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리뷰
이 글은 [콰이어트 플레이스 1, 2]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타짜 2편이 나왔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젊은 감각으로 잘 꾸민 영화라는 생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넘어야 할 산은 다름 아닌 스물여섯 살의 조승우가 접신한 듯 연기했던 고니였죠. 그걸 어떻게 이기겠습니까.(참고 1)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이 영화계에서조차 여지없이 들어맞는 순간이었죠. 식상하긴 하지만 후속편이 1편보다 낫지 않은 경우 대표적으로 쓰이는 표현처럼 되어 버리기도 했고요.
콰이어트 플레이스 2편이 나왔다고 했을 때. 또 하나의 희생양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정 자체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공포, 혹은 스릴러 영화로의 독특함과 우아함이 잘 어우러져 좋아하는 영화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매를 했죠. 얼마나 망하는지 지켜보고 싶다는 심보는 아니었지만. 아주 일말의 희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편과 비슷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
형 만 한 아우도 있네.라는 제목이 싫어 한참 고민했지만 그 외에 더 적합하고 착 달라붙는 말이 있을지는 미지수일 정도로 이 후속편은 괜찮았습니다. 덕분에 [365일]에서 받은 충격을 조금 더 빨리 씻어낼 수 있겠어요.
영화 미쳤어요;5분 만에 알 수 있는 영화의 우아함과 에밀리 블런트는 그래도 예쁘다(?)
시작한 지 5분 만에 영화는 자신이 가진 매력을 마음껏 보여줍니다.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입니다. 1편이 완벽하게 머릿속에서 안녕을 고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긴장감을 잘 조절해 적절하게 터뜨리는 솜씨가 뛰어납니다. 그 어떤 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었어요.(그냥 겁이 많음) 점프 스퀘어(참고 2)가 나올 시점이란 걸 아는데도 간이 없어지는 것 같은 경험을 영화 내내 몇 번이고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식상하거나 과하지 않았어요. 정말 정교하게 계산되어 손꼽아 가며 점프 스퀘어를 쓰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후편이 지닌 저주가 있죠. 이미 1편에서 있는 규칙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바탕으로 또 다른 공포를 자아내야 하는데. 2편은 꽤 괜찮은 선택을 합니다. 바로 생존자들을 모아두지 않고 갈가리 찢어놓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것도 찢어져서는 누가 봐도 안 될 것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내면서요.
완벽하게 이 사태를 끝내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레건과 레건과의 의사소통 방법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에멧,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산소통을 가져와야만 하지만 그러려면 엄마 없이는 살 수 없는 갓난 아이를 두고 길을 떠나야만 하는 에블린, 마지막으로 크게 울며 자신의 불만 사항을 이야기하는 막내와 함께 남겨진 다리를 다친 마커스. 그들이 단 한 번도 맞닥뜨리지 못했고 상상하지도 못 했던 것에서 오는 낯섦을 또 다른 공포로 추가한 것이죠.
이 세 가지 위험을 번갈아 보여주며 영화는 점점 끝으로 치달아 가는데 가뜩이나 짧은 러닝 타임(약 97분 정도)이 더 짧게 느껴질 정도로. 영화는 관객을 정신없이 밀어붙입니다. 정신 차리고 보면 영화가 끝나 있을 정도로요.
공포영화 보면서 오열하는 사람 아마 저 밖에 없을 듯;이게 뭐람.
분명 괴생명체가 나와 사람을 쓸어버리는 영화인데, 영화 자체가 너무 슬픕니다. 심장이 지금 나대는 것보다 조금만 더 나대도 그 소리를 듣고 괴물이 달려와 나를 당장이라도 죽일 것 같은 상황인데도, 개개인이 갖고 있는 슬픔이 그 위기 속에서도 잘 보입니다. 공포 안에 그들의 삶에 숨겨진 아픔도 함께 묻어 나와 괴물에서 느낄 수 있는 무서움과 함께 그들이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까지 느껴집니다.
그 아픔의 근간에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순간들에서 오는 기억과. 앞으로 생존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치졸한 짓을 해서라도 이 하찮은 생명을 연장해야만 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꽤 사실적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상에 빠지거나 눈물을 쥐어짜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과 살아있어야 함을 갈구합니다. 그 냄새 나고 필사적인 발버둥 덕에 영화는 더더욱 무섭고 잔인하게 느껴지고, 나오는 인물들 모두가 부디 그 괴물을 물리치기를 바라게 됩니다. 저 역시 두 손을 모아 혼자 4D 영화를 보는 것 마냥 자리에서 들썩거리면서 제발 제발을 외쳐댔기 때문입니다.(겁 많음.)
