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건]리뷰
이 글은 영화 [로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I am Iron man.
이라는 대사는, 마블 시리즈를 모두 본 사람에게만 복잡한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두 발을 세게 구르듯, 영화가 가진 세계관에 자신의 시간과 감정을 기꺼이 바쳐 풍덩 뛰어든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 아닌 특권이겠죠.
바꿔서 말하면 확고한 세계관을 가진 영화는 쉽게 접근하기도, 완주하기도 힘들다는 뜻일 겁니다.
이젠 전남친중 하나가 되어버린 그때의 그 남자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보기 시작한 마블 시리즈 정도가 제게는 겨우 익숙한 정도입니다. 마블과 대척점에 있다는 디시(DC)도 그다지 제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또 하나의 마니악 한 축에 끼는 엑스맨 시리즈는 제게는 낯설 수밖에 없었습니다.(참고 1)
그럼에도 영화 [로건] 은 오다 주웠다.라는 대사를 남발할 것 같은 성격 나쁜 츤데레 로건의 이야기를 제 마음에 깊이 전달해 주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재생했다가 인생 영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법한 작품을 하나 찾게 된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초보자에게도 그럭저럭 친절한 서사;그러나 아쉬움이 느껴진다면 당신은 이미 엑스맨 정주행을 준비하고 있다.
사전 정보 없이 로건을 재생했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 두 시간대에 걸친 서사를 내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최소 8편 이상은 될 법한 시리즈물 중 하나인 영화라 더욱 두려웠습니다. 마치 예습도 복습도 하지 않은 상태로 고2 때 수 2 시간에 앉아있는 눈 뜬 장님인 저를 소환한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나마 그때의 저보다 나은 점이 하나라도 있다면, 이제 통밥으로도 어느 정도 이야기를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영화 제목이 [로건]. 즉 한 사람의 생애만 다룰 거라고 미리 스포일러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어느 정도까지 로건이 살아온 흔적을 툭툭 던지며 제게 말해줍니다.
그것이 대사의 형태이건, 장면의 형태이건. 혹은 소품이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덕분에 제가 이 영화로 로건을 만난 뒤의 그의 발자취만큼은 놓치지 않고 함께일 수 있었습니다.
행여라도 그런 서사의 힘이 약할까 봐. 영화에서는 아예 로건의 딸을 등장시킵니다. 로건과 같은, 혹은 비슷한 삶을 로건보다 훨씬 더 어렸을 때 시작했을 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성격까지 판박이라고 하니. 지금의 그가 얼마나 무뎌지고 세상에 시큰둥해졌는지도 "통밥"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운 점은 존재합니다. 만약 제가 이 시리즈로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 올린 상태에서 이 영화를 봤다면. 지금 제가 흘리는 눈물이 좀 더 복잡한 형태의 감정을 담고 흐를 테지.라는 것을 느낀 순간부터입니다. 네. 엑스맨 시리즈 정주행을 다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 그럼 더 복잡하게 슬퍼서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날까요?
너무도 가혹한 운명이다;어째서 이 운명을 따르는가.
젊었을 때야 불사의 몸과 패기로 그 어떤 적에게도 자신 있게 덤벼댔지만. 그랬던 로건도 이제 어딘가 고장 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없으면 단 하루도 제대로 살 수 없을 오랜 친구. 그리고 성질머리가 자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은 딸까지 그의 운명에 업혀있죠.
엎치락뒤치락 투닥투닥 거리며 서로의 의미를 아는 쪽으로 영화가 흐르기를 그렇게 바랐지만. 로건의 운명은 그런 따스함 마저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의 은혜까지 원수로 갚아야 하는 운명이 이번에도 역시 똑같이 반복됩니다. 그에겐 모든 위험이 지나 한숨 돌리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모두 다 사치입니다. 고장 난 차를 때려 부수며 화풀이를 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탈이 되어 버렸죠.
삼국지를 읽을 때 책을 세 번 던진다고 합니다. 한 번은 관우가 죽을 때. 또 한 번은 장비가 죽을 때. 마지막으로 유비가 죽을 때. 애정 하는 캐릭터에게 감정을 너무 이입하다 보니 생긴 과몰입 증후군이기도 하죠. 저 역시 이 영화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20분의 최후의 전투 시퀀스는. 시작하자마자 그의 운명이 보여 쿠션을 펑펑 치며 엉엉 울어버렸습니다.(참고 2)
그런 운명이 왜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그는 그냥 그 길.. 아니 길도 없는 수풀 가득한 땅덩어리를 가로질러 걸어갑니다. 아다만티움 칼날로 장애물을 서걱서걱 베어가면서요. 기왕 갈 길. 씩씩하게라도 걸어가지 이젠 절뚝이는 걸음과 작아진 뒷모습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참혹하다.라는 말이 이토록 어울리는 운명이 또 있을까요.
