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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Mar 15. 2021

시인 윤동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영화 [동주]리뷰

이 글은 영화 [동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 역사가 스포일러긴 하죠?


고작 두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제게 어떤 것이 가장 어렵냐고 물으면 그 답은 당연히 글쓰기 일 것입니다. 정확한 단어를 썼는지. 지금 내가 쓰려는 이 단어가 맞는 단어인지. 마음속에서, 그리고 머릿속에서 사그라들고 다시 태어나는 단어와 느낌을 잡아내기 위해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제가 겨우 펜이나 메모장을 꺼내 들었을 땐 그때의 단어와 느낌은 이미 다른 옷을 입고 저를 낯설게 쳐다보고 있죠. (참고 1)


블로그에 글 쓰는 것조차 이런데, 언어를 정제하고 또 정제했을 때야 비로소 완성할 수 있는 시(Poem)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작업 일지. 저는 아마 감조차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평생 그러하겠죠.


시는 한껏 여운을 머금고 있지만 쓰인 단어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너무 큽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으로 머리로 그리고 가슴으로 풀어내며 시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 탄복하게 됩니다.


영화 [동주]는 그의 시처럼 함축되어 있는 시인 윤동주의 인생을 잔잔히 풀어내 줍니다. 단조로워 보이는 흑백 영화 한가득 그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죠. 물론 완벽한 사실만을 담은 영화는 아니지만. 그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과 시대적 배경만큼은 공감할 수 있습니다.


시를 잉태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젊음만큼이나 괴로웠을 그의 마음을 품고 탄생한 진주
사진출처:구글 울산 매일/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

동주는 넘을 수 없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창씨개명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멀고도 가까운 나라로 넘어가 유학 생활을 해야 했죠. 그에게 세상은 마치 보고 싶은 친구를 보러 친구 집 앞까지 갔건만. 애타게 불러도 나오지 않는 친구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잔뜩 기대했던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어쩔 수 없이 돌아서야 하는 것처럼요.


게다가 자신에겐 그리도 어렵고 닿을 수 없었던 신춘문예 당선이. 고종사촌인 몽규에겐 그저 문안인사 처럼 쉽고 같잖기까지 합니다. 그런 몽규를 한없이 뒤에서 바라만 보아야 했죠.


여리고 섬세한 동주의 마음은 이미 조각조각 나 있었을 것입니다. 글을 몰랐다면. 느끼고도 써내리지 못했을 테지만. 그러기엔 동주가 가진 재능은 그런 어두운 시대와 자신의 내면마저도 밝힐 만큼 빛나고 아름다웠죠.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플 청춘의 중간에 놓인 동주였지만. 그는 상처들을 품에 끌어안고 승화시키기로 합니다.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자신을 가만가만 쓰다듬어가며 더디게 해결책을 찾죠. 그 부름에 응답한 것은 당연하게도 시였을 것입니다.


이런 동주에게 "시를 쓴다"라는 행위 자체는 자신의 내면 성찰과 동시에 울분을 토해낼 수 있는 통로였습니다. 숨기지 않은 상처들이 빼곡히 보이는 시를 볼 때면. 그가 얼마나 고통 속에서 절규했을지가 언뜻 비치는 것만 같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의 크기가 깊을수록 시는 아름답기만 하네요. (참고 2)



흑백영화를 오감이 즐거운 영화로 바꿔주는 그의 문학;화면을 뚫고 나오는 시의 향기와 색.
사진출처:구글 동양일보 /시의 언어를 다듬는 그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볼 수만 있다면..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개연성은 그렇다 치고 음악이 정말 기깔나는 영화죠. 마치 영화를 위해 음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영화를 음악에 맞춘 느낌이 나는 영화입니다. 음악만큼이나 색채도 매우 강렬해 보는 맛이 쏠쏠합니다. 이로 인해 영화는 생기와 리듬감을 띠고, 심장 박동 수는 크고 웅장한 비트만큼이나 한껏 올라가게 됩니다. 덕분에 주인공 베이비가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톡톡히 받을 수 있죠.


