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리뷰
이 글은 영화 [조커] 및 온갖 영화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소위 다크 히어로라고 불리는 주인공들을 다루는 드라마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빈센조에서 시작해 모범택시, 괴물, 그리고 듣기만 해도 회사 생각이 나는 마우스까지 말입니다. 물론 단 한편도 본 적은 없지만(참고 1) 듣기만 해도 이런 것들을 이제는 드라마에서도 다루는 시대가 오긴 했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가 많죠.
다크 히어로를 다루는 영화들은 주인공, 혹은 등장인물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아주 자세하게 다룹니다. 그래야 주인공이 극 전체에 걸쳐 행하는 모든 폭력행위나 범법행위들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죠. 여기서 말하는 힘은 '당해도 싸다'라는 마음 정도라고 할 수 있죠. 영화 [모범시민]에서 주인공이 감옥에 있으면서 걸리면 다 죽이겠다는 기세로 모든 걸 터뜨려제낄 때마다 느끼는 감정과 비슷합니다.
물론 잘못된 행동입니다. 범법행위이기도 합니다.
다크 히어로.라는 어감 자체가 주는 것만큼 이율배반적인 것이죠. 그러니 과장님을 죽이겠다는 그런 어리석은 계획은 접어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드라마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들이 다만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주인공들은 "그런 행동을 할 만한" 일을 겪으며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럴 만한 일.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군가가 복수.라는 것을 계획할 만큼의 일이라면. 주인공이 악에게는 악으로 답하겠다.라는 다짐을 하게 된 그 바닥을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에 겪은. 혹은 애석하게도 어린 시절을 관통하는 내내 있었던 이벤트들 때문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쉽게 말하면 트라우마 일 것이고 풀어서 말하면 성적인 학대를 포함한 각종 폭력이나 가난, 피할 수 없는 부모님의 부부 싸움이나. 적절하지 못했던 환경 등 모두를 아우르는 말일 것입니다.
어렸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태어나자마자 맞닥뜨려야 했던 현실이었기 때문에 주인공은 피할 길이 없었겠죠. 그것이 어린아이의 인생을 통틀어 쌓이고 쌓이고 또 쌓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 도화선이 되어 터지는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다크 히어로가 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두 사람 역시. 다크 히어로라는 이름으로 복잡 미묘한 가면을 쓴 채 살아갑니다.
바로 조커와 배트맨입니다.(참고 2)
극 속 아서(조커)의 일생을 돌아보면. 정말 짠 내 난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부정당하기까지 했죠. 결국 아서는 지하철역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을 죽이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 안의 조커를 거칠게 깨워냅니다.
조커의 일생에 비하면, 게다가 조커에 비할 수 있을 만큼 오랜 학대도 아니었지만. 분명 브루스 웨인 역시 아주 크나큰 트라우마를 얻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부모님이 총살당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한 것이죠. 그러나 브루스 웨인은 조커 같은 성격의 다크 히어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분명 두 사람의 행동 모두 범법행위이긴 하지만. 차이는 존재하죠. 그리고 그들을 가른 가장 큰 차이는 바로 환경입니다.
브루스 웨인의 옆에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료해 줄 만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어린 브루스 웨인이 입었을 심리적 트라우마를 불쌍히 여길 줄 알았습니다. 어린 브루스 웨인은 그 트라우마를 극복할. 그것도 건강한 방법으로 극복할 기회들이 수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이 물려준 어마 무시한 돈도 기회를 만들어 내는데 한몫했음을 절대부정할 수는 없습니다.(참고 3)
여기 불쌍한 조커 혹은 아서를 보겠습니다.
아서는 평생을 무시당하며 살았습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꿈을 인정받지도 못했죠. 주변 사람들 마저 아서를 그렇게 까내려도 되는 사람인 것으로 치부했습니다. 비쩍 마른 아서의 모습만큼이나. 아서의 미래도 빈약하고 처참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아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깨닫고 환희에 차 춤을 추는 것 외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서가 조커를 잉태하고 태어나게 한 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인 셈이죠.
