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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Dec 31. 2021

인생에도 반반이 필요하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리뷰

이 글은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찌나 외워도 외워도 안 외워지던지. 울면서 밤새우기를 매일 했었죠

저는 서른 살에 대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늦은 대학 생활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으로 마음이 가득했지만. 머리는 늘 냉정했습니다. 장학금이 없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환경이었거든요. 그래서 장학금도 받고 과외 아르바이트와 커피숍 알바를 병행해 가며. 이미 다른 학생들보다 10년은 오래된 뇌에 새로운 지식을 집어넣느라 늘 힘든 하루를 겨우겨우 넘겨야 했습니다.


현실은 시궁창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생각했습니다. 힘들게 여기까지 온 만큼 제대로 가자. 현실 앞에 주눅 들지 말자. 등등의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제 마음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나이 때문에 모든 취업 서류에서 광탈하는 것은 물론. 더 높은 기준이나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받아주겠다는 곳들도 많았습니다. 내가 나쁜 선례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라는 생각에 저는 모든 것을 거절했고. 그렇게 세상에 두 번 없을 것 같던 3개월의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죠.(참고 1) 정말 정신이 나갈 것처럼 힘든 3개월의 기다림 끝에 저는 겨우 직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그 업계의 임금 수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만하고 충분한 삶을 살 수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늘 이야기했지만. (참고 2) 통장에 찍히는 액수는 저를 늘 생기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열심히 하면 매일매일이 행복할 것이라고 늘 출근을 준비하는 거울 앞에서 말해보았지만. 소위 말하는 "부모님 빽" 때문에 제가 뒤로 밀릴 때마다 현타가 오기도 했죠. 그럼에도 꿈을 버릴 수만은 없었기에 소중히 마음을 감싸고 다시 한번 아침을 맞이하지만. 어쩐지 거울 속의 제 얼굴은 현실에 걸맞게 비뚤어지고, 낯설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프랭크와 에이프릴 역시. 자신들이 지금 이 상황까지 올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서로가 가지지 않은 모습에 끌려 만남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말이죠.


이상과 현실이 뒤엉켜 무엇이 어떻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엉망인 상태로 살고 있는 바로 오늘의 모습을. 그들은 기대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살고 있는 이 부부는 마치 형벌처럼 무미건조하고 괴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죠. 어쩔 도리 없이 말입니다.


사진출처:아쉬타카 블로그/ 이 장면은 진짜 역대급이라고 생각함. 무미건조한 프랭크의 삶을 그대로 보여줌

세상을 발밑에 두고 싶었던 프랭크는. 이제 매일매일 똑같은 모자와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섞인 무기명의 회사원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노라 그렇게 다짐했지만. 태어난 지 서른 해 가 지난 생일날의 자신의 모습은 죽기보다 싫었던 그 모습과 닮은. 혹은 그보다 좀 더 못한 모습의 비즈니스맨일뿐이었죠.


첫 만남에서 프랭크에게 직업 대신 무엇에 관심이 있냐 묻던 에이프릴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노력도 재능도 그저 그랬습니다. 연기처럼 흩어지는 그것들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럴수록 그것들은 멀리. 그리고 옅게 퍼져가기만 합니다.


두 사람의 꿈과 이상은 냉정하고 칼같기만 한 현실에 너무도 많이 얻어맞았습니다. 덕분에 둘의 보석 같은 추억과 기억들은 작은 상자 안에 들어갈 만큼 쭈글쭈글하고 주눅 들어 버렸죠. 그 꿈의 주인공이자 당사자였던 에이프릴 역시 조심스럽게 들춰볼 정도로 말입니다.


에이프릴은 그런 추억에 가만히 숨결을 불어넣어 봅니다. 생동감 넘치는 파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프랭크의 눈과 얼굴을 기억하며. 에이프릴은 남편의 본질을 찾아주기로 마음먹습니다. 형벌처럼 쓰고 다니던 남편의 모자를 벗겨주기로요.


사진 출처:다음 영화/가장 아름답지만 슬펐던 장면.

사람에게 꿈이란 건 일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연료를 얻는 것과 같나 봅니다. 꺼져가던, 아니 잊고 있던 불씨를 에이프릴 덕에 살린 프랭크는 드디어 똑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그 꿈이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프랭크는 깨닫게 되죠.


