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리뷰
이 글은 영화 [모가디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의 의견이 어떠하던 상관 없이 보고 싶은 영화는 챙겨 보시는 것이 여러분의 취향 성립에 좋습니다.
본의 아니게 독일어 공부에 매진(?) 하는 바람에 블로그를 찬밥 대하듯 하고 있는 요즘입니다.두달동안 매일 글쓰기를 할 때는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또 안 하게 되니 문득문득 글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더라구요.다행히 오늘은 글 쓰겠다는 핑계로 영화 [모가디슈]도 보고 리뷰까지 쓰는 시간을 겨우겨우 만들어 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이렇게 간사합니다.
최근 심신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에서 저와 결이 다른 영화를 연속으로 만나다보니 영화를 소비하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많았습니다(참고 1). 다행히 모가디슈는 저의 그런 짜증을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게 도와준 영화였고, 좀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리뷰를 작성할 수 있게 해준 것 같네요.아시겠죠. 사람이 이렇게 간사합니다.
야채를 싫어하는 아이를 위한 특식같은 영화 ;다행히 신파는 없다.
저는 바나나와 감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국에 있을 때 돈이 없어서 바나나와 감자만 사다 먹은 기억이 아직도 제게 강렬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자탕을 먹으러 가도 친구에게 감자를 선뜻 양보해 본의 아니게 감자탕집에서 프러포즈를 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습니다.(튀긴건 먹습니다.대충 고칼로리만 좋아한다는 말)
이런 저를 눈뜨고는 못 보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습니다. 바로 저희 엄마죠. 어떻게든 감자를 먹이려는 엄마의 노력은 요리를 할 때 눈부시게 드러납니다. 단순하죠. 감자를 눈에 보이지 않게 갈거나 다지는 겁니다.
이 영화가 시나리오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들을 다루는 방식 또한 그러합니다.색이 탁해지거나 지저분해 질까봐 모서리를 깎아 넣은 갈비찜 안의 채소들 처럼 모든 소재를 적당히, 둥글둥글 하게 다룹니다.
남북에 대한 이야기도. 남북이 힘을 합쳐 탈출해야 하는 상황도. 그 와중에 부딪치는 조인성과 구교환도(참고 2)그 와중에 피어나는 휴머니즘도.다 적절하게 처리했습니다. 튀지 않아요. 그러니 영화 자체가 안전하죠.좋아하는게 다 들어가 있지만 혼자 자기주장을 심하게 하는 소재가 없으니 안정적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쯤되면 한국 음식에 너무 자주 쓰여서 향신료로 분류도 되지 않는 마늘같은 소재가 영화에도 하나 있다는 것이 떠오르실 겁니다. 바로 신파죠.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을 말하라면 저는 당연히 신파가 없는것.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작정하고 울릴 수 있는 소재들이 널린 영화이지만. 그마저도 둥글둥글하게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슬픈 장면이 있긴 하지만 김윤석 배우의 기똥찬 연기로 오히려 너무도 현실적이고 담담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김윤석 배우님 제발 소처럼 일해주세요. 제발. 거북이 달린다 2탄 이런거. 제발.
기왕 시작한 비유이니, 음식에 빗대어보자면 [모가디슈]는 김치만두보다는 고기만두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한가지 재료가 도드라지지도 않고, 호불호도 적은. 그러니 대중적으로도 무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액션 영화를 기대했다거나, 배우들의 원맨쇼를 기대한 분들이라면 심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떡밥" 처리도 약간 블러 처리된 것 처럼 분명하지는 않은 편입니다. 애초에 부각 시키지도, 그럴 노력도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큰 영화가 주는 장점을 십분 살렸다. ;꽤 괜찮았다.
영화는 (걸작이 아니라) 대작이다.라는 느낌을 관객들에게 선사합니다 .
주인공을 비롯해 시작한 지 10분 만에 최근 핫한 배우들의 총집합을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소말리아의 내전 장면 역시 뇌리에 박힐만큼 강렬하게 묘사합니다.카 체이싱(?) 장면에서 보여주는 카메라의 전환만 봐도 꽤 많은 공을 들여 이정도의 스케일을 유지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들었는데 어느정도까지를 각색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당시의 급박함과 절망이 관객에게 꽤 전달이 잘 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이 되지 않아 영화에 대한 집중도가 꽤 올라갑니다.
