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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Mar 13. 2021

미녀가 아무리 괴로워도 이 언니 앞에서는 무릎 꿇는다

책 [나는 불완전한 나를 사랑한다] 리뷰


이 글은 영화 [아이 필 프리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울고 있는 나의 모습, 바보 같은 나의 모습;이 노래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된다면 친구합시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아닌 거야.



누구나 자신이 부족하다는 데서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낀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진짜 모습이 보이고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걱정하기보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더 많이 신경 쓰는 법을 배웠다.
 
어릴 적에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취약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취약성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매들린 랭글 

저는 외모 콤플렉스가 매우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된 우울증은 거식증과 폭식증의 반복되는 사이클에 저를 붙잡아 두었고, 덕분에 거울 앞에 섰을 땐 30킬로를 빼야 하는 제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20대에 시작된 작아진 자존감은 저를 늘 미래에서 살게 했습니다.


나중에 살을 빼고 나면 이런 옷을 입을 거야. 나중에 살을 빼면 여기도 다닐 거야. 등의 말로 저를 안심 시켰죠. 그렇게 30킬로를 빼고 나서. 드디어 원하던 몸무게가 되었지만(참고 1) 거울 속의 저는 여전히 못생겼고 추했습니다. 이번엔 몸무게가 아닌. 반곱슬 머리가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외모 콤플렉스는 아주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탈출할 길을 찾을 수 없었죠.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저를 사랑할 수 없었기에 늘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습니다. 길거리를 다니다가도 쇼윈도에 비친 제 모습을 저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울 앞에서 늘 울며 하루를 마감해야 했던 것도 당연했습니다.


여기 [르네]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코르셋 안에 갇힌 자신의 뚱뚱하고 처량한 몸을 거울로 바라보는 그녀를 보니. 어째 영 낯설지가 않아 눈길과 관심이 자꾸 그녀에게로 갑니다. 이미 쏟은 관심은, 이제 제 귓가에 그녀가 마음속에 깊게 숨겨 놓은 욕망과 소망까지 들리게 합니다.


난 절대 안 될 거야. 나 같은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자격이 없어.라며 자신을 비하하고 있겠죠.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아마도 사회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섭섭한 외형. 일 것입니다.


그녀는 자의와 타의로 촘촘히 짠 사회적 코르셋을 입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까지 숨겨야 했습니다. 마치 그런 꿈을 가지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우리는 자신에게서 모자란 점을 나노 단위까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잘되지 않을 경우 그 모자란 점들의 탓을 합니다. 그 감정이 더 심해질 경우, 우리는 그 나쁜 점 때문에 행여나 다른 사람들에게 버려지거나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기까지 합니다. 마치 자신의 가치가 그 나쁜 점 때문에 다 망쳐지는 것 같은 기분은 덤이고요.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짜로"나쁜 점일까요?


자신감.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원천;그리고 그것은 성형으로도 고칠 수 없다
사진출처:Google/ insider/이 장면에서 터졌다 이기야


용기는 듣기에 멋진 말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려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건 두려운 일이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기 이야기에서 달아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어렵지는 않아. 자신의 취약성을 받아들이는 게 위험하기는 하지만 사랑, 소속감, 기쁨을 포기하는 것만큼 위험하지는 않아. 사랑, 소속감, 기쁨을 포기하는 건 우리를 가장 취약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지. 용기를 내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만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의 힘을 찾을 수 있어.

 어울리기 위해서는 상황을 평가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도록 자신의 모습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그저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하다.

외모 자존감.이라고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또 다른 영화가 있죠. 배우 김아중을 정말 단숨에 스타의 상석에 앉혀놓은 영화 바로 [미녀는 괴로워]입니다. 이 두 영화의 결이 달라지는 지점은, 주인공들이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그 미모를 얻는 방법부터입니다.(참고 2)


[미녀는 괴로워]에서는 성형을 통해 완벽한 미인이 된 주인공이 자신감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죠. 원래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 르네가 겪는 세계를 보여줍니다.


자신의 소원처럼 아름다워진 르네의 행보는 그야말로 영화의 백미입니다.

마치 인류의 진화를 보는 것처럼 르네의 굽었던 어깨와 허리가 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발걸음은 또 어떤가요. 하얀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태도로. 르네는 자신이 그렇게 지원해보고 싶어 하던 회사의 리셉션 자리까지 꿰어찹니다.


르네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는 웃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우린 모두 르네와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죠. 어디서나 당당하고 늘 행복해 보이는 르네의 모습이. 그리고 진심으로 웃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르네는 외모적으로 그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감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죠. 그녀는 여전히 르네였고 자신의 믿음 때문에 그 모든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르네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예뻐서, 혹은 예쁘지 않아서가 아닌. 그녀가 가진 재밌고 유쾌한 성격 때문에. 그리고 그녀가 르네이기 때문에 좋아했던 거죠. 그것이 르네의 본질이었으니까요.



