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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Nov 14. 2021

거장이 부리는 마술

영화 [라스트 듀얼]리뷰

이 글은 영화 [라스트 듀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모든 핑계의 중심에 있던 코로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뒷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상이라 불리는 모든 곳마다 영향을 끼친 덕에 나의 취미생활 중 하나였던 영화 보는 것도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코로나 시대의 극장가는 황망했다.

미루고 미루던 작품들이 결국 개봉했을 때는 이미 색이 바래있었고. 지켜야 했을 법한 영화의 퀄리티조차도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거장들이 슬그머니 복귀하는 지금. 리들리 스콧 감독의 [라스트 듀얼]은 극장가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듯한 거장의 포효가 들리는 듯했다.


앞으로의 극장가가 기대되는 순간이다.



달의 뒷면을 바라보는 듯한 기이한 경험;낯설지만 신비한 경험 


사진출처:다음 영화 

한때 반전 영화가 유행처럼 제작될 때가 있었다.

덕분에 영화의 트릭에 대한 공식 아닌 공식뿐이 아니더라도, 캐스팅만으로도 대충 역할이나 범인을 알 수 있을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 노튼이 반전 영화에 나오면 당연히 범인일 것처럼.


그만큼 배우의 필모는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에게 많은 힌트를 준다. 바꿔 말하면 배우들의 필모가 결국 그들의 이미지일 테니 작품을 고르는데도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 있겠지.


라스트 듀얼의 캐스팅을 보았을 때. 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고지순한 두 남자 사이에 놓인 한 여자의 이야기를 중세 시대 배경에 맞는 전쟁 장면의 중간중간 볼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리고 내 예상 따위는 전혀 맞지 않음을 영화 내내 놀리듯이 말해주고 있었다.


화성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것만 같은 바른생활 사나이 맷 데이먼은 자신의 명예 외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자존심만 높은 (Dog) 꼰대로. 늘 다정다감할 것만 같은 아담 드라이버는 희대의 난봉꾼으로. 그리고 당장이라도 눈을 뒤집으며 그 두 사람의 목을 딸 것만 같은 조디 코머는 이 억울함만 가득한 시대에 진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 나를 맞이했다.


이 사람이 과연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라고 생각하는 포인트에 봉착하는 순간은 늘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들의 천연덕스러움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변한 모습마저도 원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모습처럼 속여(?) 우리를 영화 안으로 인도한다.


인물만으로도 충분히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야기마저도 예상을 한껏 빗나간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세 사람의 진실공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완벽하게 허를 찌르는 거장의 무대 아래서 벌어지는 그들의 만족스러운 연기는 낯선 모습의 그들 마저도 살며시 웃을 수 있게 한다.




영화 역사상 가장 찌질한 두 남자의 결투와 현실;결국 진실은 전혀 상관없는 두 사람. 
사진출처:다음 영화/ 사실상 영화에서 제일 나쁜 놈이자 운 좋은 놈.

겉으로는 성폭행범을 밝힌다는 진실을 명목으로 이야기 전개가 이뤄지지만. 두 남자 모두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각색된 기억으로 일관한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피해자인 마르그리트(조디 코머)는 이 모든 것에서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다.


두 남자가 살고 있는 시대는 피해자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중심에 있어야 할 여성의 권위와 진실은 저 멀리로 가버리고. 남자들의 "가오"를 위한 쓸모없는 소비전에 마르그리트는 더욱더 상처받아야만 한다. 그 누구도 그녀의 심정을 만져주기는커녕. 모두 너의 잘못이라며 그녀의 마음을 후벼파기 바쁘다.


시대가 진실을 구축하는 방법을 보며 느끼는 괴리감의 크기가 바로 마르그리트가 느꼈을 외로움과 억울함의 크기였을 것이다. 그 시대와 지금의 현실을 비교해 봐도 전혀 다름이 없음에 더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관객 모두가 기다렸을. 하지만 결코 달갑지는 않은 영화 말미의 전투는 그들의 야망만큼이나 처절하고 잔인하지만. 마르그리트의 억울함이 아닌 두 남자의 사리사욕을 위한 결투이기에 그저 우스꽝스럽고 허망하게 보일 뿐이다. 그들의 결투 결과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그녀를 보는 안쓰러운 마음만이 전투 장면 내내 배가된다.



거장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미쳤다 미쳤어 
사진 출처:다음 영화/연기 너무 잘해서 진짜 너무 행복했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는 참 특이하다.

시간적 배경이 되는 겨울마저도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거칠고, 매섭다. 인물들이 토해내는 뜨거운 입김이 급속도로 식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실은 마주하고 있는 겨울보다도 더 처절히 숨겨져 있다. 그 부조리가 만들어내는 영화 속 현실이 겨울보다 더 아프고 쓰라리게 내 몸의 감각을 얼어붙게 한다.


모든 이야기가 합쳐져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하는 그 시점에서 영화는 망설이지 않고 도장을 냅다 찍는다. 바로 이 영화야말로 리들리 스콧의 영화라고. 그 도장의 힘은 너무도 커서 보고 있는 내내 머릿속에 감독의 이름이 계속 울려 퍼지는 기분이 든다.


마르그리트만이 결박당한 것이 아닌.

그의 영화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꽁꽁 묶어놓은 듯하다. 영화에 압도당해 벌벌 떨리는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라 그저 행복했다.


늘 다른 영화를 만들어 우리를 찾아와주는 그의 다작력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다.




마치면서 

좋은 영화가 많이 풀리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거장의 영화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더 행복하고. 그들의 영화가 재미있기에 더욱 더 행복하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는 올해 본 영화 중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했고, 덕분에 나는 극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더이상 무겁지 않았다. 물론 글을 그때에 맞춰 쓰는게 힘들지는 않지만. ㅎ


이미 웬만한 극장에서 내린 영화겠지만.

혹시라도 운 좋게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을 찾았다면. 꼭 보는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


[이 글의 TMI]

1.날씨 너무 추움

2. 그래서 달리기 제대로 못하고 홈트로 매진 중

3. 다음은 프렌치 디스패치다!!


#라스트듀얼 #리들리스콧 #아담드라이버 #조디코머 #멧데이먼 #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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