저는 속담 중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라는 문장을 매우 싫어합니다. 마치 이미 어디에선가부터 한계를 그어놓은 문장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아서를 보며, 혹은 아서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런 식의 말을 던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싫어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란 걸 어떻게 하느냐. 환경이 완벽하게 변할 수는 없지 않으냐. 주제를 알고 태어난 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아서처럼 태어나 버린 사람들의 미래는 영영 조커의 무한 탄생 같은 비극으로 끝나야 "당연한" 것일까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이 아이유가 맡았던 지안.이라는 역할이 가장 좋은. 그리고 매우 현실적인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안 역시 아서와 불행 배틀을 해도 지지 않을 만큼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보냈죠. 그러나 지안의 옆에는 지안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마주하지 못하는 과거를 "불쌍하게" 여겼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동훈(이선균)이 아니었다면. 지안은 아마도 지금쯤 조커보다도 더한 괴물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죽였다.라는 꼬리표를 연신 흔들어대는 괴물 말입니다. (참고 4)
지안은 한 사람의 관심으로 인해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솔잎조차 눈치 보며 겨우겨우 먹어야 할 운명이었지만. 용기를 내 조금씩 햇빛에 자신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은 것이죠. 지안처럼 단 한 사람만이라도 아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아서의 마음속에 있던 조커는 영원히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우리는 물려받은 것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좋지 않다"라고 판단되는 모든 형질(Trait)들을 물려주고 싶었을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유전이든, 혹은 환경이든 말입니다. 이게 다 부모님 때문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도 없는 것이죠.
물론 거기서부터 불평등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빌 게이츠조차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했을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그 상태로 인생을 패배자처럼 살기에는 패배자로 살아야 할 인생이 너무 길죠. 그리고 우리에겐 그 불리한 카드를 뒤집을 수 있는 환경이 있기 때문에, 역전을 노려볼 기회도 함께 손에 쥔 셈입니다. 그걸 사용할지 말지는 그저 우리의 몫인 거죠.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우리 조커와 지안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습득한 것들을 가득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에 눈치채지조차 못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대물림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남은 인생만큼이라도 구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고 계시다면. 최소한 마음 안의 조커에게는 더 이상 자리를 주지 않으시길. 또한 다른 사람들 마음 안의 조커를 깨우는 사람도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아서는 브루스 웨인이 될 수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소한 조커가 되지 않거나, 지안처럼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얻을 수 있었겠죠.
인생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법이니까요.
참고 1
집에 TV 없음. 자취하는 내내 TV가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음. 빈센조, 괴물, 모범택시, 마우스를 다 봐달라고 친구가 이야기했는데 나도 보고 싶다고.
참고 2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번에도 똥이면 DC 영화를 안 보겠다.라는 기로에 서 있었는데 조커 보는 내내 손뼉 쳤음.
참고 3.
아직도 내 생각은 변하지 않음. 배트맨이 하는 행동은 범법행위이고 자기만족의 방법 중 하나일 뿐이며 영웅이라기보다 자신이 원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함. 뭐 잡혀도 여태까지의 공로가 있으니 정상참작 정도는 될 듯. 단지 나는 크리스천 베일이 이 역할을 하니 좋아하는 것일 뿐임. 멋있으니까ㅠㅠ엉엉.ㅠ
참고 4
다들 이선균의 짠함에 눈물을 흘렸다지만. 나는 지안의 모습이 마치 예전의 내 모습 같아서 정말 많이 울었음. 시그널 이후로 완주한 드라마이기도 함. 지안 같은 사람이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함. 왜냐하면 나 역시 한 사람의 관심으로 그 힘들었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왔기 때문. 불행이 생각보다 가까운 것만큼. 기적도 생각보다 가깝습니다.
[이 글의 TMI]
1. 진짜 조커까지 별로였으면 DC 영화 다 버리려고 했었음. 그리고 그 뒤로 다시 망하기 시작했지... 부들.
2. 오늘 밤샐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