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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Mar 23. 2021

베네딕트가 판 깔고 조디 포스터가 개인기 하는 두 시간

영화 [모리타니안]리뷰


이 글은 영화 [모리타니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수업을 마친 후 쉬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복도를 달려온 같은 반 친구가 미국의 빌딩이 비행기 테러로 주저앉았다는 말을 하며 TV를 켰을 때. 친구가 말한 문장이 장면으로 변환되어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을 본 충격이 10분 전에 배운 수학 2보다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정확한 이해관계를 학습할 의지도 없이. 그 뒤로 이슬람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제겐 전쟁, 혹은 테러를 일으킬 확률을 높은 사람들. 위험한 사람들로 분류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후엔 참사의 현장에 세워진 기념관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그 생각은 더 강해졌습니다. 아마 저 뿐만 아니라 우리의 대부분은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9.11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한 나라인 미국 역시 그런 인지적 오류를 일으켰으니까요.


사람의 편견이라는 게 참 무섭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모리타니안]에서 슬라히의 당연한 무죄가 입증되는 그 어이없는 와중에도 저는 이 영화가 반전 영화가 아닐까. 하는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법과 정의가 있다고 말했지만 실상 한 개인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미국만 탓할 게 아니었던 겁니다. 저마저도 그런 선입견에서 완벽하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리고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편협한 시각을 가진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낯선 조합의 배우들;오이 오빠 미안한데 이번엔 오빠가 안 보여. 



사진 출처:다음 영화/진짜 솔직히 시간 맞아서 봤다.

이 영화는 정말 낯선 배우들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나 조디 포스터 정도를 제외하면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이 주연으로 떡하니 자리 잡고 있죠. 그리고 그마저도 그렇게 큰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배우들의 역할은 더더욱 생경합니다.

미치광이 천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중저음의 미국 악센트를 쓰는 군 검찰관으로. 나약함과 우아함이 공존하는 이미지가 어울렸던 조디 포스터는 감히 911 테러 용의자의 편에 선 똑 부러진 변호사로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인 어지럽힘이었지만요.


가장 낯선 배우라고 할 수도 있는 타히르 라힘은 이 영화에서 테러 용의자인 슬라히를 연기했고, BAFTA 남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고 합니다. 그럴만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연기를 영화 내내 보여줍니다. (참고 1)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따로 있습니다. 조디 포스터죠.

어느새 백발이 어울리는 나이가 된 그녀의 등장부터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양들의 침묵에서 보았던 유려하고 여려 보이기만 하던 클라리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거든요. 아니. 그녀가 연기했던 그 모든 전작들의 모습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혼나는 것처럼 귀에 때려 박히는 딕션. 이미 몇 십 년간 실제로 변호사로의 삶을 살아온 것 같은 태도. 눈빛 하나로 슬라히와 관객의 마음까지 바꾸는 그녀의 연기는 두 번이나 골든 글로브를 탄 대배우의 면모를 꼼꼼하게 챙겨 보여줍니다. 영화 내내 압도당한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죠.


그녀는 마치 보자기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어울리지 않을 법한 모든 배우들을 하나로 아울러 꽁꽁 싸맨 뒤 [모리타니안]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저희에게 배달해 주었죠. 그 어떤 것도 쏟아지지 않은 매우 성공적으로 말입니다. 언니 사랑해요.



사람. 결국 그것이 승리를 이끌었다;그리고 또, 조디 포스터. 


사진출처:구글 [티스토리]/술 마시는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처음과 두 번째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 너무 찰떡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 초반부의 낸시는 직업적인 냉정함으로 가득한 인물입니다. 입술을 꼼꼼하게 채운 붉은 립스틱과 태도에서 그녀의 커리어와 철저함을 느낄 수 있죠. 재판에서 이기는 것. 그것이 머릿속에 전부인 사람입니다.


그에 반해 군 검찰관 스투(베네딕트 컴버배치)는 9.11테러로 친구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자신의 친구를 그렇게 만든 용의자를 전기의자에 앉히려는 의지와 동기로 법정에 서길 희망합니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둘 중 한 사람의 패배로 영화가 끝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웠습니다. 두 배우 모두 좋아하다 보니 아무리 영화라지만 한 쪽이 지는 것은 마음이 아플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다행히도, 목적이 다른 두 사람은 그 누구도 지지 않고 합의점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합의점의 다른 말은 아마도 '사람'이었을 겁니다.


두 사람은 지독하게 뚫기 어려웠던 검열과 의뢰인의 마음의 벽을 넘어서서. 미국이 그리도 숨기려고 발악했던 추악한 진실을 모두 다 알게 됩니다. 한 개인을 향한 상식을 벗어난 고문 행위와 협박들에 대해서 모두.


