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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Dec 16. 2021

총성 없는 치열한 전쟁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리뷰

이 글은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날 밤. 저는 낙원의 밤을 보았습니다. 대충 오래간만에 테러를 당했다는 뜻이죠. 빨리 눈을 씻어야 했습니다. 보통 저는 주말에 하루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 테러에 대항하기 위해. 저는 아침에 일어서자마자 경건한 마음으로 바로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네.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주말의 맥모닝 먹기와 조조영화 보기를 동시에 해내며 저는 간절히 이 영화를 기다렸습니다. 그만큼 내상이 심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술은 마시지 않지만 해장을 한다면 바로 이런 기분일 것이다.라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제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영화였습니다. 일주일 중 하루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쉰다는 불문율을 깬 보람이 있었습니다.



2021년 통틀어 가장 대혜자 가성비 갑 영화;영화계의 다이소야 뭐야. 
포스터 보자마자 바로 예매. 이것이 바로 간지다.

감히 묻겠습니다.

포스터를 보고서 영화 예매를 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이 영화에는 영국 배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모두 여기 나옵니다. 그런 영화를 저는 조조할인으로 9천 원에 봤죠. 그들의 몸값을 다 합친 것의 0.1%도 안 될 것 같은 가격이니. 뭐 거의 공짜에 가까운 가격이라고 해도 무방할 값을 치르고 그들의 연기 대결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코로나 때문에 사람도 별로 없는 영화관에서 말이죠. 이보다 더한 호사가 있을까요. 게다가 그전 날 밤에 본 영화가 낙원의 밤이라면? 어휴.


이 영화는 제게 여러모로 많은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배우들의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가 2011년 정도에 개봉했으니.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우리가 그들의 "대표작"을 알기 전의 배우들의 뽀송뽀송한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오이 오빠 가르마 어쩔)


그리고 늘 볼 때마다 저의 심장을 울리는 게리 올드만의 등장 또한 그러했습니다. 영국의 신분제도에 반기를 품고 할리우드로 떠났던 배우가. 다시 영국 중심부 중에서도 중심 자리에 앉아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저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거든요(참고 1).장악. 이라는 단어의 뜻을. 그를 통해서 늘 깨닫는 느낌입니다.




대혜자가 대참사가 될 수도 있다.;감당할 수 있을까. 
사진 출처:다음 영화

저는 첩보영화를 좋아합니다. 특유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 답답해 터지는 분위기도. 누가 누군지 헷갈리는 코드명이며 이름도. 도통 알 수 없는 범인이나 스파이들의 행방도 다 좋아합니다. 게다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빠" 이기 때문에 시간 구성이 엉망진창인 영화들도 한 번 만에 이해를 잘 하는 편입니다. (참고 2)


그러나 이 영화는 첩보영화가 낯선 분들에게는 좋은 시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포스터를 보세요. 주연급 배우들만 열명 가까이 나오는 첩보 영화라서 그들의 가명이 한동안 매치되지 않고 머릿속에 둥둥 떠다닐 정도입니다. 그뿐인가요. 영국 정부 최고위층 기구의 이름들까지 앞다투어 나오다 보니. 대충 들었다가는 영화 내용은 물론 인물까지 고루고루 섞여 그냥 다 포기하고 다음 차례 티켓을 예매하기 딱 좋습니다.


이야기 전개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마구잡이로 서걱서걱 베어내 생각나는 대로 붙여버린 느낌입니다. 그리고 영화 제목인 팅커 테일러 솔저는 스파이를 칭하는 코드명이라. 그것까지 합세해 정말 난리 법석입니다. 실제로 제 앞 앞줄에 앉은 커플은 자기들끼리 누가 컨트롤인지 설명해 주다 싸우더군요. 여러모로 흐뭇한 아침이었습니다.



방광 차오르는 속도와 일치하는 긴장감 축적;일생일대의 도전 같은 기분이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진짜 이 장면에서 멋있음 폭발.

맥모닝에 포함된 커피를 마시고도. 저는 또 따로 커피를 사서 영화관에 입장했습니다.(참고 3) 그날따라, 평소에는 별로라고 생각했던 브랜드의 커피가 꽤 괜찮아서 몇 번이고 연달아 드링킹을 했고.


그것이 비극의 서막이었죠.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45분 만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은 남은 시간을 쾌적하게 보내기 위해 바람같이 뛰어갔다 오는데. 첩보 영화의 특성상 한 번 놓치면 그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제 안의 스파이(?)와 싸워야 했죠.


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화는 착실하게 긴장감을 쌓아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초반부터 하나하나 쌓아올린 이야기가 마지막에 가면서 미친 듯이 터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제 방광이 차오르는 속도와 맞먹는 긴장감의 축적이었죠.


영화가 마지막에 가서야 주는 카타르시스가 너무 커서. 다행스럽게도 저는 잠시 제 상태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결말과 OST가 정말 찰떡이라 입틀막을 피할 수가 없었죠. 물론 엔딩 크레디트를 끝까지 다 기다리지는 못하고 달려나가야 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후기;속도 방광도 시원했다고 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첩보영화에 흔한 총격전 하나 없이 잿빛 비장함 만으로 영화 전체를 끌고 갑니다. 그럼에도 전혀 시시하지 않았습니다.모든 것이 끝나고 영화관을 나와서야 겨우 긴장이 풀렸을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다음날이 월요일이라는 심리적 압박도 잊은 채. 오래간만에 영화관에서 웃으며 나올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초반의 복잡함과 뚝뚝 끊어지는 진행을 이겨낼 힘만 있다면. 원작인 소설도. 영화도 충분히 괜찮습니다. 넷플이나 왓챠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제발 봐주세요.


참고 1

영국 영어 발음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고오급 영어.라는 인식이 있음. 킹스맨을 보면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남.


참고 2

테넷을 몇 번씩 본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만. 테넷은 옥에 티가 있는. 그러니까 놀란 감독 영화 중에서는 그다지 섬세하지 않은 영화에 속함. 영화의 규칙을 이해하는 순간. 그 영화의 뒤는 앞에 본 모든 내용을 반대로 뒤집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 괜히 제목이 TENET(회문:Merry go round)이 아님.


참고 3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혼자 영화관 갈 때는 팝콘에 커피가 국룰이었음. 친구들이랑 갈 때는 절대 뭘 먹지 않음. 친구들이랑 보통 무서운 영화나 이런 걸 보러 가기 때문에 팝콘 들고 들어가면 내가 다 던짐.



[이 글의 TMI]

1. 자꾸 핑커 테일러~라고 함.

2. 운동을 하다가 이틀 안 하고 있는데. 몸이 찌뿌둥한 것이 느껴질 정도.

3. 빨래하기 너무 귀찮다....

4. 냉동실 김치 볶음밥 드디어 다 먹음.

5. 토요일 근무 확정.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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