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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Mar 01. 2021

감당할 수 있겠어요?

소설 [두 방문객]리뷰


이 글은 소설 [두 방문객], 영화 [주홍 글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경고했다.


저희 회사는 다 이상하지만(일단 내가 다님) 딱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하면 사주고, 가장 먼저 신청한 사람에게 읽을 수 있도록 예약을 해주는 제도가 그것입니다.


사실 이 책을 신청해놓고 완벽하게 까먹고 있었습니다. 한참이나 지난 후에 사서 분께서 제게 따로 말씀을 해주셔서 알았습니다. 그때 예약 신청해두시고 안 찾아가셔서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했다고요. 방금 반납되었는데 읽어보시겠어요?라는 말이 아니었다면 저는 신청한 놈이 책을 안 읽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사람으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참고 1)


제가 이 책을 왜 신청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완벽히 잊어버린 채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읽을 이유조차 사라진 상황에서 책을 집어 든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그래서 더 건조하게. 더 냉정하게 책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무미건조함은 책에 빠져든 지 20분 만에 시원하게 박살 나고야 말았죠.



상상도 못했다. 이런 이야기일 줄은;근데 완벽하게 이해는 못 하겠다


사진 출처:구글 퍼니파니/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근데 이제 이 정도는 아닌.

이 책은 주요 인물들의 시점을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경애. 세현. 그리고 수연이 주요 인물이죠. 덕분에 한 가지의 사건을 최소 세 사람의 시선에서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남처럼 보이는 이 셋을 엮어주는 것은 바로 경애의 아들 상운입니다. 아들 상운은 3년 전에 죽었고, 세현과 수연의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결혼을 앞둔 세현과 수연은 상운의 기일을 맞아 자신을 방문해 준. 기특하고 또 감사한 손님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또 다른 무언가를 숨기고 있습니다. 그것의 시작점은 그때도 이미 연인이었던 세현과 수연이, 손님으로 온 상운과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부터 줘. 이 장면은 소설 내내 몇 번에 걸쳐 주인공의 시점이 바뀌어가며 화자 됩니다. 그래서 대번에 삼각관계가 있었겠거니.라는 생각을 바로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는 그렇게 수연과 상운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쉽게 떠올리게 합니다. 죽은 아들이 갖고 있던 북두칠성이 새겨진 반지를 수연이 끼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경애의 눈썰미에서. 저와 경애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죠.


네. 삼각관계 맞습니다.


상운과 세현의 사랑에 끼어든 것이 바로 수연이었으니까요.


잘못 읽으신 것 아닙니다. 상운과 세현은 동성애 성향이 있음을 숨기고 세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셋이 만난 그 순간에. 세현과 상운은 서로를 알아본 것입니다. 수연은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자신의 사랑 세현을 위해 남들이 보기에 "안정적으로 보이는" 연인 관계와 번듯한 결혼 관계를 제공하겠다고 하죠

그렇게 위태위태한 관계는 상운의 사고사로 마무리. 혹은 깨져버리게 됩니다. 여기까지만이라 해도 마음이 충분히 아프지만. 또 다른 비밀 하나가 모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상운의 죽음은 사고가 아닌, 그런 관계를 견디다 못해 상운이 사고로 위장한 자살이었다는 것이죠.


누군가의 죽음을 매개로 한 진실은 언제나 가슴이 아픕니다. 소설에 나오는 사람 중 그 누구 하나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없죠. 하지만 이해는 완벽하게 되지 않았습니다. 동성애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왜 하필. 그래야만 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죠.


경애는 학생 때 생긴 아이 상운을 업고 대학원 수업을 들을 정도로 상운과의 관계가 돈독했습니다. 아들과 비밀 대화를 하는 것만 같아 상운이 독일어를 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죠. 그런 어머니에게 상운은 니콜라스 슐츠의 수줍음이라는 책 번역을 부탁합니다. 동성애로 인해 박해를 받아야만 했던 두 독일 청년의 이야기였죠. 아마 자신의 정체성을 어머니에게 대놓고 말할 수 없었기에 차선책을 선택했다고 봅니다. 어머니가 그 문장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며 두 청년의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기를. 그리고 결국엔 자신도 이해해 줄 수 있는 시간을 벌었던 것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사이였기에. 상운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소극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만 했던 괴로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들의 접시 깨는 모습마저도 사람답다며 사랑한 어머니에게 살아있는 아들이 아닌 죽어버린 아들을 선물한다는 것은.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을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것도 사고사로 위장까지 해가면서 말입니다.


완벽하게 사실이 묻히기를 바랐다면. 어째서 자신이 죽은 뒤 세현이 자신의 집에 찾아와 자신이 숨겨둔 연애편지를 찾게 했을까요. 혹시라도 부모님이 먼저 알게 되기라도 했다면. 자신은 이미 죽었으니 부모님은 알아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남기기에 충분했습니다.



엄마라서 이해 가능한 것일까;그것도 이렇게 빨리?
무지개는 성적 소수자들을 위한 색입니다.

