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리뷰
이 글은 마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어떻든 자신이 원하는 영화는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연걸이 할리우드 영화에 처음 진출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양의 배우가 서양의 영화판의 중심에 간다는 것이 뉴스에 나올 만큼 떠들썩한 일이었거든요.(클레멘타인 제외)
그러나 막상 동양인들이 할리우드로 넘어가고 나서도 한동안은 악역이나 돈밖에 모르는 악역이나 무자비한 악역이나, 혹은 무술 잘하는 악역 정도로 소비되는 것에 그치곤 했죠. 넘을 수 없는. 혹은 그때까지만 해도 주류가 아니었던 아시아인들은 그렇게 조용히 자신의 입지를 넓힐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최근 개봉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이런 의미에서 꽤 큰 의미를 가집니다. 마치 블랙 팬서가 그랬듯이 말이죠. 이제는 동양인이 영화판에서도 주류 반열에 들어섰고 주인공이 되는 것도 자연스럽긴 하지만. 동양인 히어로를 앞세운 마블 영화는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것 같네요.
2000년대 초반 중국 영화의 부활을 보는 듯한 느낌;근데 이제 거기에 CG를 끼얹은
지금은 졸부가 가진 어마어마한 자본력을 앞세운 막가파 국가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중국 영화는 전 세계 영화제의 예술상을 휩쓸곤 했었습니다. 중국 특유의 분위기를 살린 와호장룡 같은 영화들이 한국에서도 참 많은 인기를 끌었고요.(참고 1) 그리고 그때 모든 기운을 끌어 쓴 덕분에 중국 영화는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죠.
영화 [샹치]는 그때의 중국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꽤 큰 향수를 불러올 영화입니다. 특히 샹치의 부모님이 대나무숲에서 만나 펼치는 액션을 빙자한 밀당(?) 장면에서는 금세 와호장룡을 보며 느꼈던 서늘한 바람이 비슷한 온도와 세기로 제 마음속에서 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 초반에 샹치가 여동생을 찾으러 가기까지의 장면들 외에는 모든 장면이 마치 와칸다 처럼 어딘가에 숨어 있는 미지의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덕분에 중국 고전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은 더 강해지죠. 물론 거기에 이제 약간의 세련됨과 돈을 끼얹은.
영화의 이야기 줄기도 그런 분위기 조성에 한몫합니다.
주인공은 힘을 숨기고 새 삶을 살기 위해 집을 떠나지만. 한 가문의 오래된 권력자인 아버지(양조위)에 의해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주인공은 아버지와, 혹은 가족과의 묵은 갈등을 해결하며 그 해결의 정점에서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순수하고 고결한 힘을 얻어(물려받아라는 표현이 더 잘 맞을 듯) 최고의 강자가 되죠.
어떻게 보면 어느 영화에나 존재할 법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마블 영화이고. 갈등이 강조되는 만큼 영화가 늘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사빠죄 양조위가 주인공인 영화. ;메인 빌런 부재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샹치 이전 개봉했던 마블 영화 [블랙 위도우]에서도 주인공이 대체 누구냐, 메인 빌런이 별로다.는 말이 참 많이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도 그 문제는 똑같이 재연됩니다.
웬우(양조위)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가진 힘을 믿고 악행을 저질러 온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이 빌런이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를 외치면서 영화는 양조위를 빌런에서 로맨틱 가이로 위치를 바꿔 버립니다. 양조위라는 배우를 악역에 캐스팅했다는 것은. 메인 빌런을 연기로도, 캐릭터가 가진 능력으로도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겠다는 다짐, 혹은 보장이었을 텐데 이런 느낌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인의 부재로 인해 가련한 사람으로 전락해버리죠.
