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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Nov 06. 2021

티모시 샬라메, 라는 왕국

영화 [듄] 리뷰 


이 글은 영화 [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티모시 샬라메 소처럼 일해주세요. 제발.



영화 [듄]은 개봉 전부터 불리한 입장에 있었다.


이미 "말아 먹은" 전적이 있는 영화를 또 만들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는 점이 그러했고.


한 세계를 창조해 내는 일도 어려운데 그 창조한 세계를 낯선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해하게 해야 하는 점 또한 그러했다.


게다가 그 설명해야 할 "창조한 세계"가 SF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원작이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2021년에 개봉하는 듄이 헤쳐나가야 할 숙제의 양은 매우 많다 못해 부담이 될 정도였을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감독관 마냥 눈에 힘을 주고 얼마나 잘 하는가 보자며 벼르고 있는 상황이었을 테니 말이다.


처음엔 그 모든 부담을 소위 말하는 "감독 빨"과 "배우 빨"로 격파하려는 꼼수일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무려 드니 빌뇌브에 티모시 샬라메의 만남이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했다.


세 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도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나는 이미 007을 보고 좋지 않은 영화가 잔소리가 많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경험을 통해, 그것도 최근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으니. 이 영화마저 그럴 가능성이 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빨"의 힘은 컸다.

눈 한번 질끈 감지도 않은 채 얼굴마담(?)인 드니 빌뇌브와 티모시 샬라메를 믿기로 했고. 기꺼이 세 시간에 걸친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 티켓을 덥석 끊어버렸다.




얘는 이제 그냥 다 되네;올라운더가 되어 가는 티모시 샬라메
사진출처:다음 영화/ 이 장면에서 감독이 춤췄다고 함. 너무 연기 잘해서.

누군가의 발전이나 성장이 시샘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뿌듯할 때가 있다. 현재 20대 남자를 등장인물로 포함하는 시나리오는 모조리 흡수한다는 티모시 샬라메가 바로 그 케이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의 티모시는 어리고 작고 유약한 존재였다. 나보다 작을 것 같은 어깨(넌 어떻게 승모근도 없냐)와 피아노 건반 위에서 밖에 힘을 싣지 못할 것 같은 손. 시선이 마주치면 깨질까 봐 두렵기까지 한 여린 눈을 가진 티모시 덕분에. 사춘기 소년이 받았을 모든 상처는 증폭되어 영화 내내 나의 마음을 후벼파기에 충분했다.


그때의 그는 신예였고 역할에 맞는 소년의 조건들을 갖추었기에. 순전히 운에 가까웠다고 감히 생각했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티모시는 [더 킹;헨리 5세]에서 왕이 되더니, 이제는 기어이 왕의 자리를 넘어서서 자신의 이름으로 모든 영화에서 살아남기를 갈망하는 듯했다.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그는 자신이 가진,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이 한계라고 단정 지은 그 모든 조건들을 가볍게 넘어 우리에게 [폴]의 모습을 각인시켰다. 애초에 한계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처럼.


그가 영화에서 가진 복잡한 정체성은 의상으로 대변할 수 있다.

마치 중세 시대를 연상케 하는 예복 안에서 그는 아트레이데스 왕국의 왕자(라고 하자 그냥)가 해내야 할 전통적인 역할을 고민하고. 사막복을 입은 모습으로는 왕국의 미래를 헤치고 나가는 모습을 대변한다. 자신의 예언 속에 등장하는 전투 장면에서 입은 갑옷에서는 그가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결국 모든 것을 짊어지게 될 운명이라는 것 또한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의 눈빛과 태도가 복장에 맞게 변화하는 것을. 우리는 영화 내내 관찰할 수 있다.


영화 안에서 성큼성큼 성장하는 왕자의 모습만큼이나. 배우로서의 티모시에게도 계속 베팅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이 가능한 올라운더로 성장하는 궤도에 올랐고. 그가 이 성장곡선 위에서 벌이는 잔치들을. 우리는 팝콘이나 튀기며 감상하면 되는 것이다. 사랑합니다ㅠ.



이 스케일의 영화를 볼 수 있는 내가 진정한 승자;기술에서 오는 감동.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때는 DNA를 분석하는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연쇄 살인범을 잡을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그때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애를 쓰고 용을 써 봐도. "그때"였기에 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예전에 만들어진 영화 듄의 한계 중 일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원작을 읽은 사람들이 영화에서 기대했던 것들을 많이 충족시켜주지 못했을 테니까. 10191년(숫자 오타 아님)을 배경으로 하는 세계이기에. 책에 나오는 기술들을 재현해 내는 데는 많은 제약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때"였기에 절대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덕분에 손만 대면 망한다는 속설 아닌 속설이 생겨난 것이겠지만 말이다. )


여기서 드니 빌뇌브가 등판한다.

