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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Nov 13. 2021

방관자들의 치졸한 변명

영화 [이터널스]리뷰


이 글은 영화 [이터널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말 많음 주의


참으로 위기의 마블이 아닐 수가 없다.

가장 많은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마블 히어로들은 퇴장했고, Phase 4는 생각보다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자신들이 명명한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끊이지 않게 영화를 만들어 세계관을 쌓기에 바쁘지만. 어째 만들어내는 영화 족족 좋지 않은 반응 쪽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들과, 한참 떠오르는 신예들로 무장한 이터널스의 개봉으로, 어쩌면 마블은 이제 진짜 본격적인 시작이라며 큰소리를 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한국 배우 마동석과 BTS의 음악의 사용으로 한국의 팬들도 이터널스를 조금 더 각별한 마음으로 이터널스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이터널스는 마블에게 또 다른 터널 하나를 선물한 기분이 든다. 그것도 매우 깊고 어두우며 길고 긴. 어쩌면 이 터널이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일부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켜버릴 법한.



어떻게 여태 지구를 지킨 거냐;밥그릇부터 지켜야 할 판인데. 
사진출처:다음 영화/이렇게 긴장감 없는 히어로라니.

이터널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거의 지구가 탄생한 후 인류가 존재한 뒤로 우리를 지켜주기 위한 존재로 그려진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물론 난봉꾼 제우스 덕에 족보가 많이 꼬이고, 헤라가 남편 때문에 속 좀 썩였겠다는 건 어린 시절의 나도 책을 읽으면서 눈치챌 정도였지만. 단 한 번도 신들의 능력에 대해서는 믿음을 버린 적이 없었다. 그들은 연못에 빠진 미소년을 수선화로 만들었고. 겁탈당할 뻔한 위기의 여인을 나무로 둔갑시켰으며. 뙤약볕이 내리쬐는 동안에는 커다란 독수리에게 간을 쪼일 수밖에 없는 영겁의 시간을 형벌로 주었다.


그들은 신이었다.

작은 꼬마에 불과했던 나를 밤마다 뛰쳐나가 카시오페이아자리를 눈으로 찾아내며 깡충깡충 뛰게 하는데 부족함이 전혀 없는. 그 꼬마가 커서 평면적으로 보이는 별자리가 따지고 보면 서로 다 제각각 몇백 광년씩 떨어진 가스 덩어리의 우연한 조합임을 알게 된 되바라지고 시니컬한 어른이 된 지금도 변함없이. (참고 1)


하지만 이름이라던가, 이카리스의 최후, 혹은 몇몇 히어로의 필살기마저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차용해온 것 같은 이 "이터널스"는 그 어떤 면에서 보아도 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인간, 아니 인류를 지키는데 필요한 능력이 정말로 검증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그나마 강한 이카리스 마저도 데비안츠 한 마리(?) 때문에 런던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만 봐도 전혀 경외감이 들지 않는다.


히어로의 "강함"에 해당하는 능력을 살상 능력에 몰빵해야만 고개를 끄덕일만한 히어로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무게감이 전혀 실리지 않는 나약한 그들의 필살기와 나약함을 제대로 조력해 줄 수 없는 동떨어져 보이는 능력을 가진 이터널스들(환영이 보이게 한다던가)은 인류를 지키기는커녕, 마블 영화 내에서 자신들의 위치마저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할 처지로 그들 스스로를 몰아낸다.


그나마 속 시원했던 길가메시의 뺨 때리기 마저도 이미 그 액션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새로울 정도의 타격감은 전혀 아니었다. 그저 반가움에서 나오는 실소였을 뿐



착하기만 한, 고뇌 없는 영웅들; 가벼운 왕관은 뺏기기 쉽다. 
사진출처:다음 영화/그래도 리처드 매든 좋아...흑.ㅠㅠ

비록 능력은 덜떨어질지언정.

그들이 인류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부모의 마음과도 닮아 있다. 하지만 이 생각 한다, 혹은 아낀다는 마음이 그다지 순진하거나 일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인류 모두에 대한 무작위적인 사랑이 그들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마음이었다면. 에이작은 애초에 틀린 리더였으므로 나머지 이터널스들은 그녀를 따를 이유가 하등 없었다. 이 편에 서서 보면 드루이그의 일탈에는 어색함이 없다.


그러나 인간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오래된 규율이었다면. 에이작의 의견은 절대적으로 옳지만 여기서 오는 고뇌는 반드시 그 와중에 희생된 모든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야 했다.


헤파이스토스를 연상케 하는 파스토스의 인간 사랑은 어딘가 많이 잘못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게 죽어갈 일본 사람들이 걱정되었다면. 어째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고 다른 나라에서 많은 사상자를 낼 동안 가만히 있었는가.( 또 왜 블립(타노스의 손가락 튕기기) 현상 때는 가만히 있었는가. 단체로 얼음 땡이라도 하고 있었나 봐?)


한 팀이라고 해서 모든 인원의 의견이 같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만. 그 모든 서로의 고뇌가 부딪치는 장면 중 하나로 일본의 원폭 장면을 쓴 것에 대해서는 매우 큰 반감이 든다. 마치 그들이 기술의 피해자인 것처럼 눈물을 흘리는 파스토스가 어이가 없을 정도. 일본이 일으킨 다른 전쟁에서는 자기가 알려준 기술 따윈 하나도 안 쓰고 달고나 결과로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해서 울지 않은 것일까.


