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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Mar 20. 2021

악은 평범함의 가면 뒤에서 자라난다

책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 리뷰


아마도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기본 내용으로 깔려있을 것입니다. 매우 열받지만 매우 좋은 책이니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을 때 읽어보세요. 아마 저를 괴롭히고 싶으실 거예요.



AK-47밖에 모르는 나란 인간이 어깨너머로 본 전쟁;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 자의 침묵
그림 출처:티스토리/그걸 말이라고 하고 앉았나.
자식은 아버지가 저지른 죄에 책임이 없다-13p

자신은 그저 치명적인 약물을 제공한 약사일 뿐, 그들을 실제로 살해한 건 의사이기 때문에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87p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끼끼...아, 아니 우기기 잘 하는 한 나라가 있습니다. 쩨쩨하게 그 라떼시절 이야기해서 뭐 하느냐는 식의 태도가 쿨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나라죠. 독일의 경우 아직까지도 "그때의 일"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있는 데 유독 그 나라만 전기가 없는 건지 인터넷이 안 되는 건지 배우는 것도 없나 봅니다.


이럴 때 보면 참 닭이랑 비슷합니다. 대가리(참고 1)만 숨기면 숨었다, 혹은 아무것도 안 보인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거든요. 고스톱 치다가 궁지에 몰리니까 판 엎는 거랑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사람과 원숭이의 차이일... 어이쿠.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사는데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국방의 의무도 지지 않고,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는 저이지만. 6.25에 참전하신 할아버지와, 갓 전쟁이 끝났을 때 태어난 아버지. 그 두 세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전쟁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대충 알 수 있었습니다. 전쟁 후의 기억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도요. 덕분에 저는 평생 그 두 남자를 이해하면서도 거부하느라. 참으로 많은 감정 소모를 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전쟁. 살아남은 자도 죽은 자도 모두 패배자로 만드는 그것;인간성의 말살. 
사진출처:매일경제/

우리가 마라톤의 유래가 되었다고 알고 있는 마라톤 전투 때, 한 병사가 다른 병사들의 죽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가장 오래된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사례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렇듯 전쟁은 신체 위의 깊고 아픈 상처만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에 대한 기억과 흉터, 그리고 본능에까지 두려움을 깊게 새겨 넣죠.


이토록 전쟁에 참여해 자신의 목숨과 돌아오지 않을 청춘을 기꺼이 바친 분들에게는 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런 엄청난 일을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벌이 따라야 하겠죠.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는 죽음의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의 생사를 책임졌던 전범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왓챠의 [체르노빌]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구성의 책이죠.


"책임자"들의 악랄함과, 그와의 반대되는 그들의 평범성이 대비되어 잔인함이 극대화됩니다. 문체가 매우 딱딱해 그 안에 묻은 진실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 또한 특징입니다. 대신 읽고 나니 제 마음이 마치 총격을 받은 나무판처럼 너덜거리더군요.




가해자. 혹은 악이란 무엇일까;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말의 허상
사진출처:알라딘, 아트 인사이드/진짜 이 영화 내 베스트 3 안에 들어가는데 저 장면에서 진짜 한나 너무 미웠다.
나는 트란실바니아에서 온 카페시우스다. 나에게서 악마를 보게 될 것이다. -90이들은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며 모든 것을 잊었다. 이들은 일말의 수치심이나 죄책감도 내비치지 않았으며 단 한 번도 아우슈비츠에서 복무했다는 사실에 대해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264

"확실히 참여하셨고, 당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267

"명령을 받으면 무조건 해야 했으니까. 집에서처럼. 군소리 없이". 결국 카페시우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판에 박힌 변론으로 되돌아가 과거에 저질렀던 행동을 변명하고 정당화했다. -305

"도망칠 순 없었냐고? 없지. 당연히! 탈영하면 바로 잡혔을걸! 그러면 가장 가까운 기둥에서 교수형을 당했겠지. 일개 개인이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어. 체제에 맞설 순 없었지. 규율이 최고의 가치였지. 그게 전쟁이야"-306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면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정작 무서운 사람은 면식범이나 모범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죠.


