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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Oct 16. 2021

추운 마음에, 두꺼운 이불 한 장

책 [따뜻한 인간의 탄생]리뷰

이 글은 머스트 리드 북의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이제서야 여름의 뒷모습과 그림자가 눈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시선을 채 돌리기도 전에 제 앞에 겨울이 와 있는 느낌이네요. 안 그래도 독일어 공부까지 겹쳐 정신없는 제게서 가을까지 제게서 뺏어가면. 이제 남은 건 차디찬 겨울뿐인 느낌에, 벌써부터 발끝이 시려오는 것만 같아요.


이런 환절기에 병원은 평소보다 많이 바빠집니다.

소위 환절기 우울증(Seasonal affective disorder)이라고 말하는 증상으로 내원하는 사람들도 많고. 커진 일교차로 인해 잠자고 있던 비염이 심해져서 저처럼 출근길에 비트박스를 하는 사람도 많아지기 때문입니다.(참고 1)


병원까지 예를 들지 않아도, 아침에 일어나면 괜히 이불 안에 더 머무르고 싶어지고, 마시는 커피도 오늘만큼은 따뜻한 것으로 고르고 싶어지는 이맘때가 되면 항상 마음도 춥다고 느끼게 될 때가 많죠.


책 [따뜻한 인간의 탄생]은 이런 환절기에 읽으면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웬만하면 지원받은 도서의 경우는 더 깐깐하게 평가하는 편인데 오랜만에 괜찮은 책을 발견한 것 같아요. 아마 물리적인 시기로도, 개인적인 시기로도 맞는 책이었기에 더 그렇게 느끼는 듯합니다.


진화와 심리학. 그리고 체온;잘 엮었다. 
인간 경우에 체온 조절의 절박함은 '따뜻한'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따돌림을 당해 혼자 '쓸쓸하게'버림받는 상황을 회피하겠다는 열망에서 비롯된 사회적 생각과 정서의 한층 추상적인 패턴을 낳는다. 나는 이 지적을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 애착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환경 적응의 문제라고. 

몸은 Homeostasis(항상성)에 의해 조절됩니다. 파도 위에서 서핑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바다는 말이 없고, 파도를 예측할 수 없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모든 크고 작은 파도를 받아들이며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몸을 바다 위에서 균형 잡는 것 밖에 없죠. 마치 우리가 거의 매일을 살아나기 위해 비슷한 온도, 비슷한 심박수, 비슷한 혈당량을 가져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 좀 벗어나서 파도 하나 맞고 물에 빠지면 어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파도를 세 번만 연달아 맞게 되면 몸의 입장에서는 비상사태에 가까운 일이 일어납니다.


체온을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우리 몸에서 체온을 조절하는 부분, 그러니까 보일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은 Hypothalamus(아마도 시상하부)입니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36.5도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힘을 다 쓰고 있죠. 만약 이 시상하부가 고장 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겠습니다.


아이를 키워보신 분이라면 아이가 열은 펄펄 끓는데 추워하면서 파들파들 떠는 것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아이의 시상하부, 그러니까 보일러는 고장 나서 체온이 42도가 디폴트라고 세팅해 버렸고. 현재 아이의 체온은 40도인데도 디폴트에 2도 모자라기 때문에 열은 나지만 추워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만약 이 아이가 조금만 더 병원에 늦게 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마 뇌를 비롯한 각종 장기가 고열로 녹아내렸을 겁니다.


이런 끔찍한 예를 통해서 생존과 체온이 직결되어 있는 것은 알겠지만. 사회적으로 체온이 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일지 궁금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환절기가 되면 마음이 춥다고 말하는 이유. 자신이 솔로일 때 행복한 커플을 보면 현재 온도보다 더 춥게 느끼는 이유. 차가운 사람(Cold blooded)이나 봄 햇살 같은 사람이라는 말 뜻을 바로 알아차리는 이유. 모두 사회적으로 체온이 말해주는 지표로 인해 통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체온이라는 것은 우리라는 생명체 하나만을 살게 하는 보일러임과 동시에 다른 사람이 가진 보일러와도 연동하는 셈인 것이죠.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때 체온조절 실패로 죽지 않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요.


