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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Dec 16. 2021

늙음은 잘못이 아니다.

영화 [더 파더]리뷰

이 글은 영화 [더 파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극장에 자주 가게 될 일이 없었습니다. 리마스터링으로 개봉하는 영화들을 제외하고서는 이렇다 할 작품이 개봉하지 않았거든요. 그나마 코로나를 뚫고 개봉했던 영화들 마저도 참패, 혹은 억지로 개봉했다.라는 생각이 늘 들었습니다. 전작에 반도 못한 영화라던가... 반도 못했다던가.. 뭐 그랬다던가...

그러나 최근에 영화관에 갈 때마다 좋은 영화를 건지게 될 찬스가 많았습니다. 코로나만큼이나 길고 길었던 불운한 작품들의 끝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코로나도 제발 끝났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가질 정도로요.


모리타니안에서 시작한 이 기분 좋은 극장행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본 오늘의 영화는 [더 파더]입니다.



인생을 걸고 연기하는 배우들 ;내공이란 게 이런 거겠지.
사진 출처:다음 영화/그냥 두 사람만으로도 화면이 꽉 찬다.

[양들의 침묵]으로 나만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세로 상을 휩쓸었던 앤서니 홉킨스, [더 페이버릿]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올리비아 콜먼.


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포스터만 봤을 때부터. 연기에 대한 걱정은 없이 영화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죠. 올리비아 콜먼이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제 마음이 울기 시작했거든요.


그녀의 얼굴에 있는 주름 하나하나가. 삶에 찌들어 있으면서도 아버지를 포기할 수 없는 딸을 연기하는 표정 자체가 너무도 생생하고 현실적이어서. 이미 그녀가 배역과 하나가 되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앤서니 홉킨스요? 감독은 애초에 그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원룸 붙박이장만큼이나 찰떡처럼 달라붙는 연기를 보이니... 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모든 장면들이 편안했습니다. 연기를 잘 한다.라는 말로는 부족했어요. 그에 대한 원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최근 제가 좋게 봤던 영화 주인공들의 나이가 보이더군요. 이미 느끼신 분도 계시겠지만. 주인공들의 연령대가 꽤 높아졌죠. 윤며드는 배우 윤여정도, [노매드랜드]의 프란시스 맥도밴드도, 또한 이 영화까지도 그런 추세입니다.


합당한? 혹은 올바른? 또는 좋은? 트렌드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쌓아올려 이 영화에서 터뜨리자.라고 작정한 사람들 같은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거든요. 배우 자체가 살아온 세월만으로도 영화를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들에는 그 어떤 양념들도 필요하지 않죠.


덕분에 영화는 단 두 배우 만으로도 전혀 심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연륜이 묻어나는 한숨에, 아픔과 아쉬움이 가득 담긴 눈길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모습에 찬사를 보내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뿐이었죠.




미친 구성;이보다 더 완벽하게 치매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난 없다고 봐.
사진 출처:다음 영화/이 장면에서 안소니 진짜 돌+아이인 줄

이 영화와 가장 비슷한 영화를 하나 꼽으라면. 거의 반사적으로 [살인자의 기억법]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살인에 대한 암시가 있는 영화라서가 아니라. 앤서니 홉킨스라는 배우의 필모 중 가장 빛나고 있을 영화인 양들의 침묵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젊었을 때의 혈기만큼이나 잔인한 살인을 일삼던 그가 맞이한 노년은. 자신의 희생자들이 원치 않게 맞닥뜨렸던 그들의 최후보다도 더 처절하기 때문이죠.


보통의 치매. 혹은 기억 상실 등을 다룬 (반전) 영화들의 경우는 복잡한 영화의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이 이랬지!!이라며 설명을 덧붙이는 시간을 반드시 할애합니다. 관객들에게도. 그리고 혼란스러운 주인공에게도 사건을 이해할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치매 환자인 앤서니 홉킨스의 시각에서 영화를 시작해 영화를 마무리해버립니다. 무엇이 무엇인지, 어떻게 상황이 굴러가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을 영화 내내 만들어 갑니다. 이 혼돈이 주는 영화의 재미가 정말 쏠쏠합니다. 얼마나 안소니가 힘겹게 상황을 받아들일지, 아직까진 정상인 우리가 보기에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죠. 그러니 본인은 얼마나 답답할까요.


마지막이 되어서야 자신이 치매 환자임을 아주 잠시 깨달은 앤서니 홉킨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무너지다가도 순응하는 살기가 사그러든 살인자의 어깨를 토닥일 수밖에 없습니다.



늙어감에 대하여;나의 아픈 곳을 건드리는 영화.
사진출처:다음 1Boon/이 문장만큼 이 영화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없는 듯하다.

가끔 피어나는 청춘. 그러니까 자신들의 20대를 그 누구보다 빛내며 살고 있는 그들을 볼 때면 문득 제 인생에서의 그때가 참 초라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참고 1) 하지만 저는 그 고생의 끝에 저의 20대 이후의 삶과, 가족의 삶을 건져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라며 칭얼거리는 스스로의 초라함을 가만히 다독일 때가 많았죠.


