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당근 마켓/이렇게 예쁘지도 않았음.어릴 때 살던 집에는 붉은색이 조금씩 벗겨져가던 냄비가 있었다. 냄비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았고, 찻물을 끓이는 주전자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애매한 크기만큼이나 우리 집식구 모두 그것의 용도를 이리저리 섞어 각자의 방법으로 그 주전자를 고달프게 했다.
아빠는 가족의 수저 소독용으로.
엄마는 햄을 삶아 내 불순물을 없애는 용으로
남동생은 부모님 몰래 먹을 라면을 끓이는 용으로.
나는 우유를 데워 코코아를 타먹는 용으로.
이미 용도만 봐도 신데렐라보다 기구한 인생을 버텼을 붉은 냄비는. 누구 하나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이 없이 험하게 써댔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오곤 했다. 물론 그 어린 나이에도 아빠가 소독용으로 그 아이를 선택한 건 지독하게도 나쁜 선택이었음은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러고 보면 나의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리지만 아끼는 딸에게 밑도 끝도 없이 살색의 향연인 영화나 책만 아니면 무엇이든 볼 수 있게 해주었고. 그 덕에 나는 또래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공상과 상상에 실컷 빠져들 수 있었다. 따님이 참 나이답지 않게 많은 것을 느끼고 보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빙긋이 미소 지으며. 아빠는 내 눈에 비친 세상을 넓혀주기 위해 아빠의 방식대로 나름대로 힘써왔다.(참고 1)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저 사람은 참으로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는 선택을 늘 했지만 결국 그 안에 있는 진심을 늘 들키고 마는 츤데레 사내. 그는 딸을 그렇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키우기를 고집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그래도 엄청 재밌었음.그날도 그랬다.
여느 때처럼 햇살은 조금 누그러든 일요일 오후. 냄비에 하기는 많고 찻주전자에 하기는 적은 떡볶이를 가득 담은 그 빨간 부엌데기를 온 가족이 끼고 앉아 영화를 보던 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오후.
어리고 되바라진 내 눈으로 보기에도 영화 [동방불패] 속 사람들이 날아다닐 때 보이는 줄이 너무도 선명했고. 누가 봐도 주인공의 일격을 맞고 쓰러지는 악역은 대역임이 틀림없었다. 제작비가 없었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넘길 줄 아는 짬(?)이 생긴 나는 약간의 코웃음을 치며 아빠를 쳐다보았다. 뭐 사실은 떡볶이를 집으려다 시선에 아빠가 걸려서 쳐다본 것이겠지만.
나는 그때 아빠가 가족 외의 무언가를 좋아하며 집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동안 떡볶이를 포크로 집지 못한 채. 나는 그렇게 아빠의 영화 보는 옆얼굴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떡볶이 한 접시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있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은 없어지는 떡볶이만큼이나 빨리 잊혔고. 나는 이제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이 껄끄러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런 내게 서울에 있는 든든한 일터는 완벽한 핑곗거리가 되어 주었다. 딸내미가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한다는 형체만 남은 자긍심을 부모님에게 안긴 채, 나는 그렇게 그들과의 물리적 거리를 벌려놓았다.
잔잔히 무채색으로 가라앉는 나의 일상을. 아빠는 가만히 두지 않았다. 겉으로는 사고 싶은 디자인의 옷이 부산에는 없다는 핑계를 댔지만. 이 갱상도 사내가 큰 딸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있는 것임을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딸의 얼굴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겨우겨우 꾹꾹 누르며 기차에서 내려 내게로 걸어오는 아빠는 낯설면서도 낯간지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진심을 숨기는 것에는 인생을 통틀어 죄다 실패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사진출처:구글 둘레골/싼 가격에 좋은 한정식집이었음.
아빠의 서울 나들이는 성공적이었다. 필사의 노력으로 고르고 고른 한정식집은 굶주리고 조금은 낯설었을 서울을 아빠의 머릿속에서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아빠가 그렇게도 고르고 싶었던 디자인의 옷은 진짜로 서울에 있었으며(참고 2) 딸이 예매해 놓은 영화가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말에 아빠는 인생을 통틀어서 계속 진심을 완벽하게 숨기는 것을 실패하는 순간을 연장해 나갔다.
