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다니엘 블레이크]리뷰
IMF가 우리 집을 휩쓸었을 때. 영어 선생은(참고 1) 순전히 호기심만이 가득한 눈으로 내게 물었다.
그래. 집이 망했다고? 아빠가 보증 섰니? 빚 얼마나 있니?폭삭 망한 거야?
그 눈에는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힘듦을 오롯이 받아 내야만 하는 한 학생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궁금증과 일종의 쾌감이 함께 담겨 있었다. 급식비 면제를 위해 선생을 찾아가야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 보다, 그런 말을 하며 우월함을 느끼는 것만 같은 그 선생의 눈알을 파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웃는 그 비열한 입을 먼저 찢어발긴 다음에.
덕분에 나는 학창 시절 내내 가난함을 증명해야만 했다. 내가 이만큼 못 산다. 이만큼이나 어려우며 너희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멀어져 있음을 서류로, 그리고 면접으로 증명해야만 했다. 처음엔 그런 나 자신이 부끄러워 눈물만 났지만, 나중엔 그마저도 익숙해져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의식 같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긴 했다.
왜 안 우세요? 엄청 당당하시네요.
마치 자신의 도장 하나에 모든 것이 결정된 것처럼. 낯빛 하나 변하지 않는 나를 보며 심사관들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곤 했다. 그들은 영어 선생 다음에 내가 데스노트에 써넣은 이름들이 되었다. (참고 2)
그들은 내게 늘 아슬아슬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혹은 "저희도 이런 분은 처음이라..."는 말로 대처 되기도 했다. 그 말을 시작으로
나이가 좀 적었으면
좀 더 서류가 많아야 돼요.
남편도 없으세요?
아,, 곤란하네. 이런 사람.
등등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들어야 했다. 그들은 나를 돌려보냈고. 나는 다시 찾아갔다. 그들은 돌아온 나를 또 다른 이유로 돌려보냈고. 나는 또다시 찾아갔다. 그들은 내게 포기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웃으며 찾아갔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한숨 소리가 커질수록 내가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자리도 함께 커지는 것만 같았기에, 그들의 한숨 따위에 내 존재를 지우는 일은 스스로 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찾아가고, 찾아갔으며, 찾아감의 종착역에서 내 존재를 증명하고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사회는 매우 크고 딱딱했다. 나는 그 안에서 그 점 하나조차의 역할도 하지 못하는, 그러니까 끽해야 점 반 개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마치 체의 위에 확실하게 걸리지도, 밑으로 내려오기도 못하고 차가운 체의 철사 사이에 끼어버린. 굳이 손의 힘을 써서 탁탁 털어내야만 하는 골통 같은 존재.
나는 끝까지 굽신거리지 않았다. 내 존재는 잘못된 것이 아니니까. 제도에 반(Against) 한다고 해서 내 삶이 없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어이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던졌다. 툭. 마치 내 존재만큼이나 무거운 날카로움을 담아서.
그럼 건의를 하셔야죠. 저 같은 사람들도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요.
한 방 맞은 듯한 그들의 얼굴을 뒤로하고. 나는 붉은 도장이 찍힌 종이 한 장을 겨우 얻어내 그곳을 나왔다. 나는 여전히, 앞으로도 사회에서 내 자리를 찾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내가 존재함을 스스로 인식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식 시키기 위해.
<추천 포인트>
1. 현실이 얼마나 화 나는지 알고 싶다면.
2. 현실만큼이나 감칠맛 나는 인물들의 연기를 보고 싶다면.
3. 짧은 러닝타임 대비 괜찮은 작품을 찾고 있다면.
참고 1
님 자 하나 붙여주기 싫을 정도였음. 당신에게 배운 게 없음에 감사하는 게 아니라 당신 같은 사람이 되면 안 되겠다는 표본이 되어줘서 감사할 뿐.
참고 2
그들은 공무원입니다. 공무원에게는 소속과 이름을 물어 민원을 넣는 방법이 존재합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정당하게 행동하시면 됩니다.
[이 글의 TMI]
1. 짜장면 집도 나를 거부한다. 왜 배달이 안되는 겁니까.
2. 삼겹살집을 노린다.
3. 집에서 돈가스 만들기에 도전한다.
4. 따로 리뷰를 쓸 예정. 너무 길어져서 이 것만 따로 분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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