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이랑 밥먹고 커피먹고 수다까지 떨기.
주 중에는 기억이 상실된다. 아니. 삭제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을 하느라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본업이 있는 나는(나도 놀랍다. 그것도 매일 놀랍다.) 주 중에 본업과 관련해 생기는 일들만 쳐내고 잠자리에 눕는 것이 불가능하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죽어라 열심히 하고 있는 사업 관련 일들도 쳐내야 한다. 그뿐이랴. 지식 노동자인 나를 위한 개인적인 독서와 공부, 그리고 운동까지 마치고 나야 겨우 내 한 몸을 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걸 다섯 번만 반복하면 벌써 금요일 밤이 된다.
누구는 TGIF라며 불금의 밤을 시켜놓은 치킨과 함께 준비할지도 모르지만. 내게 불금의 밤은 주말에 쌓아둬야 할 콘텐츠들을 정리하고 주 중에 생각난 콘텐츠들을 정리하는 날이 된다. 휴일의 시작이 아니라 휴일에도 일할 준비를 해놓는 날의 시작인 것이다.
소시오 기질이 있는 데다 시간까지 없다 보니. 약속을 위해 주말을 비워놓는 날이 잘 없다. 게다가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일주일 기준 최소 24시간은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힘들 땐 혼자 있어야 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약속시간을 빼놓는 일은 드물거나 아주 오래전에 약속을 해 놓고 그날을 기점으로 스케줄과 컨디션을 조절한다.
하지만 이번 주말은 조금 특별하다.
나를 위해 기꺼이 내 집 주변까지 와주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심리 모임을 하며 알게 된 우리는 줌(Zoom)으로 만나 이미 1년 넘게 얼굴은 알고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덜컥 만나겠다며 찾아와 주는 그분의 용기에 나는 감탄도 하고 걱정도 했다. 실제 내 모습이 음침하고 재미가 없으면 어쩔까. 안 그래도 말주변이 없는데 마땅히 흥미를 일으킬 말을 못 걸어서 그분이 따분해 하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 같으면 피곤하다. 그날 아플 예정이다. 지금 거신 전화는 그때 결번일 것이다.라며 약속을 피했겠지만.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올해인 만큼.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귀한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허락한 그분을 위해 나 역시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본 사람과 만나 밥을 먹는 것이 괜찮을까.라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마치 10년 지기처럼 만나자마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양손을 흔들어젖히며 서로를 반겼다. 날씨가 많이 풀리긴 했지만 아직 쌀쌀했기에 우리는 이른 아침으로 분식집의 국수 메뉴를 선택했다. 만난 순간부터 밥을 먹는 내내, 다행히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B 님도 아무 거부감이나 불편한 없이 나를 대해 주셨다. 이젠 사람을 만나도(그것도 얼굴만 아는)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오랜만에 나의 오랜 아침 식사였던 시리얼과 블루베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마저도 책을 읽으며 해치우던 것도 잠시 멀리한 채 음식의 맛과 함께 먹는 사람의 반응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오후에 병원 스케줄이 잡혀 있는 B 님의 한 시간을 더 루팡 하기 위해 우린 스타벅스로 향했다. 나는 매우 오랜만에 아. 맞아. 사람과 이렇게 대화하는 것이었지?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람이 귀찮고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단지 그런 부분이 익숙하지 않은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대화의 중간중간 문득 떠올렸다.
그렇게 수다를 떨고도 아쉬워, 우리는 날씨가 좋은 것을 핑계 삼아 지하철역까지 함께 걷기로 했다.
걷는 내내 이야기도 하고 서로의 말에 웃기도 했다. 사람과의 약속이 나를 가장 바꾸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있는 동안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이었지. 이게 삶의 기쁨이었지.라며 나는 오래간만에 모든 스케줄러 안의 메모들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스케줄러의 메모가 스스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친절하고 상냥하신 B 님을 보내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토요일의 남은 시간들을 정말 미친 듯이 집중해야 했다. 보통 이럴 경우 나의 반응은 두 번 다시는 약속 잡지 않는다.라는 쪽이지만 오늘만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바쁘다고 온 동네 소문이 난 사람이었고. 그 사람에게 거절당할 용기를 가지고 먼저 약속을 제안한 B 님의 마음만큼은 내가 앞으로도 잊지 않고 싶어서였다.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시간과 노력, 돈, 정성이 든다. 나는 그것을 일해야 한다. 내게 집중하고 싶다.라는 이유로 꽤 오랫동안이나 멀리해왔다. (엄마가 그렇게 너한테만 '쳐' 집중했으면 최소 부처 정도는 되었어야 한다고 함. 친엄마 맞는 듯.)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겪어야 하는 그 과정이 지겹기도 했다. 나와 다른 점이나 내가 좋아하지 않는 점이 보이면 밀어내기도 했다.
누구보다 일을 잘 하고 싶었던 소시오 기질 충만한 사회 부적응자인 나.
이런 일상 따위는 부수적인 것이고 언제든 다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늘 이런 소소한 기쁨을 뒤로 미뤄놓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자주 웃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임을 오늘에서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다가와 주는 사람이 부쩍 많은 요즘.
매주 한 번씩은 각 잡힌 문장을 써내기 위해 1글 1꼬북칩 하기보다는 그날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편안하게 글을 써 내려가는 나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이 글의 TMI]
1. 아침에 일어나 선크림 바르고 회사 가는 게 목표인 사람임. 나무늘보도 나보다 덜 게으를 듯.
2. 2020년 알게 된 유튜버 승우 아빠는 2020년 내가 알게 된 그 어떤 유튜버 보다 나를 웃게 했음. 아버님 앞으로도 더 실패해 주세요. 음식은 계속 사 먹겠습니다.
3. 오래간만에 만 오천보 이상 걸어 꿀잠 잤음.
4. 일요일엔 맥모닝이지.(야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