물론 저 역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보기에는 아직 아기이지만. 점점 나이 들어가는 제 자신을 보며 늙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도 영화 속 안소니처럼 찾아오지 않았으면 할 최후, 혹은 최후에 가까운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치매 가족력이 외가, 친가 모두 있어 그 어떤 병보다도 제 스스로의 마지막에 함께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치매를 다룬 이 영화를 보면서. 제 마음은 참 복잡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제약회사인 화이자마저도 연구를 하다 포기한 질병이 바로 치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더욱. (참고 2)


안소니가 마지막에 어린아이가 되어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은. 어렸지만 돈이 없었던 20대의 저도. 젊고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는 30대의 저도. 돈도 시간도 있는데 체력이 없을 미래의 저까지도 울리기 충분했습니다. (참고 3)


그 눈물은 정말 많은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안소니도 저도. 더 이상 그 빛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죠. 그리고 점점 늙고 병들어가는 자신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 혼란스러운 현실이 진짜 자신에게 닥친 바로 오늘. 바로 이 순간이라니. 그의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을 그가 겪은 모든 일들이 자신의 현재 모습과 대비되어 얼마나 찬란했을지, 그와 반대로 자신이 현재 얼마나 비참한지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을 겁니다. 그의 서러운 눈물을 생각하면 아직도 울컥합니다.



후기;기분 좋음. 그리고 약간의 우울함. 또한 그들을 이해하자는 마음까지. 

외국, 특히나 유럽에 있을 때 동양 사람들 중 유럽 생활이 3년 차 이상인 사람과 아닌 사람을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깥에 햇빛이 쨍쨍할 때 피해 다니느냐. 아니면 그 햇빛이 있는 곳으로 돌진하느냐.를 보면 됩니다. 저도 처음엔 피부가 탈까 봐(참고 4 ) 절대밖에 나가지 않았는데. 딱 1년 지나면서부터는 유럽 날씨에 진절머리가 나서 햇빛이다!! 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힘든 하루하루도. 우울증도, 내 피로도, 유일하게 공짜인 이 햇빛이 보송보송하게 말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죠.


햇빛이 나타나는 날은 적다. 그러 부지런히 즐겨야 한다.라는 대사가 더 마음에 박히는 이유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뭐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뿐일까요. 길게 보았을 때의 인생 역시 그렇죠. 우리의 젊은, 혹은 심신이 멀쩡한 날은 짧고, 우리는 그날들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아낌없이 써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더군요.


마냥 슬프거나 혼잡하기 쉬운 치매라는 소재로 이 정도의 긴장감을 주는 영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1

사실 막 예쁘고 잘생기고 이런 걸 부러워한다기보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음... 그러니까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들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내 스스로를 꾸미는데 돈을 너무 안 쓴 지 너무 오래되어 내게 무엇이 어울리는지 잘 모름. 주위에 스타일링에 관심 많은 투 머치 토크 앤 오지라퍼들이 많아서 도움받고 그나마 사람답게 하고 다니는 거.(나를 가지고 인형놀이함.) 지금은 그래도 성격 자체가 많이 바뀌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편. 그것이 내가 한 마지막 선택과 나에게 할 수 있는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 대충 뒤 안 돌아보고 산다는 뜻.


참고 2

개인적으로 치매와 암은 degenerative disease(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는 병들을 총칭한다=오래 살아서 갖게 되는 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피할 수 없다. 혹은 내 스스로가 그것을 minimize 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함.


참고 3

내 뒷줄에 중년 커플이 앉아셨었음. 영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셔서 영화 내내 두 분이서 토론을 하셨는데. 뭐 거기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음. 내가 계속 소리 죽여 울고 있으니 어머 쟤 계속 운다.라고 하시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도 다 나 쳐다봄. 하....... 저 낯 가린단 말이에요..


참고 4

얼굴이 한번 타면 절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사수하는 편. 그러나 오후 세 시만 되면 해가 지는 유럽 겨울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음. 여러분 선크림은 최소 손가락 한 마디는 발라야 하는 거 아시죠. 나가시기 전 20분 전에 바르셔야 합니다. 무기자차 스릉흔드.



[이 글의 TMI]

1. 오래간만에 토요일 일했다. 너무 힘들어서 울 뻔.

2. 콩비지찌개 끓여봤는데 대성공... 하... 앞으로 또 이것만 먹어야 한다. 왜 성공했지.ㅠㅠ

3. 회사 안에서만 2만 보 실화냐. 오늘 운동은 생략한다.

4. 쪽지로 망고 심었냐고 물어보지 마세요. 진짜 심어야 할 거 같잖아요.

5. 제 친구는 아보카도 심었단 말이에요. 경쟁심 생기게.

6. 오늘 두 달 만에 치킨 먹을 거임. 말리지 마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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