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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Dec 14. 2021

대학원생 건드리지 마라.

영화 [돈 룩업]리뷰 

이 글은 영화 [돈 룩업]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애증의 넷플릭스다.


볼 것이 많으면서도 없고. 또 무언가에 정착해서 '정주행'을 하기도 부담스러운 작품들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버프를 시작으로 다시 한번 바람을 타나 싶더니, 꼭 이렇게 잊을만하면 좋은 작품들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온다. 말 많고 시끄러운 일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OTT 시장에서 특색 있는 자리를 꿰차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나 보다.


게다가 영화 [돈 룩업]처럼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조합의 대배우들이 가득한 작품이라면 더 거부하기가 힘들다.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모든 작품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매력 있는 작품을 보는 눈은 여전한 이들이 꺼내든 카드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열받는데 반박할 수가 없다. ;누가 봐도 맞는 말이니까.
사진출처:다음 영화/오래간만에 영화 보면서 짜증이 너무 났음.

분명 블랙 코미디라고 했는데, 그냥 현실의 한 부분을 크게 잘라다 접시에 얹어놓은 기분이 든다. 너무 적나라하고 생생해서 보는 내내 실시간으로 혈압이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것 같다.


지구에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내린 초신성(Supernova)을 발견했다고 이야기하는 그 급박한 상황에도 정치인들(심지어 대통령 포함)의 머릿속은 2주 앞으로 다가온 선거 외엔 어떤 것도 들어있지 않다. 아 물론 원래 든 게 없기도 했지만.


그뿐인가. 먼저 나서 부조리함을 다뤄줄 것만 같던, 아니 그런 역할을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언론도 결국은 자극적인 뉴스를 뽑아 시청률 장사에 그들을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


영화에는 좋게 말하면 자신의 일에만 충실한 사람들이 위험한 진실을 어떻게 다루고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과장을 아주 조금 보태서 인류의 "멸종"을 예견한 후 남은 기간 동안 벌어지는 모든 과정들이 분명 어디에선가 한 번은 맞닥뜨렸던 것만 같아 더욱 분통이 터진다.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말은 전형적일 수도, 혹은 틀에 박혀있다는 말로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왜 이렇게 눈이 부시는 캐스팅이 필요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극명해진다.


메릴 스트립을 필두로 한 배우 군단들은 단 하나도 멋있지 않아 보이는 역할들. 그러니까 권위와 힘을 가졌지만 실체는 찌질하기 짝이 없는 인물의 연기를 주먹질을 부를 정도로 잘 해낸다. 분명 메릴 스트립의 시상식 소감을 들으며 감동받고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다짐을 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 순간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얄밉고 현실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그러니 이게 정말 영화인지 사실인지 헷갈릴 수밖에. (참고 1)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두 명이다?;그저 감사할 뿐이다. 
사진 출처:경향신문

내면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하찮은가.

손석희 앵커가 뉴스룸에 출연한 강동원(의 얼굴)을 보고 한 생각이라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빚었다 해도 믿을 법한 모습을 자랑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그랬다. 외모에 가려져 연기가 보이지 않던 시절이 존재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이나. 그러나 그는 하찮은 내면도. 연기 실력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는 일부러 외모를 망가뜨리기도 하고, 자신의 필모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작품들에도 다양하게 출연하면서 그가 가진 하찮음을 극대화하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레오의 그런 노력을 애써 외면하고 또 외면하던 아카데미조차 결국은 그의 편에 섰을 정도로. 그의 노력은 정당했고, 아름다웠으며 그에 걸맞은 실력까지 가질 수 있었다.


이제 레오는 연기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 영화 내에서 입체적인 인물인 민디 박사를 연기하고 있다. 보는 내내 알 수 없는 흐뭇함에 물개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두 번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존재한다.

바로 티모시 샬라메.


차세대 디카프리오라 불리는 것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아우라를 가진 그는, 20대의 나이에 대체 영화에서 언제 나오는지 목 빠지게 기다리게 하는 배우가 되었다. 그가 못하는 것이라 해봐야 통계학 정도랄까(참고 2)


그래서일까.