예전에 남자친구에게 친한 친구 한 명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내가 어릴 적부터 어쩌고 하는 통상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 이 사람이 내가 말한 남자친구 저쩌고.라는 말로 이어지며 계속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저는 둘을 내버려 두고 잠시 화장실에 가는 김에 식사값 계산까지 하고 왔더니 두 사람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 동성 친구는 저를 자기가 먼저 좋아했으니 헤어지라는 식으로 남자친구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랑 성격이 비슷한 사람들만 주위에 두는 탓에 둘 다 성격이 매우 사나웠으므로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저는 정말 울며 불며 두 사람의 싸움을 말렸던 생각이 납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사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가시지 않습니다. 성 정체성을 숨겨야 했던 친구도 안쓰러웠고. 그런 것을 전혀 몰랐던 저도. 그리고 의문의 공격을 당한 남자친구도. 셋 다 피해자가 되어 버렸던 사건이었으니까요. 아. 그때 그 장소에서 저희의 끝나지 않을 법한 싸움을 강제로 목격해야만 했던 모든 분들 역시 말입니다.


그런데 경애는 다릅니다. 가족이기 때문일까요. 자신의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매우 빠른 속도로 받아들입니다. 물론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 책의 번역을 부탁했는지. 왜 그렇게 자신의 곁을 떠나야만 했는지. 아들이 남긴 모든 것들이 후회와 자신조차 아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는 한으로 다가와 새끼 잃은 어미의 가슴을 뚫릴 때까지 주먹으로 치게 합니다.


끝내 눌러왔던 모든 눈물을 터뜨려 말려버린 경애의 태도는. 그럼에도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두 방문객에게 찾아와줘서 고맙다.라는 말은 물론. 앞으로 계속 찾아와 달라는 말을 남기죠.


제가 앞서서 상운이 안타깝고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경애 때문입니다. 이렇게 빨리 아들을 이해할 만큼의 아량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인데. 무엇이 그리도 무서웠을까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다면. 경애였다면 그래도 이놈아. 진작에 말을 하지.라며 자신보다 커져버린 아들을 안아줄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잔인해질 때;감정을 저울에 올리지 못하는 이유. 
아무리 싫어도 처음과 마지막은 얼굴을 보고 말해라 진짜 예의 없이 이러지 말고.


아무리 노력하고 애원해도 나에게 '등'으로만 존재해 온 사람.

물론 서로가 돌아온 이유는 '사랑해서'와 '사랑이 끝나서'로 각자 달랐지만.

앞으로 여자애가 짊어지고 가야 할, 고독해서 미친 사랑이 안타까웠고, 가슴 한 쪽에 비밀 하나를 파묻고 살아야 할 나날들이 애처로웠다

극중 인물들의 사랑은 정말 짠 내가 날 지경입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은 두말할 것도 없고 친구와 연인을 함께 잃어버린 마음과 그런 연인의 마음을 갖지 못하는 마음 등이 뒤엉켜 보는 내내 마치 예전의 사랑의 스튜디오에서 엇갈리는 화살표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연식 나온다)


반지에 새겨진 북두칠성의 의미도 아마 그러할 것입니다. 서로 절대 바뀌지 않는 사랑의 종착역 말입니다.


경애에겐  죽어버린 아들이었을 것이고. 상운에겐 세현. 세현에겐 상운. 그리고 수연에겐 세현이었겠죠.


저는 그중에서도 수연의 사랑이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을 기꺼이 내주겠다는 수연의 용기도. 그리고 그런 사람의 곁에 평생 머물겠다고 다짐한 마음도. 그 사람의 등만 보면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녀도. 저는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고 그런 배포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연이라고 서운함을 못 느끼지는 않습니다. 투덜거리며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수연에게 경애는 앞으로도 수연의 삶에 버팀목이 될 법한 말을 던져주죠.


더 사랑하는 쪽이 진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저 역시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온갖 얼굴이 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극중 경애가 부모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많은 관계들 속에서 서운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고 그것이 내가 손해 본다. 란 생각을 늘 기본으로 갖고 있었죠. 그런 서운함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내가 상처받지 않아야 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방어벽을 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경애의 그 한 마디로 결국 사랑이란 그런 치졸한 마음마저 내려놓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죠.


다시 한번 상운을 떠올려봅니다.


번듯한 사회적 지위와 자신의 정체성에서 고민하다 결국은 안타까운 선택을 해 버린 상운 말입니다. 이토록 참 어른인 어머니와 함께였다면. 아마 자신의 생일에 저들과 함께 웃고 있을 수는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맴도는 책이었습니다. 그의 기일만큼이나 씁쓸하고 쓸쓸한 여운이 가득했죠.



참고 1

한 달에 신청할 수 있는 권수가 정해져있음. 그래서 매우 머리를 굴려서 신청해야 함. 근데 하도 다달이 권수를 꽉꽉 채워 신청을 하니까 상사가 이거 읽고 언제 일하냐고 했지만 그러기에 나는 효율에 미친 사람이라 이미 네가 할 일까지 다 해뒀지. 그러니까 조용히 해. 



[이 글의 TMI]

1. 새 가구가 들어오고 사람 사는 집처럼 되어가고 있지만 점점 내가 사람이 아니게 되어가고 있지. 

2. 이사한다고 난리 부리다가 허리 다침. 토요일 의문의 1패 후 병원행 예정

3. 도시락을 싸 놓고 안 들고 간 지 3일째. 이럴 거 그냥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것도 까먹지 왜 기억한담.

4. 옆집 강아지와 여전히 싸우는 중. 그냥 한글 가르쳐주고 싸워야 할 판. 내가 짖을 수도 없고. 

5. 저녁으로 가지 라자냐 성공. 먹는 건 왜 안 까먹음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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