만약 영화에 런닝 한 벌로 일 년을 버티는 머리 없는 옆집 빡빡이 아저씨가 알고 보니 퇴역한 특수 요원이었다던가(참고 3), 군부대의 비밀을 알고 있는 말수 적은 군인이 등장했다면. 이런 긴장감은 절대 없었을 겁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디선가에서 걸쭉한 욕과 함께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츤데레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 반드시 나올 테니까요.(그리고 사망 플래그)
히어로의 탄생, 그리고 떡밥(?) 회수;쿠키 없습니다.
1편에서 레건과 마커스는 자신이 가진 장애 때문에 막내와 아버지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습니다. 소리에 예민한 괴물 덕에 자신의 가족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가족이 몰살당하는 환경 속에서, 소리를 잘 들을 수 없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두 사람은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늘 엄마나 다른 사람의 뒤에 숨어 살아야 하는 약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거죠.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던 아이들은 이번 편에서 드디어 자신을 보호해 주었던 사람들의 앞을 가로막을 기회를 잡게 됩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온몸을 천천히 이끌고, 레건과 마커스는 각각 엄마와 막내, 에밋을 위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절대 자신들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 선봉장이 될 수 없었으리라 생각했을 텐데. 그 역할을 행할 기회를 두 사람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느꼈을 테죠. 자신을 보호해 주었던 사람들의 결연함과 두려움을. 그것들을 먹고서 아마 아이들은 조금씩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3편이 나오겠죠.(응?)
마치면서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는 설정 자체가 완벽하진 않은 영화이긴 합니다. 그렇게 당하고도 왜 아직도 폭포 옆에서 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고(벌레가 많으려나), 물에 빠지면 솜사탕처럼 조용히 녹아버리는 괴물을 보며 저건 그냥 뚱뚱한 변종 사마귀인 거 같은데 저게 미국을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어떻게 몰고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처한 상황 속에서 긴장감을 다루는 방법. 영화관에서 시간과 돈을 기꺼이 써서 앉아있는 관객들의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 방법은 정말 일품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우리 모두를 종착역까지 데리고 가는 데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도 당연히 한몫합니다. 클리셰도 어느 정도 존재하긴 하지만. 모든 것이 과하지 않아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닙니다.
1편을 안 보신 분이라도 2편 보시는데 엄청 큰 지장이 있지는 않을 겁니다. 저도 영화의 큰 줄기만 기억하고 자세한 건 기억이 잘 안 났지만 보는데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쿠키 영상은 없어요. 기다리지 마시길.
아, 영화관에 커피를 들고 들어가시는 분은 빨대를 반드시 지참하시기 바랍니다. 일회용 빨대가 싫어서 그냥 텀블러만 들고 들어갔다가 커피 마시려고 텀블러를 기울일 때마다 얼음 때문에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싫어 그냥 커피 마시는 걸 포기했습니다. 물론 더 마셨다간 얻어맞을 것처럼 영화관이 조용하기도 했지만요.
이 영화가 부디 [컨저링] 시리즈처럼 사족이 많은 영화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일 뿐입니다.
참고 1
타짜 3편은 말하지 않겠다.
참고 2
갑자기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기법. (드럽게)못 쓴 예=[더 넌].
참고 3
브루스 윌리스. 런닝 없고 선글라스 끼고 있으면 덴젤 워싱턴.
[이 글의 TMI]
1. 아킬레스건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영화관에서 이 다리 상태로 영화 보러 온 이상한 애가 되었음.
2, 바게트의 단점은 하나 사면 한 번에 다 먹어야 함(?)
3. 살짝 얼린 육수 위에 썰어놓은 묵을 올려놨는데 묵도 함께 얼어버림. 뜻밖의 강냉이 강화도 테스트.
4. 결국 녹여먹음
5. 배불리 밥을 먹은게 아니라 배불리 아이스크림을 먹은 기분
#콰이어트플레이스2 #에밀리블런트 #공포영화 #최신영화 #영화추천 #토요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