이 책의 주된 "악마들" 그러니까 가해자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보았을 땐 덕망 있는 의사, 약사들이었죠. 하지만 그들의 이웃이 아우슈비츠의 입구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이 평범하고 친근한 약사 아저씨는 손짓 한 번으로 그들을 가스실로 보내버렸습니다. 심지어 그 순간을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즐기기까지 했죠.


피해자들은 죽어서도 그 악마들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시체에서 금니까지 빼내 마치 LH 돈처럼 사용하고 사유재산으로 축적까지 했으니까요. 어차피 죽어버려 쓸모없을 것이라는 희대의 망언까지 남긴 채 말입니다.


악은 그렇게 평범합니다.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한나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자리가 모자랐을 것이고 폭동이 일어났을 거라며 덤덤히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냈죠. 오히려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법정에 내내 앉아있었습니다. (참고 2)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내 옆집에 살던 그 인사 잘하는 학생이라는 것이 밝혀질 때마다 주민 인터뷰에 늘 등장하는 말은 다름 아닌 "그럴 사람으로 안 보였어요"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그 어떤 것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주위의 악이 얼마나 얌전하고 정상적인 상태로 도사리고 있는지 이런 예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탈을 이용한 사람이 잘못 한 것이지 속은 사람은 죄가 없습니다. 바로 거기가 악의 평범 성과 잔인성이 함께 존재하는 구간이죠.



보고 있나 원숭이들아;아. 글을 모르지? 하긴 뭘 알겠니. 
사진출처:한국일보/일단 번호부터가 매우 잘못한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같은 범죄의 끔찍함을 고려할 때 생존자들과 희생자들을 생각해서라도 '과거는 지나갔으니 그만 묻어두자'라는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310

천벌이라는 게 있어 시원하게 번개 한 방 꽝 하고 때려주면 좋겠지만. 그렇게 죄를 씻기엔 겹겹이 쌓인 죄가 너무도 많다는 걸 하늘도 아나 봅니다. 악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평범하듯, 천벌도 생각보다 조용하게 다가옵니다.


그 지지부진하지만 반드시 오는 천벌 중 하나는 바로 오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욕을 먹고 계속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잊을만하면 회자되는 형벌이 바로 그것이죠. 그들은 스스로가 당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때마다 침묵해야 하거나 그 상황을 피해야만 합니다. 자기들이 당당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성가시고 억울한 상황일 수밖에 없겠죠.


그래도 깔끔하게 속이 풀리지 않는 제 마음도 알았는지. 책은 결국 저를 다시 한번 울리고 맙니다. 저 역시 계속 곱씹게 되는 문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저 역시 악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했습니다. 아래 문장을 끝으로 너무 복잡한 마음이 드는 이 책의 리뷰를 마칠까 합니다.


결국 카페시우스는 비겁한 인간이 되는 길을 택했고 평생 자신의 죄를 부인하며 살다가 죽었다. 부끄러움은 영원히 그의 몫이다. 




참고 1

사람을 제외한 동물의 머리는 대가리라고 부르는 것이 표준어입니다. 욕이 아니다 이기야.


참고 2

이 영화는 내가 저어어엉말 아끼는 영화 중 하나다. 내가 한글을 한나가 배운 것처럼 배워서 더더욱. 그런데 내용이 너무 슬프고 아프고 엉망진창.


[이 글의 TMI]

1. 진짜 안 써졌다. 몇 번을 엎었고 2월부터 쓰려고 했었는데 결국 어떻게 해서든 내보내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선입선출하듯이 쓰기로 마음먹음.

2. 처음엔 가짜 사나이에 빗대어서 썼었음. 근데 군대도 안 간 주제에 알지도 못하면서 들먹거리는 게 싫어서 다시 책 리뷰로.

3. 부부 싸움을 많이 목격하며 자란 아이들의 뇌는 내전을 겪은 아이들의 뇌와 비슷하다고 함. 내 뇌..

4. 읽는 내내 마음이 그냥 너무 무거웠다.

5. 하지만 그래도 루틴을 포기할 수 없기에 30분 뛰고 옴. 마스크 끼고 달리기하다 기절할 뻔.

6. 다이어트 방법을 바꿨는데 몸이 더 건강해지면서 살이 빠지는 기분이다.

7. 오늘 왤케 말 많지.

8. 몰라 내 블로그임.

9. 옆집 강아지가 오늘은 내 손을 핥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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