진화와 체온, 그리고 사회심리학까지를 책은 매우 쉽고 흥미롭게 잘 엮어두었습니다. 특히 초반 부분에서 책의 흡입력이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꽤 괜찮은 수준의 연구결과와 이론
베르크만의 법칙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심오한 체온 조절 적응 수단이 체구, 즉 신체 크기임을 증명해 준다. 다른 대형 포유동물들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체온 조절 원리는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면역학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인만큼, 저에게도 체온은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체온에 따라 면역체계의 fluctuation(아마도 파동, 출렁임)이 심해지기도 하고, 우리가 흔히 염증(Inflammation)이라고 부르는 면역체계의 싸움이 시작되면 체온이 올라가는 것이 하나의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코로나 1,2차 백신 모두 그 덕에 고열에 신나게 시달렸던 저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책은 읽으면서 책 뒤에 있는 Reference를 가장 많이 찾아보았습니다. 왜 이 정도를 가지고 책을 썼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 이유도, 제가 관심이 있었던 주제이기에 재미있게 생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두 번째 장점은 뉴턴을 예로 들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 뉴턴이 책을 썼을 때 질문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연구할 시간도 없어서 바빠 죽겠는데 자꾸 책에 나오는 질문을 하자 화가 난 뉴턴은 홧김에 책을 다시 정말 어렵게 써서 그 누구도 읽지 못하게 했다고 하고 그 뒤로 그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알려집니다.


이 책의 장점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꽤 많은 지식을 적절하게 배치를 잘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식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보통 이런 책들의 경우 너무 어렵게 쓰거나 이런 것까지 넣는다고? 하는 생각을 피하기 어려운데 필요한 정도에서 한두 걸음 정도 더 움직인 그 위치에서 정확하게 멈춥니다.(딱 시상하부 정도까지)


한때는 너무 쉽게 쓰는 책이라면 다들 그 모든 학문의 난이도를 너무 낮게 보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알죠. 책은 어렵게 쓰는 것보다 쉽게 쓰는 것이 훨씬 힘들고,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완벽한 설명은 부족하다;늘 의심하고 비판해 보기.
사실 나를 포함한 우리 연구자들은 이런 사실을 입증할 정도로 충분히 많은 것을 아직은 알고 있지 않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중앙난방장치와 온도를 높이거나 내릴 목적으로 기술적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그 밖의 여러 수단에 의해 철저하게 조정되는 환경에 살다 보면, 이런 것들이 우리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누군가는 "카더라"라고도 말할 수 있는 류의 책이 많이 나오는 요즘. 과학을 하는 입장에서 매우 기쁘긴 합니다. 어쨌거나 많은 부분에서 과학을 이용해 무언가를 설명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것은 제게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까요.


하지만 꼭 책을 읽다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반드시 한 번씩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지점은 이 책 역시 피할 수 없습니다. 바로 현재 책에서 말하고 있는 체온이 전부이고 이것 때문에 모든 것이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죠.


체온이 가장 두드러진 요인이 되어 책에서 말하는 것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것이 이것만 해결되면 다 될걸?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아직까지도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존재이고, 의학이나 과학이라는 도구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의 경우는 이렇다!!라고 말하면 다 믿어버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죠. 그러니 TV에 의사가 나와서 몸에 좋다고 한다고 다 사지 마세요. 제발.


또한 한 권이 크게 여러 조각으로 나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진화적인 내용부터 끌어와 다루다 보니 이야기가 방대해질 수밖에 없고. 심리학과 사회학적인 내용까지 들어 있어 조금은 산만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포인트가 몇 군데 있었습니다. 목차를 보며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직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지 않기 때문에 미싱 링크(Missing link)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죠. 모든 부분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그 모든 요인들 중 하나의 용의자일 뿐 크리티컬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으니까요. (참고 3)


마치면서.

이 책은 두 번 읽었습니다.

처음에 읽을 때는 과학적 지식과 연구의 수준에 놀라 초반 부분에 감탄했었고 뒷부분은 그럭저럭이다.라고 생각하며 넘겼습니다. (참고 2)


그러나 최근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잠깐 주변 사람들과 갈등이 생겨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나 읽게 되었죠. 그때 저는 뒷부분에서 오 괜찮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책에서 다루는 이 체온에 관한 내용 하나 바뀐다고 해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두드러진 이유가 아니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제 환절기가 되면 한 번씩은 생각날 책이 되었습니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연관성에 대해서도 인사이트를 준 책이라서 더욱 말입니다.


참고 1

진짜 미치겠음. 두꺼운 옷 입으면 옷에서 먼지가 많이 생겨서 더 재채기함.


참고 2

계독하는 스타일이라 너무 많은 심리 도서를 오랫동안 읽어와서 그게 그것처럼 보여서 그럴 수도 있음. 이러다 심리학 박사도 딸 판.


참고 3

다행히 이 책은 자신의 한계를 완벽하게 인정함. 사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그걸 해냄.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음.


[이 글의 TMI]

1. 내년 다이어리 벌써 구경 중. 왜 앨리스는 보이지 않는가.

2. 방 청소하다가 500원 주움.

3. 얼죽아에서 요새 홍차 인간으로 재탄생 중.

4. 독일어요? 요새 은근 자신감 붙음. 독일어 신문 읽기 쌉가능

#진화심리학 #따뜻한인간의탄생 #머스트리드북 #도서서평 #책읽기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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