진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보이는 것은 눈을 현혹시킬 뿐이지. 그리고 손은 눈보다 빨라(응?)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서 벗어나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기 가치감을 갖게 된다. 즉 지금 이대로 충분하고, 사랑받을 만하고, 어딘가에 속할 수 있는 존재라고 느낀다.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의 핵심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가치다. 이걸 해야만. 이렇게 되어야만.이라는 전제 조건은 필요 없다. 

거꾸로 살려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은  돈이든 뭐든 더 많이 가지려 한다. 그래야 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은 그 반대다. 먼저 참된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다음에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If I'm shinin', everybody gonna shine (yeah, I'm goals)
I was born like this, don't even gotta try (now you know)
I'm like chardonnay, get better over time (so you know)
Heard you say I'm not the baddest, bitch, you lied
-Lizzo, Juice

르네가 아닌 우리 인생의 주인공인 우리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저는 지나온 순간을 되돌리고 싶다거나 후회를 하는 성격이 아니라 앞으로의 모습만 보며 살겠지만. 만의 하나라도 제가 만약 그 힘들고 초라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스무 살의 벚꽃비가 내리는 그때의 4월을 살지 못했던 제게 다가가 반드시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참고 3)


너의 결점 때문에 누구도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네가 결점이라 믿어온 모든 것들은 너를 하등한 존재로 강등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믿기 어렵겠지만, 너를 괴롭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너의 결점이 아니라는 것.

너라는 생명이 가진 가장 활기찬 매력을 표현해 주는 남들과 다른 차별점이라는 것. 을 말입니다.


우리 자신을 완벽주의로 몰아넣어 학대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기준에 우리를 절대 끼워 맞추지 말고 스스로인 채 당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에 익숙해질 때.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아마도 그 초라했던 스무 살의 아이는 깊게 눌러쓴 모자를 조금이라도 들고. 그 찬란한 벚꽃비가 내리는 봄의 한 조각을 마음속에 기억할 수 있었을 겁니다. 문득 그 아이에게 미안해지는 밤입니다.


참고 1

163cm 46Kg이 되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원하는 옷을 다 입을 수 있었고 원하는 핏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 어떤 옷을 걸치고 입어도 정말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았음. 그때 산 하이힐들이나 옷들은 죄다 명품이었지만 그 어떤 것을 입어도 나의 초라함을 감출 수 없는 것 같이 느껴졌음. 아. 지금은 내 반곱슬 머리도 좋아함. 파마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웨이브가 나오기 때문. 머리숱 너무 많았던 것도 지금은 좋아함. 그냥 예전엔 내가 싫어했던 모든 것들이 다 좋음.


참고 2

성형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음. 다만 올챙이적 생각 못 하고 성형 안 한 애들한테 하라고 부추기는 건 아니라고 봄.


참고 3

벚꽃이 필 만큼 찬란한 봄이었는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옷+모자로 나를 가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음. 나 빼고 모두 다 행복해 보였고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이 봄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느껴졌음.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서. 나는 먼 미래의 나는 이렇게 벚꽃이 피었을 때 저 사람들처럼 웃으며 지내고 있을 거라고 자꾸 미래의 나를 소환해서 거기에 대입을 시켰었음. 명심해.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야. 그리고 일을 시작하면 벚꽃을 보는 건 비 때문에 벚꽃이 운동화에 잔뜩 묻어 출근길을 짜증 나게 할 때뿐이야.



[이 글의 TMI]

1. 오래간만에 글이 참 안 써졌다. 데드라인 넘길 뻔. 두세 달에 한 번씩 이렇게 슬럼프 아닌 슬럼프가 오는데 예전 같았으면 불안해서 손톱 물어뜯고 난리였겠지만 이제 이게 지나가면 더 크고 넓은 마음과 능력을 가진다는 것을 알기에 슬럼프가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오늘은 안된다고. 내일 와ㅠ내일 오라고ㅠ글 쓰는 날은 오지 마ㅠ


2. 사실 읽자마자 콤플렉스에 꽂혀서 이렇게 써서 그렇지 이 책 자체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불완전함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불안전함에 질 때마다 어디에 숨어버리는지도 알 수 있는 좋은 책이었음.


3. 며칠 책을 읽지 못했다. 그랬더니 확실히 글이 잘 안 써진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여기서 또 한 번 통감한다.

4. 이직한 직장에서 자꾸 일을 준다. 자기들 일까지 준다. 조만간 내 본성을 드러내고 한번 짖어야 할 판.

5. 엄마 김치가 너무 먹고 싶은 날들이다. 지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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