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칭찬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뭘 하든, 어떤 분야든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손만 대면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은 손을 뻗고 손가락까지 쫘악 펴 미친 듯이 팔을 휘저어봐도 허공의 공기조차 손가락 사이로 아스라이 빠져나가는데. 저는 이상하게도 발밑에 마침맞게 굴러온 왕관을 늘 주워 쓸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참 편한 인생이겠다.라고 빈정대며 말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왜 제가 칭찬을 듣는 것인지요. 화려한 조명과 칭찬이 저를 감쌀 때마다 주위 동료들은 저를 시기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곤 하죠. 정작 멈추지 않는 어깨춤을 춰도 모자랄 본인은 왜 칭찬을 받는지도 알지도 못한 채 축복의 장 아래서 혼자 어리둥절할 뿐인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칭찬을 받고도 아무렇지 않게 자리로 가 다시 일을 시작하는 저를 보면. 상사들은 물건이 하나 들어왔다며 좋아하지만. 저는 그냥 빨리 집에 가려고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일 뿐. 칭찬을 받기 위해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조차 동료들에게는 꼴 보기 싫을 뿐이죠.
그러다 보니 제 스스로가 욕심이 나는 일이 있어 열심히 하고 있으면 동료들은 적당히 해도 칭찬받을 텐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말합니다. 면전에다 대고요. 저는 그런 눈치를 받으며 번번이 제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를 제출해야 하지만 그 와중에도 칭찬은 칭찬대로 들으니. 마음속에는 불만과 서운함이 차곡차곡 쌓여갈 뿐이죠.
나의 결과물만 보면 자괴감이 든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을 때의 동료들의 싸늘한 눈빛과 재수 없단 말을 고스란히 받아내다 보면. 입을 다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수줍게 커피 한 잔을 내밀며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동료들에게는 더더욱 해 줄 말이 없습니다. 한참이고 당황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이고 있으면. 그들은 마치 자신은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는 건가.라는 반응을 보이며 결국 커피향과 함께 멀어집니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찾아가 피드백을 요구한 적도 있습니다. 한 시간에 걸쳐 내가 어떤 부분을 잘 하고 있는지. 무엇이 나의 강점인지. 고쳐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닥치는 대로 붙잡고 물어봐도 저보다 상사인 분들은 너그러운 눈빛이 가득한 표정으로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는 반응뿐입니다. 그 말과 함께 몰래 찔러주던 신사임당 두 장은 저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는 것을 과연 그분들은 알기나 할까요
지금처럼.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잘 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느낌일까. 앞으로 내가 노력이란 것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어떤 느낌으로, 어떤 강도로, 무슨 방법을 써서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라고 스스로에게 아무리 물어보아도 감조차 잡을 수 없습니다.
제가 듣는 칭찬은 실체가 없고. 덕분에 저는 아무것도 느낄 수도, 배울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쓰고 있는 왕관은 한없이 가볍고 시시하게 느껴집니다. 언제고 던져버릴 수도, 다른 크고 좋은 왕관으로도 바꿀 수 있을 테니까요. 이미 제가 앉아 있는 자리 뒤엔 그런 것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지만. 저는 그런 왕관 따윈 바란 적이 없으니 그것이 소중한지도 알지 못하죠.
하다못해 실수를 저질러도. 여태 쌓아놓은 저의 신뢰 때문인지. 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며 다독이거나 쉬쉬할 뿐. 누구도 제게 올바른 피드백을 주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되어갑니다. 바로 하는 족족 모든 것이 잘 되는 길을 걷는 사람이죠. 실패했을 때 어떤 것이, 무엇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절대 알 수 없는 사람. 여태까지 해오던 루틴 대로 해왔는데. 그 결과가 실패라는 종착역으로 자신의 손목을 잡고 따라갈 수도 없을 속도로 뛰어가면 절대 버틸 수 없는 사람. 그런 숨찬 달리기 속에서 이기 머선129 라는 말 외에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사람. 저는 계속 그런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극단으로. 또 극단으로. 치달았죠.
그러나 삶은 가끔 심술을 부리고 그 심술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우리를 바꿔놓죠. 예외 없이 그런 이벤트는 제게도 일어납니다.
바로 제가 관리직이 되어버린 것이죠.
누군가를 관찰하고 피드백을 줘야 하는 위치에 올라가 버린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별다른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에게 관찰하는 업무를 주다니요. 그것도 사람을.
저는 강렬히 저항했습니다. 높은 월급도 지위도 필요 없다고 했지만. 저 밖에는 할 사람이 없는 사정이었기에. 저는 처음으로 목으로, 어깨로, 허리로 무게를 견뎌야 하는 왕관을 쓰게 됩니다.
집에 가지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제게 주어진 직원들의 이력서와 여태까지의 인사고과를 훑어보며. 그들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체크해야 했지만. 정작 저는 그들의 현재 얼굴과 패기 넘치는 입사 때의 모습을 매치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겨우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두 번 이상 망설이지 않고 매치 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저의 신경을 야금야금 뺏어가는 직원이 생겼습니다. 늘 바쁘고 정신이 없는 직원이었죠. 반사적으로 쟤는 잘라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구실을 만들기 위해 그 직원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을 먹지 않고 늘 머리가 젖은 채로 오는 이유는 그 직원이 게을러서 그럴 테고.
점심을 다른 직원들과 함께 먹지 않고 늘 혼자 먹는 이유는 아마도 사교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테고.
누구보다 빨리 퇴근을 하는 이유는 일에 대한 열정이 없어서겠지.
라고. 저는 그 직원의 인사고과를 머릿속으로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패턴이 제 눈에도 인식이 될 정도가 되었을 때. 저는 그 직원을 블라인드로 가려진 제 방으로 불렀습니다.
