다고.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헤어지게 되어 속상했다고 했습니다. 의대에 와서 강의를 들을 때도. 레지던트가 되어 지겹도록 밤을 새울 때도. 이 친구라면 어떻게 풀어서 설명해 줄까. 이 아이라면 나를 어떻게 힘 나게 해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마음 한편 이 많이 쓰라렸다고도 이야기해 주었죠.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오랫동안 모차르트였고. 동시에 살리에르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흔히 편안한 답에 기대고 만다.'재능'이라고 결론 내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날 때부터 특정 기술력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선천적인 것이며, 후천적으로 배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그러니 노력은 그만두고 그저 편히 앉아 <아메리카 갓 탤런트>나 보면서 입으로 불을 뿜는 여덟 살짜리가 그런 '재주'를 타고났다고 단정하면 된다. -76

단순히 1만 시간을 반복해서 어떤 과제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83

인간의 두뇌 생리 기능이 상황과 경험에 맞게 달라지며 적응한다는 이런 개념을 가리켜 두뇌 가소성이라고 한다. -90

게다가 새로운 경험으로 이들 세포를 단련시키지 않으면, 세포들이 죽을 수도 있다. 새로운 뇌세포를 유지하려면 계속 학습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91


우리는 이제 마음속에 있는 모차르트들을 놓아줄 때가 왔습니다.

아뇨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스로 살리에르로 살기로 마음먹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줄 때입니다.


사실 우리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나요?

자신이 제대로 노력하지 않고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해,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있다는 것을요.

우리의 질투심으로 남을 모차르트로 만들지 마세요. 그것은 우리가 우리보다 아주 조금 더 빨리 적응하고 학습 능력이 빠른 사람을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가둬버리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결국 그들은 다가갈 수 없는 천재가 아니라 저희가 넘지 못하는 제대로 된 노력과 정성의 벽일 뿐입니다. 그들을 풀어줄 수 있어야 결국 우리는 마음속의 모차르트들을 넘어설 수 있죠.


링컨이라고 처음부터 그리 훌륭했을까요. 다 step이 있는 거죠.


완전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신출내기입니다. 하지만 매일 적어도 그림 하나와 스케치 하나씩 올릴 겁니다. 주말에는 두 개씩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보시는 작품 순서는 제가 그린 순서입니다. 제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겁니다. 볼품이 없든 그런대로 괜찮든 제가 그리는 것을 빠짐없이 전부 올리겠습니다. -73

법륜스님의 즉 문 즉답이 시작된 초기라고 기억합니다.

한 신입 PD가 자신도 선배 PD처럼 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었죠.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이야기했고. 법륜 스님은 너무도 간단하게 해답을 내려 주셨습니다.


모르면 모든 게 기적 같다.

하고요.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라고 생각하는 유명한 인물들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그들이 그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갔을지에 대해서도 떠올려봅시다. 과연 그들은 날 때부터 발레나 피겨, 혹은 축구나 바이올린을 잘 다루었을까요? 우리는 그 사람들의 노력을 모릅니다. 잘 되는 모습만을 보고 있기에 더욱 그렇죠. 하지만 그들 역시 저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연습을 통해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다시 한번 멀리 가지 말고 주변을 봅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불과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초보 독서가입니다. 그런데도 일주일에 7일. 그것도 감히 글을 쓰고 있죠. 제게 재능이 있다고 하시는 분들께 말합니다. 저는 우울증을 오래 앓아 망가진 뇌를 가진 사람입니다. 글에 집중하는 것도 어려워 매일매일 한 문단만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직도요.


소위 말하는 것처럼 쪽이 팔리건 말건.

무조건 글을 썼다 하면 발행을 하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어쩌면 시작은 재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능력이고.

우리 모두 그 능력을 키워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살리에르들은 더 이상 모차르트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B가 저를 반드시 다시 만나주길 바랍니다.




참고 1.

지금 생각해도 참 착한 친구였다. 저런 친구들을 두고 소시오 기질이 있는 내가 싫다.


참고 2.

이 내용에 관련해서는 주말?쯤 소시오패스 일기에서 풀 예정입니다.


참고 3.

저 때 샘플을 상사에게 주고 먼저 가라고 했었음. 원래 같이 밥 먹기로 했었는데 배신했다고 삐졌었는데 택시비 대신 내주니까 평생 가자고 했었음. 그냥 골로 갔으면... 어휴.



[이 글의 TMI]

1. 알기 쉽게 하기 위해 공부라고 예를 든 것입니다. 이 책은 공부라는 능력보다는 좀 더 고차원적인 예술적 창의력, 그리고 히트 아이템들의 공식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이 글은 특히 Chapter 1에 집중하여 썼습니다.2와 3은 규칙 없음 서평에 쓴 것처럼 창의력이 발휘되려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 류의 결말이라 생략.


2. 내가 갖고 있던 음악적 에피소드를 쓰려고 했는데 이 글에 쓴 에피소드가 더 극적이라 이것으로 대체.

3. 그렇다고 모차르트 영화로 예를 들자니 흔하고 내가 그 영화를 다시 볼 시간이 없어서 영화로 풀기 실패.

3. 다른 영화 프레스티지로 바꾸려고 했으나 서평 안 쓰고 입 벌리고 보고 있길래 패스(크리스천 베일 좋아함)

4. 빌런으로 영화를 풀어내려 했으나 어벤저스 트는 순간 OST 따라 부르고 있어서 또 패스.(진짜 이때 울 뻔)

5. 핸드폰이 생긴 이래로 전화번호를 한 번도 바꾼 적이 없음.

6. 아직도 열등감과 자기 검열이 심한 편. 다행인(?) 것은 예전의 열등감이 다른 사람을 향했다면 이제는 내 스스로를 파고드는 경향이 있음. 내가 원하는 퀄이 안 나오면 자괴감이 너무 심해져 잘 못 빠져나옴. 그래서 글 발행 누르고 한 30분 동안은 그로기 상태임.

7. 마감시간 세 시간 전부터 단 한순간도 욕을 하지 않은 순간이 없음. 과거의 나는 무슨 배짱으로 이만큼 글을 쓰겠다고 공지를 때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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