모든 것이 잘 섞여 있지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는 점 때문에 배우들이 약간은 묻힌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휘몰아치는 이야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내공은 이 배우들이었기에 오히려 가능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배우들이었다면 이미 저만치 떠내려갔거나 혼자 둥둥 떠서 성가심을 관객에게 심어줬을 테니까요.
드디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조인성 ;당신의 포효가 들린다.
최근에 들어서야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지 않는 회사가 많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도 외모는 아주 많은 역할을 미칩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얼굴이 그 시대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잘난사람은 뭘 해도 조금은 후광이 생기는 것이 있다는 것이죠. (무의식적 외모 인식 및 후광효과)
예선에서 본선으로 올라가는 커트라인이 외모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긴 하지만. 이 외모라는게 배우에게는 조금은 고정관념과 가깝게 치부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특히 자신이 가진 좋은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배우 커리어를 시작한 꽃미남 배우들이라면 깨기 힘든 벽이 되어 버리기도 쉽구요.
조인성 배우 역시 누가봐도 "잘난" 역할들을 주로 해왔습니다. 그러나 꽃미남 배우들 중 가장 안정적인 연기를 예전부터 보여왔다고 생각했기에, 저 사람은 언제쯤 관객들이 가진 고정관념을 벗겨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다시 말해 조금 안타까웠죠.
[모가디슈]는 이런 그의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영화입니다. 여기서 그는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는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참고 3)덕분에 마음 놓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죠.
역할 또한 한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연기한 강대진 이라는 캐릭터는 적당히 기회도 노릴줄 알고 약간은 비열해 보이기도 합니다. 좌천된 자신의 신세를 담은 것 같은 블랙코미디 같은 대사나 태도가 영화 전반에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그다지 멋있어 보이거나 군계일학처럼 행동하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상황에 충실한 사람으로 나오죠.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연기로는 절대 깔 수 없는 대배우 김윤석 배우와도 전혀 어색하지도, 겉돌지도 않습니다.
그가 여태 닦아온 내공이 폭발하는 영화이니. 조인성 배우의 팬이시라면 아마 더 즐거운 영화이실겁니다.
마치면서
집에서 영화관까지 걸어가는 15분이 길게 느껴질만큼 이번 여름은 참 덥습니다. 집에서 선크림을 바르면서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시간에 영화를 보러 나가나. 하는 생각을 몇천번도 더 할 정도로요. 그래도 이렇게 귀찮음 한 번 이긴 대가로, 랑종-킹덤 아신전으로 상처받았던 마음을 아주 조오금은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모가디슈]는 그만큼 안전한 영화입니다. 호불호 논란의 폭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영화관이 가까워 찾아가는데 더위로 인한 귀찮음만 없으시다면 보시기 나쁜 영화는 아닐 것입니다.
덕분에 조금 마음의 안정이 오네요.
참고 1
사실 랑종 보고나서 리뷰 문화에 대한 글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화가 너무 많은 글이어서 어조를 누르느라 아직 발행을 못 누르고 있음. 요새 지쳐서 짜증이 많이 쌓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냉정을 되찾을 때 까지 기다리는 중.
참고 2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약간 이질적이었음. 물론 둘 다 엄청 멋있었지만. 이 장면의 요점이라 한다면 역시 태권도는 다리가 긴 사람이 발차기 하면 끝이다.(?)
참고 3
잘생기지 않았다는 말이 아님.드럽게 잘생겼는데 얼굴을 전혀 의식하지 않게 하는 연기를 이 영화에서 펼치고 있었음. 정말 전혀 튀지 않음. 그 점이 너무 놀라웠음.
[ 이 글의 TMI]
1. 화면이 전체적으로 어두움. 그래서 약간 어지럽거나 답답할 때도 있음.
2. 독일어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역시 공부한 건 어디 안 가는 듯. 계속 생각나네.
3. 수박을 먹고 싶지만. 쓰레기 너무 많이 나와서 참고 있다.
4. 운동 병행해서 2킬로 빠짐.덕분에 영혼도 조금 빠져나감.
5. 다시 독일어 공부 하러 갑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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