아침을 먹지 않고 늘 머리가 젖은 채 오는 이유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수술 후 거동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오느라 그런 것이고.
점심을 다른 직원들과 함께 먹지 않는 이유는
보험금이 나올 때까지는 조금이라도 더 아껴서 병원비에 보태야 하기 때문이고.
누구보다 빨리 퇴근하는 이유는
부모님을 돌보는 다른 가족과 교대를 해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세상이 무너져라 울고 있는 직원 앞에서 저는 다시 한번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눈만 껌뻑거리며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유급 휴가 일주일을 그 직원에게 주었습니다. 회사 복지 규정을 찾아 담당 부서 번호와 책자들을 찾아주기도 했습니다. 그 직원이 불쌍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빨리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야 부려 먹... 아니 아니 일을 하니까요.
저의 그 말에 직원은 더 놀라 한참이고 울었습니다. 귀가 없어질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울더니 이젠 제가 짜부가 될 때까지 저를 안아주며 울었습니다.
그녀는 안정을 되찾았고. 일의 퍼포먼스도 올라갔습니다. 큰 회의에서 발표를 하며 칭찬을 받기도 했죠.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저를 쳐다보며 울먹거렸습니다.(그만.)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지만. 분위기상 다들 제가 도왔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단체로 코를 훌쩍거렸죠.(그만해)
그 덕분에 술도 못 먹는 제가 회식을 3차까지 가야 했습니다.(가만 안 둔다)
다들 술에 떡이 되어 콜택시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한 노부부가 저기서부터 걸어오셨습니다. 그녀를 많이 닮아 있었죠.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부모님이셨습니다. 눈이 마주쳤다.라고 생각했을 때. 어머님은 환하게 웃으시며 저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걸을 수 있습니다.라는 말은 거기 서 있던 모든 분들이 섭취한 알코올이 눈으로 다 빠져나올 때까지 우리의 마음을 맴돌았습니다. 심지어 저 조차도 말이죠. (참고 1)
저는 사실 일밖에 모릅니다.
그게 규정이었고 저는 규정을 지켜야 할 관리직이었죠.
다시 말해 사람을 다루는 정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선한 마음에 그 직원을 배려한 것이 아닙니다. 일에 지장이 있으니까.라는 것이 골자였죠.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정성이라는 것이 나와 같은 종(Species)이지만 완전히 다른 우주를 가진 주인에게 갖추어야 하는 자그마한 예의는 아닐까.라는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의 칭찬을 견뎌낼 재간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관찰력으로 나라는 사람을 관찰하는 정성을 쏟고 있으며. 그 사람들의 칭찬에는 동감할 수 없어도 그들의 관심과 내게 쏟는 시간만 큼에는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만인에게 봄바람 같은 사랑을 불어 넣어주는 그들의 하루도, 나 밖에 몰라 나 하나 챙기기도 힘든 저의 하루도. 똑같이 24시간이지만. 그들은 제게 단 5분이라도 더 할애하는 셈이니. 이만한 사랑을 제가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께도 해당합니다.
제가 괴물이 되지 않게 정확하고 좋은 피드백과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전히 여러분의 칭찬에는 동감할 수 없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블로그에 관심과 시간 쏟아주신 것. 따뜻한 말 해주시는 것. 여러분의 마음과 어두운 면을 기꺼이 보여주신 것. 모두 힘든 일이란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도 다 갚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여러분의 그 대가 없는 따뜻함이 이렇게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것만은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저 같은 사람도 울릴 줄 아는 분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런 사랑이 세상을 바꿔왔죠. 여러분은 그렇게 저의 작은 세계마저도 바꾸고 계신 겁니다. 물론 매우 좋은 쪽으로요.
감사합니다.
[그냥 전체적인 글의 참고를 위해]
소시오패스라는 것은 우울증처럼 진단을 정확히 내릴 수 없습니다. 반복된 우울이나 심리적 거부를 겪은 사람도 소시오가 될 수 있죠. 그리고 소시오가 우울증보다 조금 더 상위(큰)의 개념입니다.
저의 우울증의 경우 덜 우울 모드(Rigo)와 완전 우울(Virgo) 있습니다.
저의 Virgo 모드와 소시오 기질이 합쳐질 때 시너지(?)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는 진짜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잔잔한 상태가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죠.
제가 일기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일기만 봐도 감정 변화가 딱 보이거든요. 그래서 그 주기나 trigger가 되는 사건, 혹은 감정들을 찾아보고 Rigo가 더 자주 보일 수 있도록 관리를 잘 해주는 편입니다. 최근 한 달 동안은 여러분이 댓글 달아주실 때마다 Rigo라고 불러주셔서 요샌 더더욱 Rigo가 더 자주 저와 인사를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사람 하나 살리신 겁니다. 정말입니다.
가끔 소시오거나 사이코패스 면 다 사람을 죽이거나 그런 것은 아니냐.라고 말 할지도 모릅니다. 그에 대해서는 책의 사례를 들어 어떻게 다른지 준비하고 있으니 좀만 기다려 주세요.
참고1
집이 가까운 그녀를 데리러 부모님이 나오신 것. 울지는 않았습니다. 왜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울고 GR일까요.
[이 글의 TMI]
1.제가 일하는 곳 지하 매점? 에 공차가 생겼습니다. 이제 딸기가 아니라 공차가 멸종하겠군요.
2. 하루 남았다.
3. 빨래 하는데 세제 안 넣고 섬유 유연제만 때려 넣어서 향기로운 쓰레기 생성함.
4. 오늘 포스팅 미션 마지막 날이라 술 한잔 마셨습니다. 제 글이 재미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