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 [위플래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혈압 주의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이 모든 시련과 고난을 보란 듯이 뚫고 한자리에 우뚝 서는 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영화 내내 우리를 울리고 웃기고 마음 졸이게 한끝에 주인공이 드디어 무대의 가운데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내 아이도 아닌데 대견함을 느끼며 물개박수를 치게 되죠.
정말 주인공들은 별의별 일을 다 겪습니다. 영화 서사의 극대화를 노린 것이겠지만 보는 내내 너무 마음이 옥죄어들 정도입니다. 주위 사람들과의 불화는 물론 금전적인 문제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힘든 상황들을, 주인공은 우리 앞에서, 그것도 두 시간 안에 겪어내는 위엄을 토합니다.
소위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불리는 것들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는 그런 "고난"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성공이 그냥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꼭 겪지 않아도 될만한 부조리한 일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너무 관대한 경향이 강한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 [위플래쉬]의 앤드류가 겪는 일 역시, 커리어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겪는 당연한 일이라고 보기에는 가슴 아픈 요소가 많습니다. 성공하려면 저 정도의 압박은 견뎌야 하고 저런 선생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라고 하시는 경우도 보았는데. 제가 보기엔 그냥 둘 다 손잡고 정신과에 먼저 가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는 스승도, 선생도 아니다.;그저 권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아는 소시오패스일 뿐
플레처는 뛰어난 밴드의 수장입니다. 자신의 밴드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왕관처럼 쓰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습니다. 왕좌를 지키기 위해 그는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해가며 밴드의 사람들을 압박합니다. 그 방법만이 밴드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듯한 태도로 말입니다.
메인에서 조수가 되는 게 언제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앤드류가 드럼 치는 모습을 애타게 바라보는 메인 드러머의 모습에서도. 플래처가 밴드 멤버들에게 가하고 있는 정신적 압박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플래처가 올바른 스승이 아님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신념과 가이드 안에서 제자의 숨은 재능을 끌어내는 것이 스승이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 학생들을 부속품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마치 자신의 "집"의 벽에서 떨어진 "타일"을 바꾸는 것 같은 정도의 태도 정도입니다.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다. 이 생각이 이미 밴드의 단원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죠.
자신이 잘못되었다면 고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조차 실패합니다. 앤드류에게 최약의 복수를 하는 순간에는 그의 비열함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밴드를 위한 최고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데는 성공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길러내는 데는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예술을 해내는 것에도 실패했고요.
누군가는 그렇게 했기 때문에 최고의 밴드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분들에게 여쭤보고 싶군요. 성장을 위해 현재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주변의 "부당한" 일들은 잘 참고 계시는지.
부당한 것은 부당한 것일 뿐 포장되어서는 안되죠. 세계적인, 혹은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해서 여태 받은 상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성공하기 위해 그런 폭언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인기 많고 돈 많이 버는 연예인들에게 성공했으니 악플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냐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앞 문장에서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신 분은 두 주인공과 함께 정신과를 꼭 방문하시길.
열정과 정신병을 구별해야 한다. ;그리고 이건 정신병이다. 그것도 둘 다, 아니 모두 다.
심리학적으로 앤드류는 어머니에게서 채워지지 않은 애착을 드럼, 그리고 플래처의 인정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애정결핍 및 불완전, 비정상적 애착형성으로 인한 집착).덕분에 앤드류와 플래처가 만들어 가는 앙상블은 블랙홀과 같죠. 주변을 싸그리 빨아들입니다. 앤드류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불쏘시개로 써가며 그 블랙홀 안에서 드러머로의 앞길을 밝히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지배해 버린 드럼을 연주하는 앤드류는 어느 포인트부터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눈은 자신이 연주하는 드럼이나 음악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치는 드럼 소리를 유일하게 멈출 수 있는 단 한 사람. 플래처의 눈으로 향해있죠. 앤드류가 연주하는 것이 음악이 아님을. 자신이 원하는 음악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에게 점점 남아있는 것이 없어질수록. 앤드류는 보상심리처럼 드럼에 집착합니다. 결국 남은 것이라곤 자기 자신밖에 는데도 그것마저 태워 넣어 드럼을 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사라져 버린 드럼은 연주될 수 있을 리가 없죠.
이렇듯,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는 삶이 건강할 리가 없습니다. (참고 1) 그것이 앤드류뿐만이 아닌, 이 밴드에 속해 있는 사람들 모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 조금 마음 아픕니다. 누구도 앤드류에게 애정 어린 말을 해주지 않고 누구도 이 과정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밴드 밖에 있는 사람들 외에는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목소리는 앤드류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죠.