로건. 영웅이 아닌 사람으로의 삶;그러니 로건도 행복했으면.
제 소울 예능 중 하나인 삼시 세끼에서 유해진 배우가 양화대교를 흥얼거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프로 보조 손호준 배우가 말하죠. 행복하자.라는 말이 마치 주문 같다고. 염원을 담은 말이기에 더 중얼거리는 것 같다는 말에 참 맞는 말이다.라며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로건에게도 그런 "캐치프레이즈"는 있었습니다.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가 그것이죠. 하지만 그것을 본인 스스로도 믿으면서 믿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에게도 마치 행복하게 지내자.라는 말처럼 염원을 담은 말은 마음 한구석에 따로 있었죠. 자신이 딸에게 최후의 순간에 해 준 말인,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지 말라.라는 문장입니다.
이미 자신의 운명은 딸이 나타났거나 말거나 지금 그대로 외롭고 힘들었겠지만. 자신의 딸만큼은 로건도 이루지 못한 소명을 실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가 인생을 통틀어 진심으로 기뻤던 순간이 있기는 했을까요.
딸의 앞에서 헐떡이며 죽어가는 이 늙고 처참한 영웅은 그때만큼은 기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은 영웅으로서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시선으로 하루하루를 채우며 살았지만. 딸에게만큼은 해방을 주었으니까요. 자신이 모든 나쁜 것을 짊어지고 이 생을 떠나는 것을 조건으로 말입니다.
좀 더 그가 생의 앞부분에 기뻐할 기회가 많았다면. 불사의 몸으로 기꺼이 받아낸 수많은 총알과 마음의 상처들이 조금 덜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어떤 영웅보다도 비참한 최후이지만.
숭고함 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던 뮤턴트 울버린의 최후를 담은 영화 [로건]이었습니다.
참고 1
엑스맨 시리즈 1~2편도 제대로 안 봄. 나이트 샤말란의 3부작(언브레이커블, 23아이덴티티, 글라스)을 더 빨리 본 듯. 그때 당시에 제임스 맥어보이도 마이클 패스밴더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젠 말이 다르지.
참고 2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볼 때 원래는 책상에서 봤는데 이사하고 난 뒤로는 침대에 기대앉아 영화 보는 각도가 나오는 방을 갖게 되었음. 그래서 롱 쿠션도 사고 큰 베개도 두 개 샀다. 금요일에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는, 퇴근해서 밥해 먹고 운동에 샤워까지 마치고!! 화요일에 올라갈 글도 다 써서 예약 걸어 놓고!! 불 다 끈 상태에서!! 파자마 입고 침대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면서 영화 보는 거!!근데 로건 보다가 너무 슬퍼서 파닥파닥 거리는 바람에 침대 시트에 차 쏟았음.ㅠ
[이 글의 TMI]
1. 이제 엥겔지수가 아니라 애플망고 지수라고 불러야 할 판.
2. Chromatography1기 시작. 다음 주 이상한 마음 쓰기 시작. 본격적으로 글 한번 써 보자.
3. 바게트엔 라즈베리 잼이 어울리지 않으며, 클로티드 크림도 어울리지 않는다. 버터가 최고.
4. 신전 로제 떡볶이 먹었음..... 너무 맛있어....... 추천 감사합니다.....부디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5. 배떡도 시켜 먹고 싶었는데 배달까지 두 시간 걸린대서 포기.
6. 집 주변에 삼첩분식은 없음.
7. 집앞 슈퍼에 꼬북칩 초코맛이 들어왔는데 한 봉지 남았었음. 잽싸게 달려가서 낚아챘는데 애기가 자기도 먹고 싶다고 엉엉 울었음. 미안해. 나 퇴근한 회사원이야.건드리지 마.
추신.
요새 많은 분이 제 심신 건강을 걱정해 주고 계십니다.저는 여전히 밥도, 간식도, 커피도 잘 먹고 운동도 꼬박꼬박 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수면 패턴이 망가지면 브레이크 고장 난 10톤 트럭이 되는 사람이라.수면 시간을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합니다.그 결과 깨어 있는 시간에 모든 것을 다 처리하려 하다 보니 더 바쁘게 보이는 것 같네요.
물론 일의 깊이도. 가짓수도 늘어났지만. 그래도 행복한 걸 보니 만만찮은 도른자인 것 같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그럴수록 제가 가진 한계가 더 빨리 부숴지는 경험을 하고 있으니. 계속 열심히 해야겠죠.
아.
그리고 주말엔 산책도 많이 하고 조용히 누워 있거나 책도 원하는 책으로 많이 읽고 있어요. 충분하진 않지만. 적당히 쉬고 있습니다. 모든 걱정과 염려 너무 감사합니다. 사.....사라...ㅇ.....쿨럭.
#휴잭맨 #영화로건 #로건리아님 #가짜사나이로건도아님 #아무튼아님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