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엔칸토;마법의 세계]리뷰
이 글은 영화 <엔칸토: 마법의 세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디즈니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을 부릴 줄 알았다.
만보기를 채워 놓으면 하루에 2만 5천보는 끄덕 없다는 깨발랄한 모든 동네 꼬마들을 주말 오전 8시만 되면 TV앞으로 불러모을 수 있었으니까. 밥을 안 먹는 편식쟁이도, 누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작은 동생도, 혼자밖에 없어 그런 미움조차 느낄 수 없는 아이들도. 디즈니 안에서는 늘 행복하고 안전하며, 매일매일의 숙제인 일기쓰기 같은 그 때의 가장 큰 고민들도 다 잊을 수 있었다.
매주 디즈니가 부리는 행복한 세계 안에서 홀린 듯, 영원히 아이일 것만 같았던 꼬마들은 자라면서 점점 그보다 재밌고 현실적인 것을 찾아 하나 둘씩 TV앞을 떠났다. 총천연색의 꿈만 꾸던 그들은 자라면서 점점 회색과 검정색 사이로 섞여 들어 튀지 않고 남들과 비슷한 것을 목표로 한 채 어른이 되어 갔다.
그러나 디즈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보며 자란 아이들을 잊지 않고 여전히 우리를 찾아와 눈사람을 만들자며 문을 두드리곤 했다. 너희의 그 초롱초롱했던 눈망울을 기억하라는 듯이.
<엔칸토: 마법의 세계>로 다시 우리가 숨은 방문 앞으로 찾아온 디즈니는 과연 어떤 메시지를 문 틈으로 내밀며 우리를 밖으로 나오게 할 셈일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가을의 단풍만큼이나 다채로운 색감
영화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마치 비단이 아름다운 무늬로 물들어가는 제조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비단의 독특한 무늬를 담당하는 첫 번째 요소는 바로 색감.
[주토피아]의 제작진이 이끌어 내는 엔칸토 속 세상은, 등장하는 인물의 수와 그들의 감정 상태만큼이나 다양하고 다채로운 색으로 대변하고 있다. 덕분에 눈은 즐겁고. 마음은 그 색에 따라 변화하며 즉각적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또한 손을 뻗어 인물들의 옷깃을 만지면 옷의 질감이 느껴질 것만 같은 생생함도 함께 전해준다. 그 덕에 우리는 화려한 색 안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새겨진 무늬에 금박을 입혀주는 것 같은 OST도 빼 놓을 수 없다. .
이미 [모아나]와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으로 유명한 린 마누엘 미란다의 합류로 인해 영화는 더 풍성하고 아름다워졌다. 그의 음악에 의해 영화는 더 슬프기도, 또 애틋하기도. 혹은 웃음짓는 상황에서 마음 놓고 웃게 하기도 한다. 음악의 장르나 음악적 시도 또한 다양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뮤지컬 영화의 단점을 보완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디즈니의 6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답게. 자신들의 확신으로 관객들을 감동시킨 전적(?)이 있는 제작진들이 대거 참석해준 덕분에. 우리는 스크린 속 인물들을 마치 내 손으로 만지는 비단만큼이나 생동감 있게 만날 수 있다.
주인공이 가진 매력
평범하다는 단어는 참 이상하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 할 때는 한없이 꿈에 가까워져 닿을 수도 없을 것처럼 멀어 보이지만, 저 사람 참 평범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순간 그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는 잿빛 필터가 씌워지기 때문이다.
주인공 미라벨은 가문 사람들 중 유일하게 “특출 난” 마법을 하사 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평범함의 두번째 의미에 가까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애써 아니라고 말해보지만. 사실 “비범한” 사람이 되지 못한 속앓이를 웃는 얼굴 뒤에 숨겨 조용히 다독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쩌면 놀라울 만큼 우리를 닮아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미라벨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여기가 끝이 아니기를. 다른 사람의 도움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꿋꿋하게 모든 것을 해내기를 울며 불며 빌게 된다.
미라벨은 마치 평범한 우리 모두의 기도를 빠짐없이 들었다는 듯이.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용기 있게 문제 속으로 뛰어든다. 미라벨의 거침없는 모험을 제3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다 보면, 미라벨은 자신이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인지 미처 알지 못했을 것임을 느끼는 시점이 문득 찾아온다. 그와 동시에 내게도 미처 깨닫지 못한 특별함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떠오르게 된다.
다른 사람의 대체품이나 그 누구를 빛내 주기 위한 역할에 머무르기를 미라벨이 거부하는 그 시점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울컥함은 어쩌면 내 스스로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던. 애써 자신이 부정하고 있던 자신에 대한 일종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입꼬리에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르게 된다. 미라벨의 행보에 동의라도 하는 것처럼.
특별함이란 과연 무엇인가?
영화는 매우 상징적인 인물들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두 사람은 미라벨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이사벨라와 마드리갈 가문의 기둥인 할머니 알마다.
알마는 자신의 남편을 잃고 세운 이 가문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식들과 손자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보다 가문을 지키는데 있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런 알마의 염원과 비호 아래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가문의 미래를 책임질 운명에 있었던 인물은 미라벨의 큰 언니 이사벨라.
자신의 아름다움을 닮은 꽃을 피워내는 능력만큼 미래가 향기로웠으면 좋았겠지만. 남들이 우러러보는 자신의 완벽함이라는 왕관에 짓눌려 힘들어 했던 속마음을 미라벨에게만 드러내게 된다.
하지만 알마도, 이사벨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름답고 좋은 것만이 완벽하고 특별한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을 행할 때가 진정하게 자신의 가치를 발휘하는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 터놓고 말할 수 없었던 세대간의 갈등은 가장 “평범했던” 미라벨에 의해 안전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녹아내린다.
그리고 마드리갈 가문의 사람들은 깨닫는다.
마법이라 생각했던 능력이 어쩌면 자신들의 진정한 능력을 가리고 있었을 족쇄였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영화의 말미에 들어서야.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힘을 남들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쓰기로 마음먹는다.
마치면서
어른이 되어 본 세상은. 맑은 날 보다 비 오는 날이 더 많았다. 세상의 비 좀 맞지 뭐. 라며 빗속을 아무렇지 않은 척 저벅저벅 걸어가는 날도 당연한 것 같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신호등 앞에서 내게 씌워 줄 여전히 안전한 우산을 들고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것은 언제나 디즈니였다.
그랬다.
디즈니는 아이들을, 아니, 아이였던 순간을 지나온 모든 사람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실컷 울고 웃으며 영화관을 나서면서. 내가 몇 살이 되어도 그들의 우산을 쓸 수 있는. 그들의 파티에 영원히 초대되는 아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글의 TMI]
1. 나보다 친구가 더 좋아했던 영화.
2. 영화 시작하기 전 단편 애니메이션부터 나를 울렸음.
3. 친구가 적당히 울라고 함.
4. 아니 어쩌라고. 눈물이 난다고.
#엔칸토 #엔칸토마법의세계 #디즈니 #주토피아 #모아나 #영화추천 #주말의명화
본 포스팅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