꿈과 작별했던 거리와 시간만큼. 부부가 파리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들의 꿈을 변명하듯 옹호해야 하죠. 얼마나 자신들의 생각이 환상적인지. 그리고 그곳에서의 계획이 얼마나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철저한지.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들의 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할수록. 현실을 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반증하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현실은 참혹했고, 그들의 꿈은 아직 수줍었습니다. 프랭크의 승진과 에이프릴의 임신이 맞물리면서. 그들의 파리행은 영원히 서랍 속으로 들어가 버리게 되죠. 에이프릴은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하는 프랭크의 그림자 같기만 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사진출처:경기북부 데일리/울컥했던 또 하나의 장면

복은 파리에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은 순간부터 행복은 파리에만 있었죠.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지만. 파리행이 취소된 지금의 에이프릴은 두 번 다시는 그 행복에 손조차 뻗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에 비참함을 느낍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이 냉정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포근한 인정과 관심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차가운 현실은 그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서로를 갉아먹을 수 있는 말을 내뱉는지 만을 알려주었죠. 그리고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그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에이프릴은 두 번의 유산을 하게 됩니다.


한 번은 명백하게 12주를 넘긴 아이입니다.


또 한 번은 현실입니다. 자신이 잉태한 것이 꿈인 줄 알았지만. 결국 그녀의 속에 있었던 것은 지금보다 훨씬 더 냉정한 현실이었죠. 그녀는 그것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고. 부부의 비극은 현실과 꿈의 거리만큼이나 극으로 치닫습니다.


윌러 부부의 이야기는 이웃들에게 가십거리로 남게 됩니다. 누군가는 피하고 싶고 누군가는 곱씹고 싶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이지만. 이 안에 숨어있는 그들의 고군분투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합니다. 현실은 결국 그들의 본질마저 저 깊은 곳에 파묻어버리고 맙니다.


마치면서

이 영화는 여러모로 흥미롭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타이타닉의 커플이 이루어졌다면. 행복했을까.에 대한 대답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죠. 잭과 로즈 역시 자신들이 가지지 못했던 것에 끌렸고 사랑은 했지만. 그들이 현실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는 이 영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 체험이 가능했습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경사로에 우뚝 서 있는 집처럼 두 사람이 버텨주길 바랐지만. 결국 그들도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과 같았죠. 결국은 넘을 수 없었던 것일까.라는 생각에 결말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두 사람이 조금만 더 마음을 넓혔더라면 어땠을까요. 꿈과 현실은 어찌 보면 같은 모습이었고. 그들을 함께 살게 하는 방법을 함께 생각했더라면.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매일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향해. 혹은 상대방을 향해 조금이라도 미소를 보이는 것부터 시작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짙은 부부의 이야기였습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죠.




참고 1

여태 일만 하며 살다가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백수 생활을 딱 3개월 했었는데 그때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것이 없는지 알게 되었음. 이때 심적으로 정말 많이 성장했음. 그리고 누군가는 3개월 백수 생활이 짧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구직은 사람 손이 늘 모자라는 직종이라 3개월 이상 놀았다는 건 자기가 구직활동을 안 했거나 다른 것 준비하느라 안 갔거나 둘 중 하나임.


참고 2

석사 후 연구원 초봉 2400~3200 수준. 다행히 유행에 민감하거나 한 성격이 아니고 미니멀리스트에 가까워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지만. 가끔 서울에서 이 월급으로 산다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음.



[이 글의 TMI]

1. 최근에는 말하고 싶은 세 가지 정도를 축약해서 정리하는 스타일의 리뷰를 썼지만 오래간만에 모든 내용을 이야기하는 리뷰를 써보고 싶었음. 요새 글 쓰는 것에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는 듯. 글 쓰는 게 힘들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작업 자체가 일처럼 되어가는 것 같아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었음.

2. 베이글로 카야 토스트 해먹어 봤는데 무게감이 엄청남. 괜히 식빵으로 만드는 게 아닌 듯.

3. 로제 떡볶이 먹고 싶은 마음과 40분을 싸움. 그리고 나는 돈도 아끼고 건강도 챙겼지만 비참해졌지.

4. 스타벅스 리유저블 컵 받아보겠다고 없는 페트병 쥐어짰는데 품절.....

5. 비 올 때는 라테 마시는 거 좋아하는데 그러기엔 우유 사러 나가기에 너무 귀찮았다. 

6. 김치찌개를 너무 많이 끓였다. 소분해서 얼렸는데 한 일주일은 먹을 듯.

7. 정형외과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너 정도변 불사신이라고 하심. 아니 불사신도 아파요. 안 죽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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