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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Nov 06. 2021

영웅을 소비하는 최악의 방법

영화 [007;노 타임 투 다이]리뷰


이 글은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니엘 크레이그를 아직 보내지 못하였다.ㅠ



아마 또 다른 글로 찾아오겠지만.

내게 최고의 007을 꼽으라면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나는 다니엘 크레이그를 외칠 것이다. 시리즈물보다 007이라는 인물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기에 그가 연기한 마지막 007 작품을 영화관에 보러 간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이제 영화를 보고 나면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버리고야 마는 것 같았으니까.


덕분에 매우 미적거렸다.

마블 영화를 보러 가는 속도와는 비교될 정도로 예매를 했다 취소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의 마지막을 볼 용기는 쉽게 나지 않았다. 슬슬 다른 영화들에 밀려 예매 순위가 스크롤을 해야 할 정도로 미뤄지기 시작했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겨우, 하지만 여전히 확신이 실리지 않은 손가락으로 예매 버튼을 눌러야 했다. 더 이상 외면했다가는 마지막 모습조차 놓칠 것 같았으니까.


누군가의 뒷모습을 관찰한다는 것에 영광 비슷한 것을 느끼면서도 아쉬움은 가득했고, [007;노 타임 투 다이]는 이런 내게 정을 떼려는 것처럼 한숨 나오는 수준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눈물이 자꾸 났다. 그의 고군분투가 보이는 것 같아서.




빌런의 부재가 유행인가?;가면 쓴 게 빌런이면 마스크 쓴 사람도 빌런이라고 하지 그랬냐.
사진 출처:다음 영화/ 라미 말렉을 데려다가 이게 뭐 하는 짓이냐.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스펙터 시리즈의 정점이자 다니엘 크레이그의 퇴장을 알리는 영화였다.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이 영화를 기다린 모두의 마음속에는 그에 적합한 빌런이 나오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모든 시리즈에 조금씩 흩뿌려진 "떡밥"을 잘 엮어 숨었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는, 그리고 007을 퇴장하게 할만큼 강력한.


악역의 축이 흔들리면, 우리가 흔히 영웅이라 부르는 주인공의 위대함과 강력함이 바래지기에, 최고의 영웅일수록 최고의 빌런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요새 개봉하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는 메인 빌런의 부재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가 이정재 등장을 바라보며 치를 떠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빌런을 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시리즈에 들어서면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전쟁을 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기는 했지만. 보이지 않는 적이라고 해서 적에게서 느껴야 할 두려움까지 없애버리면 그게 적이 없는 거지. 인간들아.(급발진)


비어버린 빌런의 빈자리를, 영화는 주인공들의 드라마로 채우려 한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부터 영화는 말 그대로 안드로메다로 가기 시작한다.


스펙터의 딸이 레아 세이두인 것은 일찌감치 예상했다. 언제나 여자 때문에 한 번쯤은 패가망신하는 게 007의 특징이니까. 그러나 과연 이 서사를 넣은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 보면 연관 고리가 그렇게 크지 않다. 좋은 악역이 없기 때문에 이 둘을 엮어내는 것도 지지부진하고. 이걸 또 007과 엮으려고 하다 보니 이야기 자체가 너무 지저분하다. 그러니 007이 대체 얘랑 왜 싸우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아내와 딸이 납치당하는 바람에 벌어지는 일은 이미 테이큰 시리즈에서 봤다. 그것도 너무 많이. 우리는 007에게 그런 서사를 원하지 않는다.


아니 영화가 무슨 대왕 카스텔라도 아니고 유행할게 따로 있지. 빌런을 없애면 어떻게 하냐. 진짜.



일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욱일기가 문제라고;정신 차려라.
사진출처:구글 한국 경제/ Q한테 무슨 짓이냐

Q의 앞치마에 있는 욱일기를 시작으로.

라미 말렉이 쓴 가면과 옷.

다다미방과 일본식 정원까지.

영화는 와패니즘으로 물들어있다.


