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리뷰
이 글은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도
무언가를 추억하게 하는 날씨도.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을 연상하게 하는 시점도.
게다가 소처럼 일하는 티모시 샬라메까지도.(응?)
어딘가 몽환적이고 흐릿하지만 결국 추억이라는 이길 수 없는 향신료 때문에 더 아름다워 보이는.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첫사랑 재질의 빛바램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웨스 앤더슨의 색채 감각이 돋보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복잡함을 강조로 극복하는 감독;화면의 중간만 보시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의 구성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폐간을 앞둔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의 섹션들을 영상으로 옮겨놓은 탓에 영화는 언뜻 보기에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의 나열처럼 보이기 쉽다.
덕분에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이야기의 흐름도 뚝뚝 끊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에피소드 사이의 틈도 많지 않아 책장 넘기는 속도 마냥 가차없기만 하다.
집중력이 떨어질법한 구성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는 두 가지 해결책을 가지고 왔다.
첫 번째는 웨스 앤더슨.
감독이자 자신의 이름값처럼, 말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법한 색감의 보따리를 마구 풀어 관객 앞에 펼쳐낸다. 빛바랜 기억은 무채색으로. 감정이 들어가는 장면마다 피어나는 아름다운 색의 활자는 이 지루해 보이는 구성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시각적 인질을 선사한다.
두 번째는 화면 구성.
주인공이 될 만한, 혹은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화면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그 장점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틸다 스윈튼이 화가 로젠탈러(베네치오 델 토로)를 소개할 때도 나타난다. 로젠탈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입장에 있을 때는 화면의 우측 아래에 등장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그녀 역시 저벅저벅 화면의 중간으로 걸어 나온다.
모든 에피소드의 인물들이 이 규칙(?)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도 주인공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면 화면 중앙으로 시선을 던지면 된다. 마치 현재 읽고 있는 활자 외에는 모두 블랙아웃 되는 책을 읽는 것처럼.
그 안의 사람;안전거리 안에서 모두 살아 숨 쉬는 사람들
티모시 샬라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티모시 샬라메 이야기만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모은 가장 큰 요소이면서도
영화 안에서는 단 하나의 참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화는 모든 인물에 공정하고 정당한 존재감을 부여한다.
그 어떤 사람도 튀지 않고, 그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다. 마치 다루고 있는 사건 속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합쳐져야 그때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듯이. 이 공정함은 모든 페이지에 정확하게 할애된 지분과도 같아 보인다.
덕분에 우리는 사람뿐만이 아닌, 그때를. 그 시절을 볼 수 있게 된다. 단편적인 파편들이 합쳐지는 그때, 비록 가상의 도시이긴 하지만 블라제 라는 곳이 결국 관객의 마음 안에 둥지를 트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영화에 나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 짓고 그때를 기억하게 된다.
동시에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가 꽤 잘 만든 잡지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이 모든 이야기와 감정들을 담은 그 시절을 글로 써 내려갔음이 분명할 것이니까.
전달자의 시선.;깐깐하지만 빠뜨리지 않고. 과장하지도 않은.
도시에 숨어있는 추억을 흔들어깨워 글에 담는 작가들은 생각보다 나중에 조명된다. 그들은 기묘하게 이야기에 녹아있고 절묘하게 이야기의 주인공과 방관자를 오고 간다. 마치 우리는 모르는 전래동화를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시선도, 그 시대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아련해지는 그들의 눈빛도 영화를 보게 하는 포인트 중 하나다.
작가들이 해주는 이야기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혹은 그들에 입김에 의해 가끔 모든 화면이 빛바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 장면에서는 어쩐지 추억의 냄새와 함께 작가들이 그 사건에 가진 애정도 함께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들이 현재의 모습에서는 주로 뒷모습이나 옆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볼만하다.
그 안의 인물이었던 동시에 전달자였고.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가 현재까지 올 수 있도록 공을 세웠지만. 결국 직원이라 사장의 말에 따라 그들의 추억을 재단해야만 하는 위치와도 상응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흥미진진한 도시를 마음 안에 품지 못했을 것이다. 추억에 생명을 불어넣은 일. 그들이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면서.
최근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
그 모두를 감당하기 위해 나는 미련한 내 육신을 매번 한계 너머로 던져버리는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한창 구별하기 힘든 시점에 이 영화를 보았고. 나는 현재 내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몇십 년이 지난 뒤에 내가 써 내려갈 그 모든 문장에서 추억이라는 단어 아래 향기를 내뿜는 글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가상의 도시이든.
또는 그 무엇의 숨은 역사이든.
기록하고 기억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추억을 잊지 않은 자만이 볼 수 있는 불꽃놀이 같은 영화였다.
아스라이 사라질 것을 뻔히 알지만 끝을 향해 힘차게 터져나가는 그 모습으로도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게 하는. 그 불꽃놀이 안에서 자신이 찾던 그 무언가를 찾아내며 손가락을 뻗게 되는.
그리고 전달자인 동시에 당사자였던 나는.
얼마나 그것을 생생하게 다시 기억해 낼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영화였다.
[이 글의 TMI]
1. 토요일에 이 영화, 일요일에 디어 에반 헨슨을 예매한 줄 알았음.
2. 알고 보니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예매해놓았었음.
3.1분 차이로 겨우 취소하고 다시 예매함.
4. 울 뻔.
5. 종이의 집 시즌 5 파트 2 달림. 여태 범생이인 척해놓고 춤 잘 추는 교수 때문에 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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