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 글은 제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 Chromatography에서 쓴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4000만 원.
2년 안에 갚지 않으면 제 인생을 다시 한번 나락으로 질질 끌고 갈 수 있는 괴물.
그 괴물은 마치 제가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는지를 실컷 지켜본 뒤에나 몸을 일으켜 저를 잡으러 걸어왔습니다. 그것도 한참이고 저의 처절한 달리기를 보고 난 뒤에 비웃듯이 말입니다. 이번엔 거기까지구나.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죠.
매번 괴물에게 어깻죽지를 잡혀 내동댕이 쳐지고 나면. 한참이고 그 자리에서 몸을 가로지르는 고통을 실컷 느끼고 난 뒤에야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었죠. 다시 뛰어야 할 생각도, 마음도, 동기도 잃어버린 채 우두커니 그 자리에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나면, 저는 또다시 달려야 했죠. 제 처참한 모습을 집어삼킨 뒤라 더더욱 벌크업 된 상태일 괴물을 제 뒤에 저만치 두고 말입니다.
왜 신은 감당해낼 수 있는 크기의 고통을 줬을까.
차라리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저를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는 크기의 고통이었다면. 꿈도 희망도 없이 그저 고개를 조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애증으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살지도 않았을 텐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받아들이며 남은 삶을 돌멩이처럼 살았을 텐데.
저를 죽이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비참하게는 만들 수 있는 이 고통 속에서. 고난 덩어리를 치워가며 조금씩 길을 걸어가는 것이 죽지 못해 사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습니다. 행여나 재미있는 놀잇감인 제가 지쳐 버릴까 봐. 늘 희망은 저를 고문하듯 고난의 다음 차례에 한 번씩 제 앞에 슬며시 얼굴을 비추곤 했죠. 치욕스러운 그 망할 희망의 단맛에 겨우 몸을 추스르며, 다시 찾아올 고난을 저는 대비해야만 했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직업을 바꿔가며 돈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디에서건 실수를 하며 괴물뿐만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고개를 숙여야 했죠. 저와는 다른 능숙한 모습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혹은 제가 외우거나 익혀야 하는 것들이 잔뜩 적힌 프로토콜들을 보며. 언제 난 이런 지팡이 없이 일을 할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제 자신이 초라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죠. 괜히 제 손이 더러운 것처럼 느껴져 바지춤에 휘휘 닦아내곤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도 했고요.
2년 반.
제가 겪은 고난의 크기와 깊이만큼. 그 끝만이라도 시원했으면 참 좋았겠지만. 지겹고도 무서운 괴물을 물리친 후에 제 손에 쥐어진 것은 달랑 한 장의 영수증 뿐이었습니다. 이 한 장을 위해 내가 바친 것들의 이름을 대라면 삼일 밤낮이고 새워가며 말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의 저는 영수증과 이 복잡한 감정을 뭉쳐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괴물이 없는 삶은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였습니다. 꽃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았죠. 그냥 괴물이 없어졌고 나는 살아있는 바람에 사는 삶.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삶에서는 그 괴물보다 크거나 작은 장애물들이 꼭 나타났죠.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모든 것들을 힘들게 지우고, 넘겨가며. 저는 겨우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의 저는 마치 유리창 너머로 거리의 사람들을 보는 것 같은 입장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힘들었지만. 그립기도 하고. 마치 나보다 유리 너머에 있는 사람들이 생동감 있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분명 저기가 시끄럽고 힘들어 여기까지 오려고 그렇게 애를 썼으면서 말입니다.
어쩌면 제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것은. 등 뒤에서 바짝 따라오던 괴물이 아니라. 정체 모를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상황에 처한 제가 헤쳐 나가야만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말입니다.
내가 이것을 해낼 수 있을까.
지금의 하찮은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고. 내 스스로가 증인이 되어 증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오는. 내 스스로가 부정당하기 싫어 발버둥 치는 데서 오는 감정 말입니다.
어떤 날은 [나는 이런 걸 절대 할 수 없을 거야.]라는 생각에 밤새워 울기도 하지만. 어쩐지 꼭 그렇게 울고 난 다음날엔 그 고비 같기만 했던 하루가 또 잘 넘어가는 경험을 하게 되기도 했죠. 그렇게 찌질하고 짠 내 나는 지루하기만 한 하루들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두려움의 크기만큼 커져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했죠.
인생에 대한 이야기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하다못해 이 글쓰기 모임에서조차. 우리 모두 마음속에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장벽이 하나씩 있을 겁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울면 어떻게 하지.
남들이 날 우습게 보면 어쩌지.
이대로 멈춰버리면 어떻게 하나.
나만 이렇게 심한 피드백을 받는 것은 아닐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저 사람이 나를 그냥 덜떨어진 사람으로 보려나.
등등의 마음으로 가득할 겁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이것들을 극복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익숙해질 것이고, 우리는 한 발 올라선 그 자리가 디폴트가 되어 또 다른 어려움과 고난을 바라보며 앞으로 가겠죠.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우리 마음속의 어려움과 힘듦을 부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그 괴물을 가장 빨리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용기 있는 여러분의 묵묵한 발걸음에 마음속으로나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찬사를 보냅니다.
[오늘의 TMI]
1.썸네일에서 30분 소요. 하...
2. 감정 글쓰기는 부끄럽고 뭐고 없어야 합니다. 그냥 쓰세요. 괜찮아요.
3. 주말에 김치볶음밥 대량생산한 바람에 냉동실 전체가 김치볶음밥 공장임.
4. 운동하고 다시 물 마시는 양이 돌아왔다. 근육 좀 키워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