보기만 해도 목이 마를 것 같은 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와, 그 안에서 펼쳐지는 신기술, 혹은 볼거리의 대향연은 그에게 공을 돌려도 전혀 아깝지 않다. 보는 내내 4D극장에 온 것도 아닌데 뺨으로 모래 알갱이가 날아오는 것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매 순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장면들에 겹쳐지는 불행을 기술로 그려낸 영화는 세 시간 내내 머리와 마음속에서 오케스트라 같은 감정을 들게 했다.


모자(母子)가 모래 폭풍에 갇혀버린 장면에서 느껴지는 말도 안 되는 웅장함을 직접 지켜보면서. 한 시대를 사는 동안 예술 작품이 주는 위대함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될지 확률을 계산해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누구나 욕했을 작품을 되는데요.라고 하며 해버린 드니 빌뇌브 감독의 대단함에 그저 탄식이 나올 뿐이었다.



또 하나의 즐거움, 그리고 단점;캐스팅은 진짜 어이구 감사합니다.ㅠ
사진 출처:다음 영화/ 야 솔직히 나 같아도 이런 장군들 있으면 뒤에서 치겠다. 누가 앞에서 정정당당하게 치냐.

캐스팅은 정말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인물에서 오는 압도적이다 못해 소름 돋는 분위기 덕에 아트레이데스라는 왕국의 위엄은 절로 느껴진다. 왕자(?)가 티모시이고 눈빛 만으로도 사람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저런(?) 장군(??)이 둘이나 있는 왕국이니, 뒤에서 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긴 했겠네.라는 생각이 들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시리즈물로 제작될 가능성이 큰 작품인 만큼. 아주 작은 배역처럼 보이는 인물들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모두 자신의 커리어를 쏟아 분위기를 만들어낸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왕국의 무거움이나 왕자 폴(티모시)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이런 캐스팅 안에서도 뒤지지 않는 연기를 해 낸 티모시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굵직한 인물들이 1편에서 대거 탈락해버린 지금, 대체 2편에서 어떤 이야기를 어떤 인물들과 펼쳐낼지가 궁금함과 동시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 기대했던 젠다이아의 활약도 크지 않아, 젠다이아의 팬이라면 싱겁게 느껴질 것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워즈에 비교될 만큼 긴 시리즈가 될 것을 예고하고 있는 작품이기에 1편에서 쏟아낸 이야기들은 다소 시작에 불과하다고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 덕에 티모시의 탈출 과정들이 너무 길게 느껴지거나 영화 한 편 자체로 보았을 때는 열린 결말처럼 보이는 엔딩도, 많은 이야기를 담지 않은 것 같은 허무함도 느껴질 수 있다.(그럴 땐 티모시 얼굴을 보면 됩니다)


또 다른 대작 시리즈가 만들어질 것인지. 혹은 왕좌의 게임처럼 용두사미친놈아 내 원작 내놔. 가 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나는 기꺼이 대작의 기대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마치면서

김영하 작가님은 알쓸신잡에서 소설 속 주인공의 탄생 조건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충분한 시련을 겪어야 하고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하며

한 번의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아마도 1편은 폴에게 충분한 시련을 겪게 하는데 할애했을 것이다. 그러니 2편에서 본격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시리즈물, 혹은 시즌제로 제작되는 영화나 드라마들에 대한 피로감이 OTT 서비스로 인해 많이 쌓여 있긴 하지만. 대작은 역시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그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영화를 보며 아니 여기서 끊으면 어떻게 합니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2편이 개봉할 때까지 쌓이고 증폭할 기대감이 후속편에 대한 평가에 어떤 영향을 반드시 미치긴 하겠지만. 어쩌면 지금은 가능하지 못할 것이 그때에는 또 한 번 가능하기를 빌어보기로 했다.



[이 글의 TMI]

1. 아트레이데스 왕국 이름이 기억이 잘 안 나서 한동안 계속 이마트 트레이더스라고 함.

2. 덕분에 친구들이 듄 보러 간다 그래놓고 왜 장보고 왔냐고 물어봄. 하....0개국어 진짜.ㅠㅠ

3. 티모시 샬라메 보고 내 친구 자꾸 티머니라고 부름. 죽는다 진짜.

4. 오늘 아구찜 해먹을 계획



#듄 #티모시샬라메 #드니빌뇌브 #빨리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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