이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이 얼마나 위험한지, 빨리 앤드류가 알아채길 바라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앤드류는 이미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무언가의 노예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자신의 불행을 기쁘게 여기고 자랑하는 순간이 바로 노예가 되는 순간이죠. 자신의 발목에 있는 족쇄를 자랑하는 그 순간이, 앤드류라는 사람의 일생을 통틀어서 너무 일찍 왔다는 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영화 내내 볼 수 있는 앤드류의 모습은 열정이 아닌. 광기에 사로잡힌 정신병에 불과합니다. 아. 플래처는 말할 것도 없죠. 과연 앤드류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을까요. 저의 대답은 단호히 아니오.입니다. 그 전에 무슨 일이 나고야 말 테니까요.
결말에 대하여;감독 나와.
어떻게 보면 마지막 연주에서, 앤드류는 영화를 통틀어 처음으로 자신의 박자에 맞춘 음악을 연주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웃음을 짓는 포인트는 플래처와 눈이 마주치며 그에게 인정을 받은 것 같은 그 포인트부터.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서로를 떠날 수 없는 존재고. 그로 인해 파멸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인 겁니다. 물론 플래처 보다는 앤드류쪽이 더 상처가 클 것입니다. 드럼을 계속 쳐도. 치지 않아도. 말입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일까요.
제 입장은 절대 아니다.입니다. 또 다른 피해자의 서사가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고. 앤드류의 머리 위에 남은 삶을 알려주는 시계가 작동되기 시작함을 알려주는 끝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플래처는 앤드류를 소개하는 것처럼 손끝을 앤드류에게 향합니다. 그의 손에서 다시 피어나는 앤드류가 아닌. 드디어 너를 합법적으로 괴롭힐 계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괴로움이 시작되는 그 순간에, 가장 행복해 보이는 앤드류가 어찌나 안쓰럽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마치면서_간만에 매우 추천하는 영화.;우리는 왜 고난에 열광하는가.
저는 이 영화 덕에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을 뜬눈으로 맞이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았어요. 정말 오랜만에 주인공의 미래가 걱정되어 제가 대신 눈물 콧물을 두 배로 흘려주는 영화였습니다.
성공을 위해 가는 길에는, 앤드류가 겪은 일처럼 많은 고난이 포함될 수밖에 없을 수도 있겠죠. 정말 "많은"일을 겪으며 포기하지 않는 태도 또한 중요하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앤드류의 모습을 보면서 그 정도는 견뎌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성공은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해서도 안됩니다. 그딴걸 참아내도 성공은 찾아오지 않을 때는 앤드류를 비롯한 사람들에겐 뭐라고 하실 참인가요. 그제서야 너의 노오력이 부족했다고 하실건가요.
그런 악습을 물려주는 것은 어른의 역할이 아니며, 어른이 할 짓도 아니죠. 자신이 겪었던 부당함을 없애겠다고 마음먹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어른이 해야 할 몫입니다. 우리는 과연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성공이란 단어를 말할 때 밀어 부침과 인격 모독까지 포함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반대로 여러분께 그런 "성공"을 강요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멀어지시기 바랍니다.
보편적인 성공 신화에 대해 불편함을 가지는 시간을 한 번쯤은 가져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앤드류가 반드시 무사하기를 기도하게 되었습니다.이 배역을 연기한 배우들이 후유증에 시달리지는 않았을지도 걱정되었습니다.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아질 만큼, 진짜 감독님 나빠요.
참고 1
심리학적으로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누군가의 인정을 위해 지속하는 관계는 그 "누군가"가 없어지는 순간 무너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의존형" 관계를 맺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나는 아무거나 괜찮아 임. 버림받을까 봐 상대방에게 늘 맞춰주고 상대방에게 먼저 베푸는 스타일. 그러나 상대방이 자신이 베푼 것만큼 돌려주지 않으면 자신이 마음대로 베푼 것은 생각하지 않고 섭섭해함.
[이 글의 TMI]
1. 예약 글입니다. 아마 이게 올라갈 때쯤에 저는 씐나게 놀고 있겠죠.
2. 별점 잘 안 매기려고 하는데 꼭 매기자면 만점임. 그리고 감독님은 저한테 만대 맞기.
3. 오늘 예약글을 올리기 위해 월~금까지 야금야금 영화보고 글 씀.ㅋㅋ
4. 올해 첫 자두가 맛이 없었음.
5. 새벽 두시까지 잠 못 자다가 마그네슘 입에 털어넣고 자야된다 백만번 외치다 잠들게 한 영화.
6. 앤드류 살아있니ㅠ 살아있으면 당근 좀 흔들어 다오ㅠ어흑.ㅠㅠ
7. 보는 내내 괴로워서 몇 번이고 멈추었음. 앤드류 사고 당하는 장면에서 세상 오열함.
8. 너무 힘들어서 두 번 볼 자신이 없을 정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