그 와중에 너무 연기를 잘 하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주인공보다 더 잘 되는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물론 주연배우보다 양조위가 제게 더 익숙하고 오래 본 사람이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메인 캐릭터가 가진 한계가 분명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아버지와 샹치와의 갈등이 풀려버리는 순간. 아버지는 더 이상 샹치와 영화의 메인 빌런이 아님과 동시에 빌런의 부재가 바로 생기게 되는 것이죠. 히어로 영화에서 빌런이 없다는 것은 히어로의 급 또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타노스의 무시무시함이 부각되는 만큼, 그 악당을 이긴 어벤저스의 노력과 대단함이 강조되는 것처럼요.
화합이 요새 마블의 숙제인가 봅니다. 악역 돌려주세요.
야 솔직히 용을 어떻게 이기냐;그냥 박수나 칠 뿐이지.
우리가 서방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고정관념이 있는 것처럼. 서양 사람들 역시 우리에게 가진 환상이 참 많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 용(Dragon)이겠죠. 온갖 동양에 대한 판타지를 때려 넣은 영화답게. 용 역시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솔직히 이걸 어떻게 이깁니까.
용이 나오겠지.라는 예상은 했었지만. 실제로 용이 나오고 난 뒤로 영화는 몇 가지 국면을 맞이합니다.
첫째로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서사를 여태 쌓아온 주인공들이 싸우는 것이 아닌 용들의 싸움이 펼쳐지기 때문이죠. 용이 전해주는 위압감은 당연히 크지만. 이건 뭐 끝판왕 아닙니까. 어떻게 이겨요. 불쌍한 샹치는 용에게마저 존재감을 조금은 빚지는 셈이죠.
두 번째로는 메인 빌런처럼 보였던 사빠죄 양조위의 희생 뒤로 빌런이 갑자기 드렉처인지 뭔지가 되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로 인해 세계의 모든 악을 상징하는 나쁜편 용(?)을 물리치려고 텐 링즈의 일원들과 어머니의 고향 사람들이 힘을 갑자기 합쳐 버립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은 아니지만. 마치 그냥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처리를 해버리는 경향이 있죠. 빌런이 없어지면 영화가 이렇게 산으로 가기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특히나 히어로 영화에서는.
말 한마디 없는 용과 주인공과의 싸움이 재미있을 리가 없고. 아버지의 상실과 함께 팔찌를 물려받은 주인공이 용에게 질 리가 없죠. 이긴다는 것을 이미 알고는 있지만. 질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연꽃마냥 진흙탕에서 고고히 피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남지 않은 영화가 되어버리는 순간이었죠.
용이 불 안 뿜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마치면서
우선.
마블에서 이런 영화를 보게 된 것에 대해서는 매우 신선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꽤 수준 높고 빠른 시퀀스의 액션이라던가. 너무도 반갑고 좋은 배우들을 감히 마블 영화에서 보는 이 감격스러운 순간이 물론 또 오기야 하겠지만. 제가 영화관에 갈 수 있는 시기에 개봉해 준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물론 아콰피나가 중국어를 알아듣다가 못 알아듣다가 중요한 순간엔 알아듣는다던가. 하는 오토 번역 모드는 조금 아쉽지만. 페이즈 4의 시작과 유니버스의 확장에 있어서는 꽤 큰 발판을 맞이했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영화 중간에 있는 약간의 늘어짐만 견딘다면. 꽤 반갑고 볼만한 또 한편의 마블 영화였습니다. 또 덕분에 마블 유니버스 영화를 정주행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쿠키는 두 개입니다. 하나는 영화 끝나고. 나머지 하나는 크레딧 올라가고 마지막에.
참고 1
그 시절. 와호장룡도 좋아했지만 최애는 [영웅]이었음. 색으로 이야기를 나눈 것도 너무 예뻤음.
[이 글의 TMI]
1. 쿠키 두개인데 모르고 나간 분들 호도다다다다닥 뛰어서 들어오심.
2. 간만에 휴가 잘 쉬었습니다. 아 물론 그 중 3일은 백신 때문에 아파서 누워있음
3. 양배추 먹으니까 속이 너무 편하고 좋다.
4. 간만에 글 쓰는것 같네요.
5. 아 독일어 공부는 매우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연말까지 힘 좀 낼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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