레오가 차세대 레오를 차의 뒷좌석에 태운 채 영화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묘하게 다가왔다. 레오는 그를 영화에서도 가장 (심리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안내했었다. 배우대 배우로의 만남에서도 레오가 어린 레오에게 해주었을 지도나 조언은 어땠을지. 그를 이끌어주려 한 곳은 어디었을지. 괜히 궁금해지는 장면이었다.



디비아스키 행성.;발견한 자의 이름을 붙이는 이 로맨틱(?) 함
사진출처:티스토리

자신의 이름이 논문에 박혀 나오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그 이름의 위치가 어디든(참고 3) 상관없이 몇 번이고 들여다봐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그리고 그만큼의 책임감과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각오도 느끼게 된다. 그러니 자신의 이름을 딴 어떤 존재가 지구상에 생긴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선물이며 오열 포인트일지 가늠조차도 할 수 없다.


디비아스키 행성.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가 발견한 그 낯설고도 반가운 존재는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겨우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물론 이름을 붙일 때만 해도 이렇게 난리 법석을 일으킬 주인공이 될지는 몰랐겠지만.


이름만 같은 줄 알았던 디비아스키와 그녀의 소중한 행성은, 영화 내내 불편한 존재로 모든 사람에게 인식된다.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거칠고 사나우며,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휘젓는다는 점에서 놀랍도록 닮아있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늘 배척당하고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숨어있던 진실을 맞이하게 된다.


정치인들이 얼마나 바보이며 선동가인지.

사업가는 돈에 눈이 먼 프로 통수러임을.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선동될 수 있는지도.


디비아스키라는 행성이자 불편한 진실은, 그것을 인지한 사람만이 행동을 바꿀 수 있게 해주는 요소가 된다. . 사람들은 얼른 그 행성이 소멸되길 바라고 외면하기도 했지만, 애석하게도 행성 디비아스키는 실체하는 문제이자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기도 했다. 마치 발견자가 그랬듯이.


사실 우리에게도 분명 그 행성은 존재한다. 단지 관찰하지 않고 쳐다보려 하지 않을 뿐이지. 디비아스키 행성을 바꿔 말하자면 아마도 스스로의 지옥 정도가 될 것이다. 자신이 약해지는 부분. 혹은 자신이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가만히 뒀을 경우 주체인 나를 집어삼키게 될 그 무언가. 결국 두 디비아스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이었겠지.


아.

왜 저렇게 디비아스키가 화가 많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애초에 대학원생이자 박사 수료생은 건드리면 안 됐던 거다.  처음에 잼 바르면서 욕할 때부터 알아봤어야지. 그걸 무시하니까 지구 멸망한 거임.



마치면서 ;행복하다. 

재밌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넷플릭스 특유의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유쾌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긴박함도 느껴지는. 게다가 블랙코미디여서 더 기분 좋게 감상할 수 있었다. 나중에 넷플릭스에 풀린다고 해도 한 번쯤은 더 볼 수 있는 작품이지 싶다.


참고 1

어느 정도로 얄미웠냐면. 제니퍼 로렌스 말 들으면서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고개 끄덕거리고 있는 꼴이 너무 얄미워 그냥 그 목을 꺾어버리고 싶을 정도였음.


참고 2

티모시에게 D+를 선사한 과제.ㅋㅋ


참고 3

논문은 1저자(=가장 논문에 많은 역할을 한 사람)일수록 앞에 이름이 나온다. 자신의 이름이 있는 논문은 골백번을 봐도 짜릿하고 신기하고 울컥한다. 아무리 다시 봐도 이게 진짜 내 이름인지를 계속 확인하게 된달까.


[이 글의 TMI]

1. 쿠키영상 두 개임. 엔딩 올라가고도 하나 있음.

2. 처음엔 이게 어제 리뷰한 [당신이 혹하는 사이]랑 엮으려고 했었음.

3. 3차 백신 이틀째. 왼팔을 잃었다.

4. 다행히 그 외의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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