안 그래도 불편하던 마음은 제임스 본드가 무릎 꿇고 사죄하는 장면에서 폭발해 버리고 만다. 저렇게 엎드려서 총 꺼내는 게 지금 기발하다고 생각하고 저런 장면을 넣은 건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그 장면 뒤에 바로 이어지는 총격 신에서 이 장면을 오케이 한 모든 사람들도 다 나한테 한 대씩은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것이 중 2병 걸린 감독의 문제인지 아직 서구에 남아있는 와패니즘 때문에 "스무드" 하게 넘어간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미학적으로 봐도 전혀 아름답지 않은 장면들을 가득 넣은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분명 아름다운 것과 욱일기 사이에는 매우 큰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간극은 절대 메울 수 없을 것이다.


그 누구의 문제이든 자신의 영화라는 생각에 고집을 부려 그런 장면들을 넣었다면. 그것도 007이라는 시리즈물에 이딴 짓을 벌였다면. 책임을 지는 것 또한 그 사람들의 몫이다. 일본이 사과하지 않는 전범국이라 욕먹는 이유를 반드시 생각해 보길. 의무는 나 몰라라 한 채 어디에나 흔적을 남기는 것은 우리 동네 똥개도 하지 않는 행동이다.



왜 영웅은 늘 드라마를 남겨야 하는가;제발 은퇴 좀 제대로 하게 해줘라.
사진 출처:다음 영화/ 앞부분은 영화 그래도 괜찮았음.

코드명 007 뒤에 가려진 그 장본인의 브이로그를(?) 보는 맛이라고 하기에는 영화를 관통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고루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아이의 생물학적 아빠 몰래 딸을 낳은 엄마. 딸을 위해서라면 무차별 총질도 해낼 수 있는 엄마. 결국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가장의 모습까지. 007이라는 코드명 뒤에 숨어있던 제임스의 모습. 혹은 코드명보다 강한 그 누군가를 위한 사랑의 모습은 웅장하기보다 코드명 때문에 오히려 퇴색되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진가(?)는 반갑긴 하지만.


영웅의 마지막 바닥까지 긁어 보여주는 것 만이 그들을 소비하는 최선이었을까. 그 방법만이 알뜰살뜰하게 영웅을 이용하고 버릴 수 있는 방법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마치 영화 [블랙 위도우]를 보며 영웅을 소비하는 방식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분노처럼. 007은 고장 나서 바꾸기 직전의 보일러가 발작하듯 방을 데우는 듯한 은은한 온도의 짜증이 영화 내내 들게 한다.


누군가를 퇴장시키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죽음이라는 것도 알고, 그 죽음의 합리화 혹은 힘을 싣기 위해서는 드라마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알지만. 애초에 그 적과 싸워야 하는 이유 자체가 희미한 상황에서의 그의 희생은 안타깝게 느껴진다. 아이엠 아이언 맨.에서 느껴지던 숭고함 따위도 없이.



마치면서;잘 가요ㅠ

영화관은 작았고, 좌석 수도 적었다. 그의 마지막을 맞이하기에는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영화관이었다. 나는 그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과정에 함께 있게 된 것 같아 괜히 찡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연기한 007 시리즈의 모든 비난도 함께 안고 사라진 것 같은 그의 모습에, 처음 보는 연약함과 한계를 알고 체념한 눈빛에,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을 마지막 영화 때문에. 나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영화 자체는 괴로운 세 시간의 송별회였지만. 이제는 정말 뼈가 아파서 영화를 찍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그의 마지막을 위해 손을 기꺼이 흔들어주기로 했다.


님은 갔지만, 나는 마음속에 가지 않은 그를 남긴 채.

사랑하는 나의 님을 보내기로 했다.

안녕. 제임스. 그동안 고마웠어요ㅠㅠㅠ하ㅠㅠㅠ나이브스 아웃 2편이라도 찍어줘요ㅠㅠ


[이 글의 TMI]

1. 영화 오프닝은 진짜 오지고 지림. 마들렌이 기차를 타는 그 순간부터 모든 개연성도 함께 기차 태워서 보내버림.

2. 작은 영화관에서 함께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이 울었다. 흑흑.ㅠ

3. 그렇게 시작된 다니엘 크레이그 영화 정주행.

4. 요새 종아리 스트레칭하는 법 배워서 너무 시원하고 다리 안 아프게 달리기하는 중.

5. 독일어는 묻지 마라. 울면서 공부하고 있다.


#최신영화 #다니엘크레이그 #007노타임투다이 #영화리뷰 #감독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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