[베이비 드라이버]에서의 음악 역할을 하는 것이 영화 [동주]에서는 그의 작품들입니다. 배우 강하늘의 목소리를 빌려 영화 내내 울려 퍼지는 그의 작품은 우리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기보다는, 조용히 색연필을 들어 이 흑백영화를 사각사각 물들이는 편을 선택했습니다.


선명하지 않지만 부드러운 색채로 화면을 천천히 메우는 그의 시를 듣고 있자면,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습니다. 금세라도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떨어질 것만 같은 여름밤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죠.


시대적 배경이나 교과서 속의 윤동주 시인을 재현하는 의미로 흑백영화를 택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더 많은 색채와 감각을 제게 선사했습니다. 오히려 상상할 수 있는 도화지 같은 느낌의 영화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동주와 몽규;유려한 동주, 그리고 강건한 몽규. 그러나 결국 그 시대의 청년들


사진출처:구글 인천일보/뉘 집 자식들인지 신수가 훤하네

영화의 중심인물은 동주와 몽규 입니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두 사람의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갈등을 여러 번 보여줍니다. 동주는 어째서인지 몽규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것 같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이 보잘것없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언제나 몽규의 뒷모습만 보는 것 같고 저 사람을 평생 내가 따라잡을 수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 그리고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오히려 자신을 배려하는 몽규를 미워하는 자신이었을 겁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절대 만날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두 평행선은 천천히 접점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묘하게 닮아가기 시작하죠. 사상범으로 몰려 감옥으로 간 순간부터는 더욱 그러합니다. 동주는 점점 자신이 동경했던 몽규의 모습을 밖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우울했던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동주와 몽규는 다른 수단을 선택했습니다. 그 수단이 너무도 극과 극의 모습이었지만 결국은 같은 목적을 이루려 했을 것입니다. 그 둘을 제외한 다른 청년들 역시 제각각의 모습으로 투쟁했겠죠. 그런 숭고한 선택을 어린 나이에 할 수 있었던 그들의 용기만큼은 다 같은 크기였을 것입니다.


영화 [동주]는 심심합니다. 심지어 색마저 입혀져 있지 않죠. 그가 썼던 작품에 자주 나오는 별에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별을 보러 시골로 내려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시골은 도시처럼 화려하고 복잡한 맛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조금씩 눈에 별들의 모습이 박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내 별로 가득한 하늘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 하늘을 두 눈에 담고 나면, 도시로 돌아와도 다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히 자신이 보았던 그 하늘을 마음속에 품게 되죠.


시인 윤동주는 시린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자아내 조용한 별이 가득한 하늘을 우리에게 선물했습니다. 아마도 그 역시 자신이 만든 하늘을 우러러보며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참고 1

일할 땐 속도 느린 건 옴팡지게 못 참는데 글 쓸 땐 필사를 선호하는 편. 머릿속에서 빨리 빠져나갈 거 같으면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저장하는 편이지만 느긋하게 앉아 있을 땐 주로 몰스킨을 펼쳐놓고 뭐든 써 내려가는 편.


참고 

중고등학교 때 윤동주의 시를 배울 때마다 국어 선생님이 울먹거리셨음. 특히 자화상은 거의 수업을 하지 못할 정도셨음. 나도 윤동주의 시 중에는 자화상을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해서 국어 선생님이 우실 때마다 같이 울먹거렸음. 그래서 국어 선생님이 문학에 관심이 있으면 국문과를 가라고 하셨지만 이과를 갔지. 죄송합니다.



[이 글의 TMI]

1. 베이글이 너무 먹고 싶어 베이글 시키는 김에 SSG 배송을 시켰는데 베이글만 품절이라 안 옴......

2. 허리가 너무 아파 앉아있는 것이 좀 괴로움. 최근 일이 바빠 운동을 못했더니 더 그런 듯.

3. 확실히 책을 많이 읽어야 글을 쓰는 것 같다. 저번 주 내내 글을 많이 안 읽어서 쓰는 게 괴로웠음.

4. 리뷰 해줬으면 하는 영화나 책 추천받습니다.

5. 상사가 바보거나 말만 하는 사람이면 진짜 일하는 게 엄청 괴로움. 나중에 두고 보자.

6. 오늘 이불빨래해서 밖에 널어놨는데 옆집 개부인께서 깔고 앉으셔서 안 놓으심. 하.... 너어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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