군인인 스투에게는 더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는 가르침에 용기를 얻어 재판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변절자라는 오명을 달긴 했지만. 자신의 자존심만은 절대 그리 살지 말라고 소리쳤을 것이고. 그는 자신 내면의 소리 앞에서만큼은 떳떳했을 겁니다.


진실의 힘은 낸시 역시 변화 시킵니다.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가 아닌. 마음으로 변호인을 감싸기 시작합니다. 그녀 역시 자신 안의 진심을 표출하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낸시의 눈빛이 변화하는 이 부분부터 영화는 관객이 흘리는 눈물만큼 따뜻해지기 시작합니다. 결국은 슬라히가 범인일 것이다.라는 마음을 가슴 한구석에 숨기고 있었던 저 역시. 그제서야 뉘우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모로 저를 참 부끄럽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악의 축은 미국을 용서했다. 과연 미국은 그러했는가?;승리와 여유는 결국 모든 것을 용서한 자 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사진출처:구글 [티스토리]/ 이 사람은 피해자입니다.

영화 말미에서 슬라히가 자신을 변호하는, 혹은 심정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담담하기에 더 감동이 큽니다. 미국은 이슬람을 용서하지 않아 자신에게 그런 일을 행했지만. 슬라히가 믿었던 신은 너를 괴롭혔던 그들 마저 용서하고 자유를 얻으라는 가르침을 남기죠(참고 2)


그러나 속 좁은 미국은 여전히 그를 용서하지 않았고, 슬라히는 미국의 항소를 통해 7년의 복역을 더 마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사과하지 않았습니다.(참고 3)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슬라히가 자신의 나라, 집으로 돌아와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환영하는 인파 사이에서, 그는 그 어떤 감정의 격함을 표현하지 않고. 정말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기쁨과 해탈이 섞여 무언가 깨달은 자 만이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세계 최고 강대국은 비록 개인의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빼앗았지만. 결국은 슬라히가 승리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담담하고 당당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저는 어째서 용서가 가능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마음 가득 안고, 정말 눈알이 빠질 때까지 울었습니다.


요즘에 보는 영화마다 괜찮아서 점수가 후함.


영화에 나오는 많은 단어들이 법적 용어들이 많아 초반에는 따라잡는 것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또한 미국 사법부의 절차라든지, 약어들도 많이 나와 저 같은 금붕어는 초집중 해서 영화를 안 보면 뭐가 뭔지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보다는, 한 국가의 힘이 잘못 쓰일 때 얼마나 많은 희생양이 생길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앞에서 개인은 얼마나 작고 비참한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영화입니다. 그러니 그 모든 넘어설 수 없는 힘을 오롯이 받아들인 사람 '슬라히'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시면 마음이 조금은 더 편해지실 것입니다.


슬라히가 영화 내내 취한 태도는 한동안 저를 매우 반성하게 할 것입니다. 그의 미소를 보며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실화였기에 더 고통스러웠지만 진정으로 이긴 자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그가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가 따라 부르던 노래마저도요.



참고 1

감옥에서 고향의 바다를 떠올리는 장면에서 진짜 눈물 폭발.


참고 2

대사로도 나오는데, 이슬람으로 자유와 용서가 같은 단어라고 함. 슬라히는 이제 당신들을 용서하고 자유의 몸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진짜 너무 완벽한 문장이었기에 꺼이꺼이 울었음.


참고 3

영화의 거의 끝부분에 그에게 있었던 일을 문장으로 보여주는데 이때 진짜 영화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육성으로 욕했음.



[이 글의 TMI]

1. 연이어서 오지게 슬픈 영화들만 고르는 기분. 아무 정보 없이 그냥 시간이 맞아서 예매했다가 펑펑 울다 옴.

2. 진짜 조디 포스터 미쳤다. 그 외엔 할 말이 없었음. 오이 오빠가 제작했다던데. 이제 셜록도 좀.....

3. 8천 원이나 주고 체리 샀는데 핵 맛없음. 하.... 왜 체리 없냐고.

4. 쉐일린 우들리는 책 원작인 [빅 리틀 라이]에 나왔었음. 개인적으로는 책이 그나마 좀 더 나았음.

5. 원래 어제 볼 영화였는데 일 생겨서 오늘 날아가서 보고 옴.

6. 앞다리살 김치볶음을 실컷 만들어 놓고 밥으로 된장찌개 먹음.

7. 확실히 밥해 먹으니까 과일이랑 야채 외엔 그다지 살 게 없음.

8. 오래 걸으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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