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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Dec 15. 2021

빛바랜 도시가 피워낸 불꽃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리뷰

이 글은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도

무언가를 추억하게 하는 날씨도.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을 연상하게 하는 시점도.

게다가 소처럼 일하는 티모시 샬라메까지도.(응?)


어딘가 몽환적이고 흐릿하지만 결국 추억이라는 이길 수 없는 향신료 때문에 더 아름다워 보이는.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첫사랑 재질의 빛바램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웨스 앤더슨의 색채 감각이 돋보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복잡함을 강조로 극복하는 감독;화면의 중간만 보시면 됩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흔해 보이는 노점상마저도 이렇게 화면의 중앙을 차지한다.

어떻게 보면 영화의 구성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폐간을 앞둔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의 섹션들을 영상으로 옮겨놓은 탓에 영화는 언뜻 보기에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의 나열처럼 보이기 쉽다.


덕분에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이야기의 흐름도 뚝뚝 끊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에피소드 사이의 틈도 많지 않아 책장 넘기는 속도 마냥 가차없기만 하다.


집중력이 떨어질법한 구성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는 두 가지 해결책을 가지고 왔다.


첫 번째는 웨스 앤더슨.

감독이자 자신의 이름값처럼, 말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법한 색감의 보따리를 마구 풀어 관객 앞에 펼쳐낸다. 빛바랜 기억은 무채색으로. 감정이 들어가는 장면마다 피어나는 아름다운 색의 활자는 이 지루해 보이는 구성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시각적 인질을 선사한다.


두 번째는 화면 구성.

주인공이 될 만한, 혹은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화면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그 장점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틸다 스윈튼이 화가 로젠탈러(베네치오 델 토로)를 소개할 때도 나타난다. 로젠탈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입장에 있을 때는 화면의 우측 아래에 등장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그녀 역시 저벅저벅 화면의 중간으로 걸어 나온다.


모든 에피소드의 인물들이 이 규칙(?)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도 주인공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면 화면 중앙으로 시선을 던지면 된다. 마치 현재 읽고 있는 활자 외에는 모두 블랙아웃 되는 책을 읽는 것처럼.



그 안의 사람;안전거리 안에서 모두 살아 숨 쉬는 사람들
사진출처: 다음 영화 /뭘 해도 잘생겼구나.

티모시 샬라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티모시 샬라메 이야기만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모은 가장 큰 요소이면서도

영화 안에서는 단 하나의 참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화는 모든 인물에 공정하고 정당한 존재감을 부여한다.

그 어떤 사람도 튀지 않고, 그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다. 마치 다루고 있는 사건 속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합쳐져야 그때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듯이. 이 공정함은 모든 페이지에 정확하게 할애된 지분과도 같아 보인다.


덕분에 우리는 사람뿐만이 아닌, 그때를. 그 시절을 볼 수 있게 된다. 단편적인 파편들이 합쳐지는 그때, 비록 가상의 도시이긴 하지만 블라제 라는 곳이 결국 관객의 마음 안에 둥지를 트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영화에 나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 짓고 그때를 기억하게 된다.


동시에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가 꽤 잘 만든 잡지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이 모든 이야기와 감정들을 담은 그 시절을 글로 써 내려갔음이 분명할 것이니까.



전달자의 시선.;깐깐하지만 빠뜨리지 않고. 과장하지도 않은.
사진출처:다음 영화/영화에서 가장 팔자 좋은 아저씨도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도시에 숨어있는 추억을 흔들어깨워 글에 담는 작가들은 생각보다 나중에 조명된다. 그들은 기묘하게 이야기에 녹아있고 절묘하게 이야기의 주인공과 방관자를 오고 간다. 마치 우리는 모르는 전래동화를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시선도, 그 시대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아련해지는 그들의 눈빛도 영화를 보게 하는 포인트 중 하나다.


작가들이 해주는 이야기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혹은 그들에 입김에 의해 가끔 모든 화면이 빛바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 장면에서는 어쩐지 추억의 냄새와 함께 작가들이 그 사건에 가진 애정도 함께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들이 현재의 모습에서는 주로 뒷모습이나 옆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볼만하다.


그 안의 인물이었던 동시에 전달자였고.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가 현재까지 올 수 있도록 공을 세웠지만. 결국 직원이라 사장의 말에 따라 그들의 추억을 재단해야만 하는 위치와도 상응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흥미진진한 도시를 마음 안에 품지 못했을 것이다. 추억에 생명을 불어넣은 일. 그들이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면서.

최근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

그 모두를 감당하기 위해 나는 미련한 내 육신을 매번 한계 너머로 던져버리는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한창 구별하기 힘든 시점에 이 영화를 보았고. 나는 현재 내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몇십 년이 지난 뒤에 내가 써 내려갈 그 모든 문장에서 추억이라는 단어 아래 향기를 내뿜는 글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가상의 도시이든.

또는 그 무엇의 숨은 역사이든.

기록하고 기억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추억을 잊지 않은 자만이 볼 수 있는 불꽃놀이 같은 영화였다.


아스라이 사라질 것을 뻔히 알지만 끝을 향해 힘차게 터져나가는 그 모습으로도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게 하는. 그 불꽃놀이 안에서 자신이 찾던 그 무언가를 찾아내며 손가락을 뻗게 되는.


그리고 전달자인 동시에 당사자였던 나는.

얼마나 그것을 생생하게 다시 기억해 낼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영화였다.




[이 글의 TMI]

1. 토요일에 이 영화, 일요일에 디어 에반 헨슨을 예매한 줄 알았음.

2. 알고 보니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예매해놓았었음.

3.1분 차이로 겨우 취소하고 다시 예매함.

4. 울 뻔.

5. 종이의 집 시즌 5 파트 2 달림. 여태 범생이인 척해놓고 춤 잘 추는 교수 때문에 터짐


#웨스앤더슨 #티모시샬라메 #빌머레이 #틸다스윈튼 #최신영화 #영화추천 #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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