영화관은 아빠의 웃음과 흐뭇함을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가장해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어두웠다. 아빠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고. 미쳐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웃음은 연신 입가에 매달아 놓았다. 가슴 가득 퍼지는 노래를 들을 때면 아빠의 눈도 박자에 맞춰 확실하게 또렷해졌다.
곁눈질로 흘깃흘깃 아빠를 쳐다보고 있는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아빠는 그렇게 다시 한번 아빠가 좋아하는 것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유일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던 시절을 퀸과 함께 보낸 사내가. 어느덧 한 가족의 가장이 되어 자신의 바람처럼 제멋대로 크는 딸과 함께 동방불패를 보던 그 사내가. 몇십 년에 걸쳐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그런 사내를 몇십 년 동안 잊고 도망쳐서 살았던 바로 나의 옆에서.
츤데레 아빠와 소시오패스에 돌하르방 같은 딸년의 이별은 여전히 어수룩하고 세상 떨떠름했다. 아빠를 태운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차역에 서 있다가. 나는 이제 아빠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를 계산해 보려던 마음을 고이 접었다. 이과 다 망했으면이라는 말에서 이과를 담당하고 있는 나의 뇌는 그런 계산을 하기에 너무도 최적화되어 있었지만. 답이 나오면 슬퍼질 테니까라는 조건을 달고 있는 함수였기에, 나는 그 함수의 답은 구하지 않고 빈칸으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참고 3)
진짜 어릴 때 안 가본 박물관이나 그런 데가 없었음. 지금 바쁘니까 못 갈 걸 알아서 예전에 몰빵 하신 듯.자신이 죽을 때 그 어떤 재산도 물려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눈을 뜨길 바라던 사내의 기도를 들으며 나는 자랐다. 덕분인지 딸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한 면으로 무장한 사람으로 자랐고. 언제나 어디서나 모난 돌이 되어 늘 손가락질의 타깃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 손가락질을 조명 삼아 누구도 이겨낼 수 없다고 말한 것들을 무너뜨리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영화 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는 말이 꽤나 어울리는 인생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키워준 아빠 덕에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면. 이렇게 영화 관련 글을 틈틈이 쓰고 있다고 하면. 내가 뭐라고 그런 글을 써달라고 하는 청탁도 들어온다고 말하면. 아빠를 추억하며 이런 글을 지금도 쓰고 있다고, 그리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게 해 준 것을 고맙다고 말하면. 이번에도 이 사내는 진심을 숨기는 데 실패할까.
참고 1
실제로 정말 그냥 나는 야하다. 지금도 야하지만 앞으로도 야할 것이고 그냥 야하다!!라는 영화가 아니면 다 볼 수 있었고 어릴 때부터 한글을 배우게 하는 대신 책을 읽어주시는 방법을 선택하셨었음. 늘 그래서 엄마랑 교육 방법 때문에 싸우셨는데 결론적으로 나는 아빠의 방법으로 컸고 엄마는 속이 터졌으며 나는 세상 혼자 덤덤하게 컸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받아쓰기 40점을 넘지 못했지. 엄마가 받아쓰기 100점 받는 거 보려면 초등학교 10년 다녀야겠다고 했었음. 친딸 맞습니다. 여러분.
참고 2
솔직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 데 있었음. 아빠 90만 원 쓰고 내려가심. 밥도 영화도 커피도 아이스크림도 다 내가 샀는데!!. 아빠는 아빠 옷만 사고 내려가 심... 하.... 친딸 맞나 진짜.
참고 3
이런 표현도 함수를 써서 말하는 이과 진짜 다 망했으면 어휴.
[이 글의 TMI]
1. 나만 네 살 때 나 이럴 때 기억이 나는 건가.
#동방불패 #보헤미안랩소디 #가족 #영화 #토요명화