그들이 인류를 아끼는 방법이 매우 선택적이며 거기서 오는 고뇌가 하찮아 보이는 지점은 이를 제외하고도 영화 곳곳에 존재한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철학도 없어 보이니 주인공이 우스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그들이 인류를 '진심으로'사랑하기 시작한, 혹은 사랑하는 척 걱정을 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은 그들의 존재도, 고향도 애초에 없는 것이었다는 배신감을 느낀 그 순간부터에 불과하다.


그들은 우리나라 고 3의 고뇌에도 미치지 못하는 같잖은 박애 정신 하나로 무장했을 뿐이다. 그 박애 정신마저도 마치 석양을 감상할 때 울컥하는 마음만큼이나 순간적이고 즉흥적으로 보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편견도, 적도 없애려고 하는 시도는 알겠는데;마피아 게임이 더 흥미진진할 판.
사진출처:다음 영화/소비되는 캐릭터가 되어버린 우리의 아트박스 사장님.

최근에 독일에서 태어나 이제 말을 시작한 연령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부모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나요?"라고.


16년 동안 나라를 잘 돌봤던 메르켈만을 그들의 긴(!) 인생 내내 총리로 보아 온 아이들이기에 남자가 총리가 된다는 것이 오히려 그 아이들의 일생에는 매우 큰 이벤트이며 고정관념을 깨는 일인 것이다. 매우 신선하(?)면서도, 얼마나 보이는 것이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이터널스에서는 소위 말해 PC(Political Correctness)라고 하는 요소들을 영화에 많이 녹였다.


동성애 커플

장애가 있는 히어로

백인은 나쁘다.

동양인의 등장 등.


독일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그런 요소들을 매스 미디어에서 많이 다뤄주는 것이 유리천장을 없애는 것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이런 것을 영화에 떼거지로 등장시키며 보여준다고 해서 내가 이렇게 깨어있다고 말하기에는 오히려 불편해 보인다. 오히려 감동 포르노에 가깝게 느껴진다(참고 2)


더군다나 이터널스의 새로운 인물들은 대충 봐도 다섯은 넘어 보이는데 한 명 한 명마다 모두 서사를 가지고 있으니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데도 세 시간은 부족하다. 게다가 그 위에다 억지로 PC라는 코트까지 입히려 하다 보니, 모든 인물들의 연관성이나 영화의 짜임새가 전체적으로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터널스의 능력과도 별 상관 없어 보이고. 상관 있다 해도 영화에서 응용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실제로 유리천장이 모두 없어진 후에는 이 모든 역할들이 대단해 보이는 것이 아닌, 일상적인 것으로 보여야 한다. 그리고 애초에 깨어 있었다면 일본을 원폭의 피해자로 그리는 일은 아예 하지 않았겠지.


악당이 사라지는 풍토에 대해서는 입 아프니 더는 말하지 않겠다. 이 영화는 악당도, 히어로도, 철학도 없으므로.




마치면서 

클로이 자오는 쓸데없이 "아름다운" 히어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녀는 모든 인물에게 배경에 잡히는 자연보다도 희미한 존재감을 선물했다. 많은 신화적인 이야기를 끌어들여 웅장하고 더 멋진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 같았지만. 이카리스가 자살(?) 한다는 설정은 정말 최악에 가까웠다.


서사는 말할 것도 없이 엉망이었다.

불로불사인 신으로 그려지던 그들은, 인간에 불과했던 블랙 위도우보다도 약해 보였다.(혹은 최대로 화가 났을 때의 나보다도 약해 보임)


인류를 걱정하는 척하지만.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고뇌밖에 모르는, 인류의 일몰을 한 발 멀리서 석양 감상하듯 바라본 비겁한 방관자들일 뿐이었다.



참고 1

우리가 보는 별자리는 스케치북에 그려진 평면 위의 별이 아님. 스케치북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어떤 별은 그보다 더 앞에, 또 어떤 별은 그보다 더 뒤에 또 나머지 별은 그 어떤 별보다도 멀리서 빛을 내고 있으며 그걸 우리는 아주 먼 곳에서 바라보는 것일 뿐. 별자리도 아아아아주 긴 시간이 지나면 모양이 변합니다.

참고 2

우리는 장애인들을 보면 불쌍하다.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뭔가 이겨내는 것에 대해 대단하다며 눈물을 흘린다. 일본에서도 이를 겨냥한 프로그램이 생겼었지만 장애인들을 이용한 "감동 포르노"라는 혹평을 들으며 그 프로그램을 접었다고 한다. 나 역시 장애인들에 대한 매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라도 시간이 되신다면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어보시길. 진짜 뒤통수가 얼얼해질 정도임.



[이 글의 TMI]

1. 리처드 매든과 키트 해링턴이 한 앵글에 잡혔을 때 뭔가 재밌고 애틋하긴 했음.

2. 이 정도면 마블 영화에 영국 사람 지분 한 40%는 될 듯ㅋㅋ

3.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는 배리 케오간(드루이그).

4. 스파이더맨은 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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